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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
in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2019.12.07 7시
윤공주 아이다, 정선아 암네리스, 최재림 라다메스, 박송권 조세르. 국카 전관.
16년 자첫자막 관극에서 인상 깊었던 연출들은 3년이 지난 자둘 관극에서도 여전히 황홀하고 아름다웠다. 디즈니 극 특유의 동화적인 색감과 깔끔하고 담백한 실루엣을 활용한 배경 연출은 가슴을 설레게 했다. 대형천 하나로 나일강 빨래터가 복잡하고 활기 넘치는 시장이 되고, 순식간에 라다메스의 천막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공간 전환 연출은 다시 봐도 심장을 벅차게 했다. 이외에도 장면 구성이나 넘버 배치, 동선, 의상, 소품 등의 연출이 마음을 설레게 했는데, 이는 예전 후기로 충분히 갈음할 수 있을 듯하다. (참고) 당시의 감상과 달라진 건 커튼콜의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입고 나오는 현대 의상인데, 기나긴 세월을 지나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사랑을 시사하기 위한 연출 상 의도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화자인 암네리스는 처음과 끝 장면 모두 파라오의 의상을 벗지 않기 때문에 이 대비가 한층 명확해진다. 마지막 인사에서 라다메스가 정가운데 서있는 건 여전히 불편했다. 이 극은 아이다 본인의 성장은 물론이고, 아이다로 인해 변화하는 암네리스와 라다메스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타이틀롤의 주인공을 대체 왜 가운데에 세우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스포있음※
아이다와 암네리스는 각자의 운명을 각기 다르게 마주한다. 힘없는 국가의 공주로 태어나 민족의 희망을 고스란히 부담으로 끌어안은 채 살던 아이다, 강한 국가의 공주로 태어나 대중이 요구하고 위치가 강요하는 정체성을 제 의지 인양 수용한 채 살던 암네리스. 고통스러운 길이지만 지도자가 되어 주겠노라 결심하는 아이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변화해야 하노라 절감하는 암네리스. 본인의 안위보다 타인의 아픔을 앞서 생각하며 신의 강요를 수용하려던 아이다, 눈앞의 아름다움보다 시야에 닿지 않는 전쟁과 절망을 먼저 생각하며 신의 역할을 가늠하던 암네리스. 치열하게 신에게 저항하던 아이다는 끝내 개인으로서의 자유와 사랑을 선택했고, 한 인간으로서 기꺼이 죽음을 맞이한다. 처절하게 진실을 직시한 암네리스는 결국 신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선택했고, '이시스의 딸'로서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고 전쟁의 종언을 선포한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아이다는 암네리스의 고독과 고민을 유일하게 이해하고 위로해준 사람이고, 암네리스는 아이다의 결정을 고스란히 인정하고 용서해준 사람이다. 국적과 운명을 초월하는 공감과 연대는 인간을 성장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고, 아이다와 암네리스는 상대의 존재로 인해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었다.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에 더없이 자유로운 두 영혼이 가장 어둡고 갑갑한 공간에 갇힌 순간, 희망이 피어오른다. 서로의 손을 꽉 붙잡은 아이다와 라다메스는, 운명을 떨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리라 굳게 믿으며 마지막까지 자유를 꿈꾼다.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라고, 스스로 믿고 택한 자유만이 진정한 구원이라고, 적대를 넘어선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존재의의라고 말이다.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이집트의 죽음관으로 더욱 설득력을 지닌 이 매력적인 극이 그랜드 피날레라니.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몇 번 더 챙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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