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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

in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2016.03.25 8시 공연





원래 지난주 윤탁을 예매했었는데, 근 2주 가까이 몸이 너무 안좋아서 포기했었다. 그런데 또 헤드윅이 미치도록 보고싶어서 꾸역꾸역 제대로 낫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홍아센으로 향했다. 덕분에 생각보다 늦어진 올뉴헤드윅 자첫이 되었지만, 이 날 공연이 참 좋아서 나름 위로가 됐다. 달라진 극장에서 조금 변한 연출과 많이 그리웠던 조명 및 실루엣을 보고 있자니 웃는데도 눈물이 차올랐다. 웃으면서 울고, 또 그러면서 웃었다. 이 극의 특성 상 중반까지는 관객석도 밝은 편이라서 괜히 민망했다. 





아래는 스포주의 적을거니까 위에서 잠깐 자리후기. 오블 1열 시제석이었는데 나름 괜찮았다. 토미 노래 나오는 문이나 이츠학 앉아있는 자리가 무대 오른쪽이라서 거의 안보이는 것 말고는 무대 전체가 잘 보였다. 바로 앞에 대형스피커가 있어서 앵그리인치 같은 노래에서 살짝 귀가 아프긴 했지만 음향도 나쁘지 않았다. 헤드윅이 주로 왼블 쪽에서 뭔가를 많이 하긴했지만 오블도 잘 챙겨줘서 좋았고. 다만 앞자리인데도 관크가.... 헤드윅이 관객과 함께 소통하는 극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극 중간에 떠들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앞줄에선 한국인 둘이, 뒷줄에선 중국인 둘이 극 초반 내내 떠드는데 짜증이 확 나서 기회를 엿보다가 슈가대디 끝나고 윤드윅이 반대쪽 보고 있을 때 잽싸게 앞쪽에 직고나리했다. 그러니까 뒷쪽도 좀 조용해졌지만, 왜 그렇게 공연매너들이 없는지.





윤도현 헤드윅, 제이민 이츠학. 윤드윅, 제츠학. 윤제 페어첫공.  



일단 오빠얌, 이번 시즌 윤드윅 꼭 보러오세요. "그렇게 남자다운 헤드윅은 본 적이 없다" 라고 했는데, 윤드윅의 미모와 언니미가 얼마나 낭낭한지 걸크러쉬가 어마어마했다. 내가 뎅드윅 밖에 못보긴 했지만, 윤드윅은 음색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뎅드윅이랑 엄청 닮아서 깜짝 놀랐다. 녹음된 윤토미의 목소리가 정말 뎅토미와 비슷했다. 뎅드윅의 확확 튀는 변덕스러움에서 깨방정을 조금 덜어낸 느낌인데, 내면은 풋풋하지만 겉은 더 매끈하게 익어 있는 이미지였다. 아아 정리가 명확하게 안되는데 일단 더 봐야겠다....ㅋㅋ 



※스포주의※



일단 가장 인상적이었던 연기는 엄마에게 떙깡도 부리고 사랑을 갈구하기도 하는 애처로운 소년 한셀이었다. 왜 때리냐고 징징대는 모습 아래에 그를 향한 사랑이 깔려있었고 나중에 이츠학에게 "자유에는 댓가가 필요한 법" 이라고 말하는 모습에도 예전 그 기억을 잊지 못하는 인상이 아주 강했다. 정작 말해준 본인은 기억도 못하지만 그가 해줬던, 사랑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잊지 못하고 평생 헤어진 반쪽을 찾아 헤매는 헤드윅의 인생 자체가 엄마라는 존재에 뿌리를 깊게 두고 있다. 윤드윅은 어린 토미도 엄청 찌질하게 잘 표현했다. 사춘기 지난 아들이 있으셨던가...? 싶을 정도로 오바스럽지만 현실적인 토미를 보여줘서 재미있었다. 


윤드윅 본인도 매력적이었는데, 일단 배우가 안보였다. 워낙 유명하고 자주 접한 연예인이라서 중간중간 현입이 될까 걱정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헤드윅 그 자체였다. 이번 시즌 개막하고 초반에는 스토리텔링이 불친절하다는 평들을 많이 접했는데, 공연을 거듭하면서 입에 좀 붙어가는지 핵심적인 내용들을 빠뜨리지 않고 잘 넘어갔다. 토미 소개할 때 중블 오피석에 대고 "여기 엄청 유명한 분이 오셨습니다~" 할 때 관객이 깜짝 놀라니까 그 즉시 고나리를 시전했다. 옆에 연예인이라도 있는 줄 알았냐, 너네 나 보러 온 거 아니냐, 구박하다가, 지금 이거 전부 과거회상이야, 다 내가 재현하는 거라고 알겠니? 하면서 설명해줬다. 본인도 내심 터졌는지, 헷갈리지? 하면서 허리 접고 살짝 웃다가 다시 이야기로 유려하게 넘어갔다. 아직 트레일러씬 대사가 완벽히 입에 붙진 않았지만 감정선은 정말 좋았다. 반쪽을 찾았다는 환희, 파르르 떨리는 여린 감성, 무너지듯 툭 떨어지는 절망까지. 


헤드윅은 딱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눈화장을 하고 있다. 길고 무거운 속눈썹과 두껍게 칠한 형형색색의 반짝이는 섀딩이 시선을 휘어잡는다. 그래서 그 속에 감춰진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입가 가득 미소를 짓고 행복한 척 하지만 깊숙하게 숨어있는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멀고 아득하다. 가발을 쓰고 화려한 옷을 입고 두터운 화장을 하면서 본연의 모습을 감춰버리는 자기방어기제가 뚜렷하다. 헤드윅의 상징은 가발이지만, 본질은 눈이 아닐까.


윤드윅에게 아쉬운 점이 딱 하나 있다면, 마지막 Midnight Radio 를 부를 때 이츠학을 자유롭게 풀어준 이후의 감정선이다. 전반적으로 훌륭한 노래실력에 감정선까지 제대로 붙들고 이어나가서 기대 이상이었는데, 마지막 절정에서는 윤도현 배우 본인이 보여서 살짝 아쉬웠다. 고음 짱짱하게 뽑아내서 짜릿하긴 했지만, 끝의 여운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그거 말고는 전부 좋았다. 엄마랑 보러간 공연을 말하며 헤븐을 불러줘서 울컥했다ㅠㅠ 몇소절을 카랑카랑하게 부르는데, 윤유다 너무 궁금하더라. 아아 지크슈 보고 싶다ㅠㅠ 위윌락유도 끝내주게 잘 불렀는데 금방 끝내버려서 안타까웠다. 일으켜세운 관객들이 앉지 않고 더 불러달라고 환호하니까 현실 당황한 윤드윅이 어떡하지? 이러다가 키보드 쪽에 가서 속닥속닥 하더니 데스페라도를 불러줬다! 그것도 꽤 길게, 아주 멋지게. 계속 이런 적 처음이라고 강조하며 생색내는 게 얼마나 언니답던지ㅋㅋ 이거 말고도 관객 일으켜서 뺨 만져주며 은혜입은 거라고 드립치고, 롹앤롤과 펑크락제스쳐도 성수라고 말하기도 했다. 





무대가 바뀌면서 헤드윅이 '브로드웨이' 임을 여러 번 강조했다. 막을 내린 공연의 리뷰를 읽어주면서 크레인을 강조했는데, 나중에 앵그리인치에서 수술실을 연상케하는 크레인 안쪽의 새하얀 조명 아래 헤드윅이 몸부림치는 연출을 집어넣어서 감탄했다. Wig in a Box 에서 트레일러 문이 왼쪽으로 미끄러지듯 열리면서 헤드윅의 눈부신 방이 짠 나타나는 연출도 매력적이었다. 이츠학이 무대 오른쪽에 자동차를 끌어내더니, 본네트를 열고 헤드윅의 오븐으로 활용했다. 안쪽에 카메라가 있어서 화면에 헤드윅 얼굴이 줌업됐는데, 오블 극싸에선 본인 얼굴이 더 잘보여서 영상은 안봤다. 슈가대디 전에 한셀이 태닝하는 것도 그 자동차 본넷 위였는데, 윤드윅이 낑낑거리면서 올라가니까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게 쉬워보이지? 라면서 새침하게 짜증내던 윤드윅ㅋㅋ 트레일러 사다리 오르내리는 것도 아슬아슬 해보이던데 다치지 말고 끝까지 조심들 하시길. 다른 조명은 전반적으로 백암 시절과 비슷했다. 동일한 극을 다른 시즌으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그 조명 덕분에 무척 그리워했던 극을 다시 마주한 기쁨과 행복함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특유의 분위기가 선명한 색으로 칠해지면서 기억 속의 이미지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순간의 감격이란. 하아. 헤드윅이 돌아왔구나.  


음악 역시 훌륭했다. 윤드윅이 앵밴과의 남다른 호흡을 자랑했는데, 완벽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음악적인 완성도가 팍팍 느껴졌다. Angry Inch 나 Exquisite Corpse 는 지난 시즌과도 조금 다르게 편곡된 것 같은데 잘은 모르겠다. 평소에 2014년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캐슷 버젼의 오슷을 듣고 다녀서 가사도 반주도 살짝 생경하게 느껴지는 곳이 있었는데, 역시 정확하진 않다. 밴드의 실수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닌 듯하지만 워낙 프로들이라서 시치미 뚝 떼고 엄청 유려하게 넘어가서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커튼콜 때 밴드 한 분 한 분 소개하는 부분에서 각자 악기 연주해주는 부분이 꽤 길어서 정말 좋았다. 키보드 소개할 때 윤드윅도 같이 치는데 열정적으로 실수 없이 멋지게 쳐서 내심 놀랐다. 앵밴은 사랑입니다.


아, 생각난 김에. 윤드윅 마룬5나 빕/스 애드립은 빼줬으면 좋겠다. 이해를 돕기 위함이라지만 갑자기 현입이 확 되면서 아쉬웠다. 남자 관객이 꽤 많았는데, 아무래도 대중적으로 가장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헤드윅이 아닐까 싶다. 초반에는 욕을 안해서 의외였는데, 자기 키만한 밍크코트를 들고온 제츠학이 밍기적거리는 윤드윅 때문에 아씨, 하고 살짝 중얼거리니까 그걸 놓치지 않으며 말했다. 뭐? 아 씨발 무거워? 너 그렇게 말했니? 그럼 난 씨발 더워!!!!! 하면서 빼액 짜증을 냈다ㅋㅋㅋㅋ 그 와중에 도리도리하고 있는 제츠학은 사랑스러웠고ㅋㅋ 결국 코트 입고 투덜거리다가, 이 옷 예뻐? 어울려? 라는 말에 원하는 대답을 듣고는, 예쁘면 됐어! 예쁘면 다 용서돼!! 하며 총총거리며 문 쪽으로 뛰어갔다. 그 와중에 사실 추웠다고 그래서 입은 거라며 애써 포장하기는ㅋㅋ 이거 말고는 가슴 애드립이ㅋㅋㅋㅋ 윅인어박스에서 신나게 뛰어놀다가 원피스 가슴 쪽이 흐트러져서 뒤돌아서 정리하는데 객석에서 웃음 터지고 환호하고 휘파람 불었다. 그러다가 앞쪽에서 누가 부러워요~ 하니까 윤드윅이 빵 터져서 뭐? 얘가 지금 뭐래니? 부러워? 라며 웃었다. 다들 지금 어디보고 있냐, 시선이 내 눈이랑 안 맞는다, 나 예쁘냐, 어디가 제일 예쁘냐? 하면서 애드립을 마구 던졌다. 마지막 가발 쓰고 나올 때 의상 보니까 토마토가 유난히도 실하긴 했더만.......ㅎㅎㅎㅎ 정말 두 번째 드레스랑 가발은 너어어어무 예뻤다. 중간중간 가발 덧대는 것도 엄청 잘 어울렸고. 아 윤드윅 정말 예쁘고 멋지고 다 했다ㅠㅠb 


헤드윅 옷 갈아입으러 갔을 때 이츠학 솔로에서 제츠학이 Creep 을 불러줬다. 매번 바뀌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역시 명곡. 행복했다. 제츠학은 작고 소중해진 탁츠학 이미지였다. 직접적으로 헤드윅을 향해서 짜증스런 멘트를 치는 건 아니지만, 툴툴거리며 반항하는 모습으로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무대 위를 빨빨거리며 헤드윅을 잘 챙겨줬다. 내가 저 화상을 챙겨야지, 누가 챙겨, 이런 느낌. 펑크락제스쳐 당한 관객에게 잽싸게 휴지를 뭉텅이로 갖다 주는 모습에 윤드윅이 오오, 하면서 착하네, 하고 칭찬을 했다. 이 드립을 이날 공연 내내 계속하다가 종국에는 관객한테도 따라하라고 시키기도 했다. 내심 이츠학을 많이 아끼더라. 마지막 미드나잇라디오에서 울먹이면서 제대로 노래를 못하는 제츠학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괜찮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여줬다. 기대 이상으로 잘 어울리는 페어였다. 페어 첫공임을 공연 끝나고 나서야 알았는데, 참 잘했다, 나. 그러고보니 십주년공연 자첫 때도 생각없이 잡은 공연이 뎅탁 첫공이었는데ㅋㅋ 페어 첫공의 묘한 분위기가 잘 어울렸다. 





와, 정말 두서없는 후기다. 오랜만이지만 헤드헤즈의 피가 어디 가나요. 앞자리는 잡기가 어렵고 뒷자리는 가격 때문에 이번 시즌은 자주 못갈 것 같아서 아쉽다. 자유이용권 이런 거 있었음 좋겠다....ㅠㅠ 대학로 집 가까워서 좋은데..... 애드립 많고 관객과 소통하며, '공연' 장르 특유의 일회성이 한껏 부각되는 작품이어서 정말 매 공연이 매번 다르다. 그래서 덕들은 회전문을 더욱 가열차게 돌게 됩니다......ㅎ 뽀뒥은 한 장 있고, 문뒥도 보고 싶은데 아직 고민 중이다. 곧 4차 선예매 있던데 워크샵 날이야...ㅠㅠㅠㅠ 아오... 원래 오늘로 계획되어 있어서 싢콘도 포기했는데 미뤄지고 딱 그날로 잡냐고....ㅋ 현생이 덕질을 방해해요!!! ㅠㅠ



무기력하고 조금 우울하던 일상을 다시 딛고 일어날 위로를 받고 왔다. 단순히 괜찮다고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롹앤롤러들아 함께 손잡고 나가자! 라는 메시지라서 더욱 따뜻하고 힘차게 다가온다. 이번 시즌 오슷 내줬으면 좋겠다. 엠디는 아직 안샀는데, 다음에 가면 생각해봐야지. 헤드윅, 다시 만나서 무척 반가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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