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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in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2018.07.04 8시 공연
류정한 빅터/쟈크, 박은태 앙리/괴물, 박혜나 엘렌/에바, 안시하 줄리아/까뜨린느, 김대종 룽게/이고르, 이지훈 어린 빅터, 신서린 어린 줄리아. 류빅터/류쟈크, 은앙리/은괴물, 혜나엘렌/혜나에바, 시하줄리아/시하까뜨, 대종룽게/대종이고르. 류은 페어 자셋, 류빅터 자다섯. 류혜나 페어 첫공.
프리뷰 이후로 오랜만에 만나는 류은이어서 자리가 그리 좋지 않았음에도 완벽히 몰입한 관극이었다. 이번 시즌 들어 가장 많이 펑펑 운, 단 한 순간도 쫀쫀함을 잃지 않은 공연이었다. 이날 류빅터나 은앙리 두 분의 목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최상이 아닌 컨디션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더 날카롭고 더 묵직하며 더 맹렬하게 연기하고 노래하는 노련한 배우들이기에 공연 자체는 삼연 5번의 관극 중 가장 좋았다. 특히 은앙/은괴는, 지금까지 봐왔던 회차 중 가장 섬세하고 설득력 있어서 극 내내 압도당했다. 플뷰에서 본 류은은 완벽하게 들어 맞는 두 개의 톱니바퀴 같았다면, 이날은 상대의 노선을 완벽히 이해하고 자신의 노선에 녹여내는 유기체 같았다. 이 극은 빅터가 앙리에게, 다시 앙리가 빅터와 괴물에게, 그로 인해 빅터와 괴물이 서로 얽히고 설키며 비극으로 치닫는 이야기인데, 이러한 캐릭터 각각의 영향력이 몹시 극적으로 표현된 날이었다.
※스포있음※
이날 은앙리는 빅터의 '친구' 로서가 아니라, 빅터로 인해 꿈 꿀 수 있었던 '이상' 을 위하여 기꺼이 제 목숨을 내놓았다. "그래야 우리 연구를!! 계속할 수 있잖아!" 하며 강세를 주고, 너꿈속 중반까지 철창 너머 빅터를 등진 채 무대 왼쪽 앞 객석을 향해 서서 노래했다. "포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라며 류빅의 손을 꽈악 붙드는 뒷모습이 단단했다. 자신이 보여준 '꿈' 을 오히려 자신보다 더 굳게 믿고 추구하는 은앙리의 의지에, 류빅터는 더 절박하게 그의 부재를 실감하며 더 처절하게 그를 되살리려 노력한다. 창살 밖에 무릎 꿇고 고개를 푹 떨군 채 흐느끼며 오열하는 류빅터가 지독히도 외로워 보였다. 결심과 각오가 어린 발걸음으로 처형대에 오른 은앙. 밧줄로 묶여 있는 양 손을 맞잡고 기도하듯 고개를 살짝 떨구고 있던 은앙은, 고개를 들어 단호한 눈빛으로 "너의 꿈에~" 하며 빅터와 공유한 꿈을 그리고, "살고싶, 어~" 하며 두렵지만 굳건한 의지로 제 선택의 결과와 마주한다.
목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평소보다 낮은 저음을 풍성하게 퍼지도록 눌러 말하고 부르는 은괴. 온갖 풍파와 감정이 무겁게 침잠하여 몸 전체를 짙은 안개처럼 휘감고 있는 듯한 괴물이었다. 류빅의 앙리라는 호명에 "앙리, 앙리... 앙리, 앙리!" 하며 이를 악물고 중얼거리는데, 마치 그 이름이 제 존재가 탄생했을 때부터 안고 있는 저주이자 원죄라는 듯한 헛웃음과 비아냥이 실렸다. 두통 디테일이나, 너꿈속에서 기도하던 은앙과 기도하듯 바닥에 엎드린 채 양 손을 모으고 있는 은괴의 유사한 행동 등, 별개의 두 존재가 하나의 머리로 공유하는 '기억' 을 전제하는 평소 은괴 노선이 근간에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괴물이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고민이 선명하여, 지금껏 만나본 은괴 회차 중 가장 앙리와 분리가 많이 된 괴물이었다. 후회 넘버에서도 아이에게 유난히 동정심이나 측은지심이 없었다. 나이와 무관하게 그저 '인간' 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미 거리감을 두고 있던 은괴는, 아이가 악의 없이 지적하는 제 목의 상처를 손으로 짚어 보고선 아무런 죄책감 없이 부드럽고 단호하게 등을 툭 밀어 버린다. 인간이 되고 싶다거나, 적어도 인간과 비슷한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한 괴물이었다. "한 괴물이 있었네,"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시작하여 엉엉 울며 흐릿해지는 허밍은, 언제나 혼자 남겨질 수밖에 없는 끝 모를 외로움으로 인한 지독한 슬픔이자 결코 손에 쥘 수 없는 행복을 끝끝내 포기해버린 허망함이었다.
이날 인상적이었던 난괴물 마지막 부분 디테일. 앙상블의 횃불을 뺏어들던 은괴가 불을 꺼뜨렸는데, 재빠르게 스위치를 두어번 눌러보더니 그대로 무대 오른쪽 백스테이지로 평소처럼 막대기를 던져넣었다. 자연발화가 발생한 격투장에서 연기가 뭉개뭉개 뿜어져 나오는데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이어서 무대 위 은괴가 완전히 가릴 정도였다. 동일한 소품참사가 0629 류은 농카 공연에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무대팀에서 주의를 더 기울여줬으면 좋겠다. 그 짙뿌연 연기를 가르며 오케 지휘석 바로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 나온 은괴는, 양 팔을 벌리며 "세상에 혼자가 된다는 절망 속에 빠뜨리리라" 하고 고음을 찍고선 한참을 제자리에 서서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탁탁, 타들어가는 화염 소리만이 존재하는 고요한 적막 속, 천천히 몸을 돌려 황폐해진 격투장을 돌아본다. 큰 반원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그리며 무대 저 안쪽까지 걸어가 객석을 등진 채 주위를 둘러보던 은괴는, 휙 뒤돌아 조금 더 보폭이 커진 걸음으로 남은 반원을 그리며 다시 무대 앞 제자리로 돌아온다. 속박과 고통과 아픔만을 주던 장소를 남김없이 불살라 폐허로 만든 자신의 결과물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는 은괴의 이날 디테일이, 사뭇 신선하여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제 손으로 만들어낸 파국을 바라보며 어떠한 생각을 했을지, 그게 과연 자신이 원하는 결말이었을지, 잔인한 복수가 일말의 후련함이나 기쁨을 주기는 했을지. 절망과 분노와 고통이 뒤섞인 표정으로, 끓어오르는 신음을 힘겹게 토해내며 무너지듯 무릎을 꿇고 쥐어뜯듯 가슴께를 붙잡는다. 소품참사로 인해 평소와는 다른 동작으로 시작한 넘버 인터벌을, 이날 노선에 가장 잘 녹아들 수 있는 동선으로 바꿔 감정을 이어나가는 은괴의 순발력과 노련함에 몹시 감탄했고, 매우 강렬하게 몰입했다. 재연 때보다 훨씬 좋아진 은괴를 매다리 은버트로 먼저 보내기가 너무나 아쉽다.
특별히 가장 좋아하는 은앙/은괴 부분은 '꿈' 이라는 단어의 이중적 의미를 극명하게 구분짓는 노선이다. 무력함에 젖어 살던 자신을 구원해 준 빅터와 함께 꾸는 '꿈' 은 은앙의 이상이자 목표이자 삶 그 자체다. 직접 선택하고 추구하여 마침내 스스로마저 불사를 수 있는 찬란한, 은앙의 꿈. 반면 은괴가 어젯밤에 꾸었다던 '꿈' 은, 결코 이룰 수 없고 얻을 수 없는 환상이다. "어젯밤 나는...... 꿈꾸었네 / 누군가 날 / 꼭 안아, 주는..... 꿈." 이라고 부르는 난괴물 호흡 디테일이 은괴의 노선과 너무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지독한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처절히 갈구하지만 자신을 만들어준 창조주에게조차 철저히 외면 당하는, 은괴의 꿈. 은앙의 너꿈속 넘버와 은괴의 난괴물 넘버가 드러내는 '꿈' 의 대비는, 두 캐릭터의 절망을 한층 극대화한다.
이날 한잔술에서 은앙은 "이유나 좀 압시다!" 하고 물으면서 류빅의 어깨 위에 한 손을 든든하게 올려 놓고 있었다. 은앙은 류빅을 챙기고 류빅은 은앙을 의지하는 관계성이 보이는 디테일이라 좋았다. 그런 친구가 자기 대신 죽는 것을 본 류빅은 집착에 가까운 광기로 은앙을 살려내려 애쓴다. 전체적으로 묵직하고 어두운 생창이었는데, "붉!은!피! 솟구쳐!" 부분을 엄청 강하게 살렸다. 코트 벗어서 던질 때 실험일지가 탈출하여 내적 동공지진을 하였으나, 대종룽게가 무사히 주워 주머니에 넣고 전달했다. 주변 사람들의 죽음으로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류빅 감정이 갈수록 처절해진다. 룽게의 시체를 안고 "아아아아, 아아아악" 하는 절규를 길고 고통스럽게 냈으며, 엘렌을 껴안고 "누나 정말 미안해" 라며 엉엉 울고, 절망 넘버에서 완전히 넋나간 채 울다가 "왔는가 나의 창조주" 라는 은괴의 말에 뒷걸음질 치다가 바닥에 나뒹군다. "절망에 무너진 자여" 라는 부름에 "그만!! 제발 그만해!!!" 하며 비명처럼 외치며 오열한다. 후회 넘버에서 널브러져 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줄리아에게 다가가는 장면에서 "돌이켜보면 지난 세월들 / 모두 내 이기적인 욕심 뿐" 라고 하는 가사가 이날 류빅 노선 그 자체였다. 룽게의 이름을 부르고, 줄리아와 엘렌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던 류빅은, 이 모든 비극이 저주받은 자신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가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해치는 것을 차례차례 목격한 류빅은, 저주나 운명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행동 때문에 벌어진 이 모든 결과가 초래되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모든 걸 다 잃고 나서야. 북극에서 절박하며 바닥을 기어 내뻗던 손 바로 앞에서 은괴에게 총을 빼앗긴 류빅은, 그 자세 그대로 손가락을 파들파들 떨며 절망한다. 그리고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은괴를 마주하고, 지난 류한 때처럼 소리 내어 웃지는 않았지만 역시 양 팔을 벌린 채 기쁨에 가까운 신음을 토하며 울듯이 웃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바로 그 찰나, 광기가 번뜩이는 류빅의 눈빛이 선명하게 맺혔다. 탕, 하며 총에 맞은 은괴는 천천히 말을 이어간다. 빅터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는데 결국 닿지 못하고 툭 떨어지는 팔. 망연히 내민 류빅의 손이 아슬아슬하게 맞잡지 못할 정도로 팔을 허공으로 뻗으며 뒤로 넘어가는 은괴의 디테일은, 빅터가 느끼는 허무를 더 부각시켜서 참 좋다. 덜덜 떨며 일어나보라 은괴의 몸을 계속 툭툭 치는 류빅과 미동도 없는 은괴. "아..아...ㅏ...ㅇ..ㄹ.." 정도로 단어를 이어 이름을 부르지 못할 정도로 무너져내린 류빅. 이날 류빅은 은괴에게서 은앙을 보았다기 보다는,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남겨지는 것이 두렵기에 증오스러운 원수일지라도 살아서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커보였다. 그래서 결국 아득바득 북극을 벗어나려 애쓰기 보다는, 직접 제 목숨을 끊어 지긋지긋한 운명에서 도망칠 것 같은 빅터였다.
혜나엘렌/에바는 자첫이었는데, 역시 좋았다. 본인 역시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사는 혜나엘렌은, 외로운 소년 이야기 넘버에서 이런저런 디테일이 많았다. 화장터를 향해 오열하며 "어머니!" 라고 부르고, 처음 만난 룽게의 손을 잡고 나가는 빅터의 뒷모습을 보다가 몸을 돌려 하늘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며, 전류가 흐르는 소리에는 반응이 없다가 개가 짖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창가를 돌아본다. 기차역에서 지훈빅터는 떠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는 떼쓰듯 엉엉 울면서 엘렌을 꽉 껴안는데, 이 때 서엘렌은 단호하게 손을 떼어내는 반면 혜나엘렌은 같이 울면서 차마 떠나보내기 힘들다는 노선이었다. 서엘렌은 "나도 어쩔 도리가 없어" 라고 하는데 혜나엘렌은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이렇게 미세하게 다른 부분도 있었다. 2막 기차역 장면 감정도 무척 좋았고. 그리고 충격과 쾌감의 혜나에바ㅋㅋㅋㅋㅋ 남세 너무 찰떡 아닌가요ㅋㅋㅋㅋㅋ 애교 넘치는 에바라는 소문은 미리 듣고 갔는데도, 통통 튀는 매력을 보며 광대가 절로 치솟았다. 서에바는 공포를 조성하는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휘어잡는다면, 혜나에바는 예측하기 힘든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고 간다. 이날은 류쟠과 페어첫공이라서 특별한 애드립을 만들진 않은 것 같은데, 추후 공연들에서 류쟠도 같이 애교를 장착하고 나올 듯하여 몹시 기대가 된다. 아직은 신나서 꺄아아아 하며 이리저리 쏘다니는 혜에바에게 류쟠이 질질 끌려 가는 느낌이었다ㅋㅋ "돈 빌린 년은 입에 거미줄이라도 치랴!!!" 하면서 페르난도 목에 채찍을 들이미는 혜나엘렌 행동에 정말 식겁하며 떼어내고 "너 미쳤어?!" 하는 류쟠이 굉장히 진심 같았다ㅋㅋㅋ "오리지날 정품" 대신 "품절" 드립을 치는 류쟠ㅋㅋㅋㅋ "어머 저 여자가 내 여자야~" 꺄르륵 거리며 퇴장했다.
언제나 믿고 보는 시하까뜨의 이날 디테일도 하나. 은괴가 "내가 무섭지 않아?" 라고 묻고선 위협적으로 상체를 일으키며 한 손으로는 까뜨린느의 손목을, 다른 한 손으로는 목을 죄듯이 감싸 쥐며 "내가 인간이 아닌데도?" 라 재차 말한다. 눈을 질끈 감고 덜덜 떨며 두려움에 질려 있던 시하까뜨는 각오했던 아픔이 찾아오지 않자 살며시 눈을 뜨고 은괴의 얼굴을, 그의 눈을 들여다본다. 자신을 해칠 의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 맑은 눈을 알아본 시하까뜨는 안심한 듯 옅은 미소까지 지으며 "인간이 아니라서, 인간이 아니라서 무섭지 않아요!" 라 답한다.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다보면 동선이나 행동반경, 위치 등이 루틴에서 벗어날 때가 종종 있는데,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농밀하게 감정을 살려 상황을 이어나가는 배우들의 연륜은 볼 때마다 놀랍다. 오케도 이 정도의 순발력이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부음감님, 절망 박자 언제쯤 정확하게 맞춰 주실 건가요ㅠ
후기 좀... 짧게 쓰고 싶다..... 입덕 이후 최고로 잦은 빈도로 관극 중인데, 리뷰가 매번 길어져서 너무 힘들다. 그만큼 재미있고 행복한 관극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므로 불만은 없지만, 그래도 힘들어ㅠㅠ 그래도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질테니 최선을 다해야지. 다음 관극은 류성 페어 첫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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