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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10박 11일 동안 머물고 돌아왔다. 3월처럼 가족여행이어서 스케쥴을 빡빡하게 세워 빠릿하게 움직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3월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왔다. 특히, 대학에 입학한 이래 주체적으로 했던 모든 여행을 통틀어 '최초'의 경험을 했다. 바로, 자동차 여행. 언제나 뚜벅이를 추구하며, 하나의 도시 안에서는 대중교통도 거의 이용하지 않았던 과거의 여행들과 다르게 이번 제주여행에서는 렌트카를 열심히 몰고 다녔다. 물론 혼자서. 이 자차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일단은 첫 3일에 대해 적어봐야겠다.





갈 때 올 때 다 진에어를 탔다. 소음 좀 심하고 기체가 좀 흔들리긴 하지만, 저가항공 한두 번 탄 것도 아니고..ㅎ





도착해서 차를 렌트하고 4시 쯤 흑돼지로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술이 안 땡겨서 자발적으로 운전대 잡고 숙소가 있는 서귀포로 이동했다. 1135도로(=평화로)는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이어주는 가장 짧은 도로다. 해가 떨어지는 장면이 아주 환상적으로 펼쳐졌지만, 운전하느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ㅠ 아빠가 옆에서 이토록 멋있는 노을은 처음이라며 감탄하셔서 조금 얄밉기도 했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가족여행에 항상 운전사 역할을 불평 하나 없이 하셨다는 걸 잘 알기에 그저 허허 웃고 말았다.   





체크인을 하고 근처의 횟집에 가서 뱅어돔 회를 먹었다. 한라산 소주는 별 맛 없더라. 첫날은 종일 먹기만 했다.






다음날 아침, 아무도 일어날 생각이 없는 방을 조용히 나가서 산책을 했다. 숙소가 켄sing턴 서귀포점이었는데, 바로 옆이....... 강정이었다. 지도로 '구럼비'라는 단어를 마주했을 때만 해도 심장이 내려앉았는데, 플랜카드가 잔뜩 걸린 마을의 골목과, 중장비가 왔다갔다 하는 공사장과, 무엇보다도 강정천과 공사장 앞에서 아침미사 중인 신부님들을 두눈으로 마주하니, 가슴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대체 왜, 대체 누구를 위해서, 대체 무슨 권리로, 이 아름다운 곳을 훼손하고 이 선량한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건지......... 후우...





무거운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여행기로 돌아가자. 둘째날은 날씨가 정말 좋았다. 선명하게 보이는 능선.





산책하다가 등산화의 밑창이 완전히 떨어져나갔다. 거의 10년 전에 샀던 등산화인데, 두어번 신고 신발장에 고이 모셔만 두었더니 결국 이런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말했듯, 사용하라고 만든 물건은 사용을 해야 한다. 이걸 보고 엄마가 어찌나 깔깔대며 웃으시던지ㅎ 그래서 이중섭거리로 가서 트래킹화를 샀다. 3월의 아픈 기억이 떠올라서 신발을 고르는 것도 한참이 걸렸다. 신발을 사고 맞은편 카페가 눈에 띄어 들어갔다. 체인점이라는데 서울에서는 본 기억이 없어 물어보니 이제 매장을 확충하고 있는 프랜차이즈라고 하더라.  






정말 맛있어보이는 디저트가 잔뜩 있어서 앓는 소리를 내며 쇼윈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ㅠ





다른 건 어딜 가든 있지만, 이건 처음 봤으니 사야해!!! 라고 합리화 하며 뷰티애플을 하나 샀다.





캬라멜 맛으로 샀는데, 완전 맛있고 무지하게 달았다. 음. 한 번쯤은 먹어볼만 한 듯. 사과표면에 코팅을 한다는 발상 자체가 독특해서 재미있었다. 





점심은 '운정이네'라는 음식점에 가서 4인세트를 시켜 풍성하게 먹고 왔다. 먹느라 사진이 없는데, 정말 맛있고 직원분들도 친절하셔서 즐거운 식사였다. 위 사진은 그 가게 앞에서 팔던 청귤에이드. 6,000원인데, 음식점에서 식사를 한 사람에게는 할인을 해준다. 그 길을 그대로 달려 동생과 엄마는 산방산온천에 내려주고, 나와 아빠는 송악산으로 향했다. 





현위치 지점에 주차장이 있다. 사람이 꽤 많긴 한데, 둘레길을 다 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둘레를 쭉 돌고 거의 끝 지점에서 분화구 정상으로 올라갔다가 소나무숲 쪽으로 내려와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걷는 중간에 찍은 지도. 길이 잘 되어 있어 걷기 편하고, 올레 10길이기도 하다. 






달리 보정이 필요없는 푸르고 화창한 날씨. 보이는 건 산방산이다. 자세히 둘러보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저 바위섬은 '형제섬'이다.





조업 중인 배 한 척. 근처에 노란색 관광용 잠수함도 여럿 보였다. 유람선도 많았고.





억새가 끝물이라서 그런지, 썩 예쁘진 않았다. 포스팅 뒤쪽에 나올 산굼부리에서 엄청 많이 보고 왔다.





설핏 뒤를 돌아봤는데, 어딘가의 여행 포스팅에서 만났던 사진 포인트가 정확하게 보여서 나도 카메라를 잡았다. 퇴적층이 겹겹이 쌓여 있는 장면이 아무렇지도 않은 곳, 화산섬 제주다.







대체 얼마나 많은 세월이 저 안에 담겨 있는 걸까,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급작스러울 정도로 짠-하고 나타난 열대정글. 사진으로 잘 안 담겨서 아쉽네.






계단이 많아 보이는 건 기분탓일듯...? 걸을 때는 그냥 평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사진들을 보니 죄다 계단이 있네ㅋㅋ 이 길을 끝까지 완주하진 않았다. 거의 한바퀴 돌았을 무렵 길을 벗어나 분화구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길이 아니어서 말똥 천지였지만, 그리 힘들거나 어려운 등산로는 아니었다.





정상이다~ 아빠 그림자랑 내 그림자랑 다 담겨버렸네ㅎ






정상에서 보이는 전경. 날씨가 좋으니, 여행지에 대한 인상도 무척 좋게 남는다.





파노라마 샷! 이번 여행에서 몇 장 찍었다. 넓게 펼쳐진 자연풍광을 찍는 데는 파노라마가 짱이다.





마지막으로는 굉장히 신기하게 생긴 열매 사진! 저 열매가 톡 터지면서 빨간 알갱이가 나타나는 것 같다. 산책을 마치고 온천에서 나머지 가족을 픽업해 숙소로 돌아갔다. 저녁으로는 숙소에서 치킨과 소세지를 시켜먹었다. 





벌써 세번째 날이 밝았다. 조식 뷔페를 먹고 느긋한 아침산책을 한 뒤, 숙소 이동을 위해 짐을 쌌다. 지난 3월에 묵었던 구좌읍의 숙소로 가는 중에 외돌개에 들렸다. 약간 섭지코지 같은 관광지로 중국 단체관광객이 많았지만, 산책로가 꽤 길어서 외돌개 바로 앞만 아니라면 조용하게 산책할 수 있다. 산책로가 아주 잘 되어 있다!  





근데 뱀도 나온다.....ㅋㅋ 무지 작고 엄청 빠른 뱀이었는데, 과연 겨울을 잘 넘길 수 있을까.





산책로 중간중간 이렇게 무인 귤 판매대가 있다. 작긴 하지만 맛있더라. 다만 외돌개 앞쪽 기념품 판매대 쪽에서 알이 조금 큰 귤을 한 봉에 2,000원에 팔고 있었다는 점. 참고하시길.






고래처럼 생겼는데, 이게 아마 기차바위인듯. 시선을 아래쪽으로 두면 낚시 중인 사람이 꽤 많이 보인다. 






뒤 쪽 바위와 색이 비슷해서 잘 구분하기 어렵지만, 눈에 집중하면 보인다. 뭐가 외돌개인지!!!





화산이 폭발하여 분출된 용암지대에 파도의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돌기둥이 홀로 서 있어서 붙은 이름, 외돌개. 고려말에 최영장군이 원나라 목호를 물리칠 때 범섬으로 달아난 세력을 토벌하기 위해 외돌개를 장군모습으로 변장시켰다 하여 '장군바위'라고도 한다.





외돌개를 바라보다 문득 바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새파랗게 투명하고 맑은 바닷물 옆의 누렇게 변색된 고인 물이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대충 이 정도로 외돌개를 보고 천지연과 정방폭포는 그냥 스쳐지나갔다. 운전대를 잡고서 1131도로(=5.16로)를 탔다. 고지대로 올라가는 길에다가, 휘어짐이 많은 산길이라서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안전최우선으로 운전했다. 운전 연수의 끝판왕이라고 봐도 될 듯. 한라산을 넘어 1112도로(=비자림로)로 빠졌다. 두 길이 만나는 곳에 사려니길이 있었는데 이건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가겠다. 





다음으로 차를 세운 곳은 산굼부리. 6,000원이라는 꽤 센 입장료에 살짝 투덜거리면서 억새와 갈대로 이루어진 산책로를 걸었다. 날이 흐려지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억새의 쓸쓸함이 많이 부각된 탓도 있었다.





지금부터의 억새사진은 일부러 전부 보정을 했다. 따뜻한 햇빛 아래에서 황금색 물결로 빛나는 억새숲이야말로 억새의 궁극적인 매력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육안으로는 저런 색으로 안 보였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하지만 산굼부리에 대한 불만은 산책로 끝 탁 트인 전경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완전히 증발해버렸다. 






진짜 이번 제주여행 동안, 내 눈으로 보고 있는 이 광경을 카메라에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는 아쉬움을 사무치게 느꼈다. 이건 어떻게 말로, 글로서 표현하기가 정말 어렵다. 왜 산굼부리가 제주여행의 '필수코스'가 되었는지, 가보면 안다. 온 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 컷에 오롯이 담아내는 것이 불가능했던 거대한 분화구가 펼쳐진다. 이 생소하고 압도적인 장면에 그저 말을 잃고 한참을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동생 컨디션이 안좋아서 후다닥 내려가야만 했다는 게 가슴아플 뿐이다ㅠ 다음에 제주도 가면 꼭 다시 들려서 벤치에 앉아 삼십분이고 한시간이고 멍하니 바라보고 싶다. 





분화구 반대편에는 커다란 원형의 잔디밭과 그 안의 무덤들이 여럿 있었다. 제주는 '섬'이라서 그런가, 관광지를 가도 무덤이 자주 목격됐다. 육지에서는 보통 인적이 잘 닿지 않는 산속에 무덤을 모시니 일상에서는 만날 일이 없는데, 제주는 섬 전체가 오름과 언덕이기 때문인지 흔하게 마주치게 된다. 죽음을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유럽의 문화가 저절로 연상된다. 





내려가는 길 오른편에 넓게 펼쳐진 억새들이 보여 바쁜 와중에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소나무 한 그루가 멋들어지게 홀로 서있는 모습이 마치 화폭 속 한 장면 같았다. 











확실히 여행사진은 날씨의 영향을 아주아주 강하게 받는다. 날씨라는 건 한낱 여행객이 관여할 수 없으니, 그저 운이 좋기를 바랄 수밖에. 지금까지의 경험에 따르면 날씨운이 아주 나쁜 편은 아니라서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





숙소에 도착해서 서랍을 뒤적이다 300피스 퍼즐이 있어서 퍼즐을 맞췄다...ㅋㅋㅋ '가나의 혼인잔치'라는 그림. 잡념을 떨치기에는 퍼즐이 직방! 이렇게 첫 사흘의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다음 포스팅에서 여행기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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