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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니토드
in 샤롯데씨어터, 2019.11.27 8시
박은태 스위니, 린아 러빗, 김도형 터핀, 이지수 조안나, 신재범 토비.
이전 시즌과 달라진 극을 마주하는 경험은 호불호를 떠나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므로 변화가 탐탁치 않은 경우가 훨씬 많긴 하지만, 간직해둔 과거의 감상이 생생한 현재의 무대와 겹쳐지는 찰나들이 아주 즐겁다. 이전 시즌을 너무나 사랑했던 경우가 아니라면, 달라진 모든 것들에 대한 생경함은 때로 짜릿하기까지 하다. 공연이라는 장르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과 현시성은 시즌을 뛰어 넘는 재관극이라는 독특한 경험을 가능케 한다.
16년 오디 스위니를 두 번 밖에 보지 못했지만, 무대를 비롯한 변화의 폭이 상당하여 재미있었다. 16년에는 의상 및 분장과 괴리되는 새하얗고 텅빈 무대였는데, 이번 시즌은 벽돌의 형태와 질감과 색감으로 무대 삼면을 꽉꽉 닫은 무대였다. 당시 런던의 분위기가 묻어나긴 하나, 공장 같기도 하수구 같기도 오븐 안 같기도 한 어중간함이 애매했다. 의상과 분장은 16년과 유사한 맥락이었는데, 변화된 무대 디자인과 또다른 의미의 괴리가 있었다. 기괴함을 부각시킨 강렬한 분장과 색도 모양도 조화롭지 않은 누더기를 덕지덕지 연결한 의상은, 이백년 전 런던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관 같았다. 19세기 런던의 스테레오타입을 따라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극을 관통하는 연출 전반의 일관성은 유지했어야 한다.
조명 연출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좋았다. 오디컴퍼니의 작품에서 조명과 앙상블의 노래가 실망스러웠던 적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이 극의 목소리는 더 많았어야 했다. 손드하임 특유의 엇갈리는 박자와 어긋나게 쌓이는 음들은 소리만으로도 오싹한 전율과 날카로운 긴장을 조성하는데, 앙상블의 숫자가 부족하니 음악이 선사하는 극적 효과가 떨어졌다. 2막 City on Fire 넘버가 지나치게 아름다운 화음을 선사하여 당혹스러웠다. 손드하임의 음악은 미묘한 거부감과 불편함을 수반하는 불협화음이 핵심인데, 비명 같이 찢어지는 현을 제외하고는 귀에 설은 소리가 부재했다. 인물들의 행동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파국으로 치닫는 긴박함이 음악으로 표현되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뭔가 툭 끊길 듯한 청각적인 위태로움이 부족하니, 마지막 반전 직전까지의 장면들이 놀라울 정도로 밋밋했다. 대중성 등의 사유로 마니악한 매력을 다듬고 쳐냈다면, 평면화된 음악의 변화를 보완하는 연출이 수반되었어야 했다.
일부러 담백하고 정석적일 캐스팅을 고른 관극이었기에 연출의 한계가 더 명확하게 드러난 것도 있다. 다양한 형태의 광기가 불협화음처럼 쏟아지며 지독하고 잔인한 인간과 사회의 일면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이 극의 특색이 지나치게 희석되어 있었다. 벤자민 바커였으나 스위니 토드인 남자의 광기는 단순히 분노와 절망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고, 퍽퍽한 현실 앞에서도 옛기억을 잊지 못하고 면도날을 간직해온 러빗 부인의 광기는 지독한 사랑 때문만은 아니다. 복잡다단한 인물들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낼만한 여지보다 직관적으로 보여지는 광기에 치중하는 연출이 아쉬웠다. 무대에 가득한 직선의 형상은 잘 벼린 면도날의 서늘한 기운 대신 날카로운 칼의 강한 느낌을 담아냈다. 작품과 음악 자체가 지닌 힘과 맛깔나게 장면을 살리는 배우들의 능숙함이 극을 매력적으로 완성시켰으나, 3차원으로 표현될 수 있는 다채로움이 2차원에서 머무른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스포있음※
은위니는 삽시간에 표정을 바꾸며 서슬퍼런 노여움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에피파니의 강렬함은 환호를 저절로 쏟아내게 만들 정도로 짜릿했다. 이발소에서 사람들을 대할 때 스냅사진처럼 변하는 얼굴이 자꾸 눈에 밟혔는데, 평생을 이발사로 살아온 사람의 서비스직 태도가 본성처럼 내재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파이널 시퀀스에서 진실 앞에 절망하던 은위니가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걸며 러빗을 향해 손을 내미는 순간의 공기가 압도적이었다. 신경질적으로 손을 씻는 디테일이 잦아서 좋았으나, 조안나를 미끼로 터핀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에서 미친 듯이 키득거리며 웃다가 결국 울음으로 이어지는 노선은 다소 아쉬웠다. 안소니와 대화하는 1막 첫장면부터 눈물을 쏟는다거나 묘하게 어색한 대사톤 등은 불호였으나, 짙고 맹렬한 감정을 드러내는 눈빛과 노래는 훌륭했다. 오븐에 러빗을 밀어넣고 쏟아내는 절규 어린 고함은 듣는 것만으로도 오한이 들 정도였다. 개취로 좋아하는 배우 본체의 저음을 풍성하게 들을 수 있어 즐거웠다.
린러빗은 최고였다. 이 배우의 필모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어떠한 색깔이든 막힘 없이 다양하게 소화하는 모습에 새삼 반해버렸다. 확고한 노선을 거침 없이 밀고 나가는 린러빗의 기반에는 캐릭터에 대한 배우의 해석이 선연하게 담겨 있었다. 약간 아쉬웠던 점이라면, 토비가 스위니를 의심하는 2막 넘버에서 동요하는 감정이 드라마틱 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위에서 언급했듯 음악과 연출의 탓이 크지만, 배우가 조금 더 디테일하게 불안함을 강조해줬다면 절정으로 향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훨씬 잘 살아났을 것이다.
음색도 노래도 초반 노선도 나쁘지 않았던 재범토비가 불호였던 부분도 이와 비슷한 지점에 놓여있다. 이전 시즌들의 토비들은 지능이 약간 떨어지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으나, 이번 시즌의 토비들은 사랑을 받지 못하여 다소 맹목적이 된 순진함 정도로 머물렀다. 두 성향 모두 결말의 강한 반전을 보여주기에는 모자람이 없으나, 순식간에 돌변해버리는 상태의 개연성이 부족했다. 토드가 떨어뜨린 면도칼을 주워들고서는 갑자기 "칼!!!!!!" 하고 외치는 토비의 심적 변화가 너무 뜬금 없었다. 이 역시 연출 상의 한계가 있지만, 배우라면 적어도 관객이 어느 정도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토드의 목을 긋고 난 이후의 광기까지 잘 이어지지 않아서, 조명이 바뀌고 The Ballad of Sweeney Todd 를 시작하는 매력적인 음색에 위화감마저 느껴졌다. 스위니로 인한 공포에 사로잡힌 채, 끔찍한 악취로 가득한 하수구를 정처 없이 헤매며, 널려 있는 시체 사이사이로 도망치는 토비. 이 모습에 장면 할애만 확실하게 했다면, 객석은 의문이나 의아함 대신 반전이 선사하는 카타르시스에 전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음 하나, 장면 하나에 짜릿함을 느끼며 극 하나를 고스란히 끌어안는 관극이 오랜만이라 즐거웠다. 작품 자체가 너무나 취향이라서 더 행복하고 더 아쉽다. 다음 시즌은 부디 짜릿함을 누리며 행복하게 회전돌 수 있는 연출이길 바라며, 이번 시즌은 자첫자막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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