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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in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2019.12.25 2시
류정한 막심, 신영숙 댄버스, 이지혜 나, 최민철 파벨, 문희경 반호퍼, 이소유 베아트리체, 박진우 프랭크. 레베카 오연 류막심 자셋. 류신졔 페어 자첫.
※스포있음※
"주인님과 존경하는 마님을 위해" 라는 신댄의 말에 "존경하는 마님을" 방으로 안내하라고 명령하는 류막심. 신댄의 등장에 미동도 하지 않다가, 졔이히가 허겁지겁 일어나자 왜 눈치를 보냐는듯 그에게 시선을 주는 류막심. 명백한 비아냥을 섞어 레베카를 입에 올리는 신댄에게 "그만하고 '제발 ' 나가보세요!" 라고 화를 내는 류막심. 하루또하루. "난감해?" 하는 목소리에 어이없다는 웃음 섞는 디테일, "내가 왜!" 하고 버럭 소리지르고, 이히를 꽉 붙들고 흔들어댔던 제 손을 내려다보며 후회의 빛을 내보이는 류막심. 이히가 노래하는 동안 소파에 앉아 체스판의 하얀 말과 검은 말을 하나씩 직전 칸으로 옮기는 새로운 디테일. 마치 관계를 망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듯이. 신이여. "악령의!" 하고 강세를 넣고, "난 더 강해져야 해!" 하고 대사처럼 세게 강조하는 강렬한 목소리.
칼날송. 늘 좋지만 압도적으로 훌륭했다. 레베카의 정체를 밝히며 "치!밀한 계획" 하며 오른쪽 검지로 졔이히를 가리키고, 그대로 그 손가락을 내리며 "완!벽한 그 연기" 하고 바닥을 삿대질하는 디테일. 넘나드는 감정의 정점 류베카의 목소리와 눈빛이 간드러지고, 아무도 몰랐던 그의 "칼날 같은 미소" 를 날카롭게 그려내는 절규. 순간 정적. 바닥에 엎어진 채 눈을 크게 뜬 류막심이 "나는 놀라" 하면서 손바닥으로 바닥을 파바바박 치는 소리가 그의 다급하고 당혹스런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년 죽었어" 라고 선고처럼 부르짖은 류막심은 무릎 꿇고 있는 자세 그대로 쓰러진 레베카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제 앞의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망연하던 눈이 서서히 가늘어진다. 늘어진 시체의 입가에 남아있는 미소. 온갖 감정으로 엉망이 된 표정이 경악과 절망으로 젖어든다. "웃는, 얼굴로" 하고 당시의 고통을 읊조린 류막심은 과거의 망령을 세게 밀어내며 벌떡 일어나 현재로 돌아온다.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 레베카의 칼날 같은 미소에 진절머리 내면서.
지난 삼연에는 공판씬이 제일 좋았는데, 이번 시즌에는 공판 이후 돌아온 맨덜리에서 비공식적으로 이어지는 음모와 갈등 부분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레베카의 손이 곳곳에 닿아있는 이 음습하고 비밀스러운 대저택에서 추궁과 의심과 걱정과 가장과 거짓이 넘실대며 팽팽한 긴장과 극도의 스릴을 만들어낸다. 고요한 정적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있는 소중한 유리병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숨소리마저 죽일 수밖에 없다. 파벨이 말 끝내기도 전에 쳐다도 안보고 "꺼져" 하는 류막심의 저음이 몹시 섹시하다. 아무 것도 못봤다며 증언을 거부하는 벤의 모습에, 이전에 본 회차들에서는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었는데, 이날은 긴장을 살짝 풀며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었다.
1막 청혼 장면에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망설이는 졔이히의 태도에, 류막심은 손가락 끝까지 힘을 주며 내민 왼손을 최대한 이히 가까이로 뻗는다. 끝내 졔이히의 손을 맞잡지 못한 그 손의 잔상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는데, 2막 피날레에서 다정하게 손을 내미는 류막심과 자연스럽게 그 손을 꼭 붙잡는 졔이히의 손을 보니 괜히 마음이 찡했다. 막심의 위선과 그를 감싸는 이히의 침묵이 마냥 아름다운 이야기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화자인 이히에게는 눈부신 해피엔딩이라는 점이 새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히마다 표현 방식과 노선이 다른 덕분에 극의 결이 매번 다르다.
크리스마스라고 커튼콜에 캐롤 반주로 다들 이것저것 준비해왔더라. 활활 활활 불타는 맨덜리 덕분에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다. 루돌프 머리띠를 쓰고 무대 제일 안쪽에 서계시던 류배우님까지, 너무너무 멋진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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