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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in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2020.01.12 3시
류정한 막심, 장은아 댄버스, 박지연 이히, 이창민 파벨, 문희경 반호퍼, 이소유 베아트리체, 박진우 프랭크, 이하 원캐. 오연 류막심 자다섯. 오연 류장페어 첫공. 류장젼. 2020년 첫 관극.
2020년의 시계가 처음으로 움직였다. 극악한 현업 일정으로 열흘이 넘도록 19년도에 머물고 있던 내 시간은, 무대 위의 류막심 목소리에 그제야 기지개를 펴며 새로운 한 해의 시동을 걸었다. 공연 시작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류배우님이 놀평 첫 소절을 시작하는 순간 참아볼 새도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이후로도 류막심의 노래마다 계속 눈물이 주륵주륵 쏟아졌다. 지독히 그리웠던 아름답고 황홀한 목소리에 심장이 새로운 존재감을 내뿜으며 뛰기 시작하고, 어두운 무대가 그 존재감 하나로 눈부신 빛을 내뿜으며, 형용하기 힘든 벅찬 설렘과 기쁨이 온몸을 휘감는다. 이 감정을 감히 글로 표현할 수 없음이 안타깝지만, 다시 공연장을 찾고 객석에 앉아 그 경험을 만끽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목소리에 다시 한 번 반하는 경험은 놀랍고 특별하다. 1227 공연에서도 감탄을 연신 거듭했지만, 0112 공연은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완벽했다. "이게 내가 맨덜리로 돌아온 이유" 라는 신이여 넘버 한구절이 깨달음처럼 내리꽂혔다. 바로 이 목소리를 들으러 내가 맨덜리로 돌아왔구나.
류막심의 디테일 자체는 1227 공연과 유사했으나, 전반적인 노선에서 감정적인 면모가 훨씬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숨쉬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게 오만하고 고고한 귀족의 태도를 보이다가도, 레베카와 관련된 모든 것들에 일일이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이 모습이 극대화되는 장면이 바로 공판씬 직후의 맨덜리 저택이다. 파벨이 쥐고 있는 패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태연을 가장한 채 정면돌파를 한다. 배짱 좋게 블러핑을 하면서도 위험한 단어들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류막심의 불안감은, 이미 진실을 알고 있는 객석의 긴장감으로 빠르게 전이된다. 편지, 파벨과의 관계, 보트보관소, 베이커라는 낯선 이름, 그리고 산부인과까지. 류막심의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빛과 개연성을 담아낸 사소한 제스쳐들이, 스산한 분위기 속 첨예한 대립과 팽팽한 힘겨루기를 한층 쫀쫀하고 긴박하게 만든다. 16년 삼연에서는 공판에서의 고압적인 류막심을 가장 좋아했는데, 이번 오연에서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아슬아슬한 스릴러를 펼쳐내는 맨덜리의 위태로운 류막심에 열광하고 있다.
이날 몬테카를로 호텔에서 이히에게 "젖은 테이블보 앞에 앉으실건가?" 하며 신문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던 류막심이 커피잔을 넘어뜨렸다. 순간적인 정적과 이걸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이는 찰나의 고민이 스치는 류막심의 표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짧지만 기나긴 시간이 흐르고 류막심은 결국 컵을 세우고 대사를 마저 이어나갔다. 여기서 끝날 줄 알았던 이날의 참사는, 이히와 대화를 하면서 도르르륵 커피잔을 반바퀴 정도 돌려 손잡이를 찾아 커피를 한모금 마시는 류막심으로 정점을 찍었다. 평소에 하지 않았던 이 행동이 커피를 쏟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리라는 생각을 하니 너무 귀엽고 유쾌했다. 지연이히의의 망설임에 "할 수 있어, 청혼!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하고 중얼거리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디테일도 이날 처음 봤는데 아주 잘 어울렸다. 하루또하루 넘버 시작 전 소파 등받이를 툭 내리치며 무너지듯 무릎을 꿇고 괴로워하는 디테일도 이날 처음이라고 들었다. 칼날송 직전 괴로운 과거의 기억을 곱씹으며 또르륵 흘리는 눈물 한줄기와 넘버 직후 쏟아내는 흐느낌이 잘 어울렸다. 칼날 같은 그 미소를 부르짖는 류막심의 고통이 강렬하고 생생하여 마주할 때마다 놀랍고 경탄스럽다.
지천명이라는 유의미한 숫자를 맞이하신 배우님의 생신을 여러모로 축하드릴 수 있어 영광이다. 앞으로도 무대 위에서 다채로운 모습으로 계속 만날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입덕 이후 가장 열렬하게 바래왔던 류빅터에 이어 류큘까지 돌아와서 너무너무 행복하다. 세상의 온갖 주접을 쏟아내는 격한 환영의 글 대신, 프랑켄만큼 잦은 빈도로 업로드될 드큘 후기들로 이 기쁨을 갈음하려 한다. 끝없이 상상만 해왔던 류큘을 영접할 기회가 주어지다니, 벌써부터 설레고 벅차서 자꾸 웃음이 배실배실 새어나온다. 특별한 맨덜리의 추억을 고스란히 끌어안은 채, 또다시 류막심을 마주할 다음 관극을 고대하고 있어야지. #감축지천명 #다스뮤지컬류정한 #류정한이장르다 #류막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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