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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란의 빗길야간운전을 하고 온 다음날은 아침 일찍 사려니길만 다녀오고 숙소에서 푹 쉬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책이 있길래 그것도 읽으면서. 그리고 그 다음날, 도시락까지 챙겨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절물자연휴양림! 여기는 주차료까지 포함해서 입장료를 계산한다. 아반떼를 끌고 간 나는 3,000원.





지도 확대샷. 일단 메인도로를 쭉 걸어올라가 약수를 마신 뒤에, 생이소리길을 조금 걷다가 3Km의 너나들이길을 걸어 입구로 걸어내려온 다음, 삼울길을 걸으며 피톤치드 향을 듬뿍 마셨다. 전부 해서 1시간 40분 정도 걸렸다.





올라가는 길에 있던 연못.






절과 물이 있어서 '절물'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다는 절물휴양림. 물맛은 깔끔했다. 차에 빈 물통이 있는데 깜빡하고 안 가져온 실수를 자책하며ㅠㅠ 





이 길을 따라 가면 주차장이 나오지만, 아직 절물휴양림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으니 조금만 걷고 돌아나왔다. 





이런 길이다. 빗방울이 우산에 부딪히는 소리 말고는 고요함 만이 내려앉은 길. 이 때가 아마 아침9시 쯤이었다. 비오는 날의 숲 속 산책은, 상상 이상으로 조용하고 기대 이상으로 운치있었다. 





비자림로 근방에는 유난히 까마귀가 많다. 운전하다가 전깃줄에 앉아있는 수십마리의 새카만 까마귀들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을 정도로. 절물을 산책하는 동안 잊을만 하면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가, 이 숲 속에 오직 나만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상기시켜주었다. 





절물휴양림 안에는 '숲속의 집'이라 해서 숙박지가 있다. 다음 제주여행에서는 예약을 하고 꼭 묵어볼 생각이다. 새벽빛이 어스름할 즈음 홀로 절물을 또 산책하고 싶기에...





비가 와서 절물오름과 장생의 숲길은 통제되었다. 이것도 아쉬움으로 남았으니.





3km라는 표지판에 잠시 고민했다. 바로 전날 사려니길에서 왕복으로 6km를 걷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기 때문에 망설여지긴 했지만, 걷다보면 어떻게 되겠지 하며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고고하게 앉아있던 커다란 까마귀. 아주 가까이에서 봤는데, 깃털에서 푸른빛이 쨍하고 반짝였다.  





산책로가 아주 잘 되어 있다. 눈비로 인해 미끄럽지만 않다면 휠체어나 유모차를 끌어도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기억으론 계단도 없었던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다.






생각보다 3km가 길긴 했지만, 힘이 들진 않았다. 오롯이 홀로 안개 속에 침잠하는 기분이 오묘했다. 





줄사철나무가 특이해서 찍어봤다. 우산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작은 소리마저 소음으로 느껴질 정도로 고요했다.





주차장 쪽으로 내려온 다음에는 바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삼울길로 들어섰다. 





피톤치드 향이 아주 강하다는 삼나무. 걸으면서 피톤치드 좋아하는 오빠얌 생각을 많이 했다ㅋㅋ 






힘 안들이고 산책하기 딱 좋은 길.






음, 사진에 찍히니 어두침침해서 더 기괴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이 구역은 건강을 위해 '크게 웃으라'고 권유하는 길이다. 실제로 보면 장승들의 유쾌한 표정들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게 된다. 





삼나무 뒤쪽에는 이렇게 번호를 매겨두었더라. 





다음에는 꼭 절물에서 묵으며 엄청난 길이(=11.1km)의 장생의 숲길도 다 걸어보고 싶다. 





바로 옆에 위치한 4.3평화박물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도시락을 다 먹어버렸다. 겨우 11시였는데ㅠ 





베를린 장벽이다. 실제 장벽을 '평화의 섬' 제주에 가져온 것이라고. 먼 거리를 날아온 상징물이 반가웠다.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





바닥 유리 아래 놓여있던 한반도 지도. 극명하게 갈리는 색깔이 가슴을 후려친다. 전시관은 상당히 잘 되어 있다. 해방 전후의 한국 현대사를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하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단체관람을 하는 시점과 딱 맞물려 가서 굉장히 시끄럽긴 했지만, 역사야말로 어린이들이 배우고 이해하고 공감하며 교훈을 얻어야 하는 중요한 교육이기에 그들이 거슬리지는 않았다. 전시관 끝의 방명록을 보면서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라는 글이 꽤 많아서 깜짝 놀랐다. 

  




평화공원을 뒤로 하고 교래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이동하면서 자차로 여행한다는 것이 엄청나게 안락함을 새삼 깨달았다.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싶은 시간에 갈 수 있다니. 동선만 대충 잡아 놓으면 버스 시간 같은 걸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여행. 몸은 편했지만, 놓치는 것이 많아 영 마음이 허했다. 





교래 입장료는 1,000원이다. 입구의 이 지도를 마주할 때만 해도 오름 정상까지 갈 생각은 없었는데. 대충 2km만 걷고 와야지, 라는 생각이었는데 결국 끝까지 갔다왔다.






사람이 걷기 편하게 만들어 놓은 절물휴양림 길보다, 직접 흙과 돌을 밟을 수 있는 교래휴양림의 길이 더 좋았다. 물론 비로 길이 미끄러워 걷는데 주의를 요했지만, 훨씬 더 자연과 가까운 기분이 든달까.





1970년대 이전까지 숯을 만들었던 가마터. 중간중간에 야외교실이라면서 탁 트인 공간과 돌계단이 있었다. 





걷다보면 오름 정상이겠거니, 하며 큰지그리오름전망대를 향해 발걸음을 계속 옮겼다.





드넓은 곶자왈을 홀로 걸으며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바로 이 부근, 저 길을 통과하자마자, 





이렇게 빽빽하고 앙상한 나무숲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발도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이런 생경한 기분을 경험하는 것은 난생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사진만으로는 잘 와닿지 않겠지만, 순간적으로 서늘한 기운이 몰아치며 기묘한 위압감을 느꼈다. 뭐랄까, 나에게 해를 끼칠 것 같은 음산함은 아니지만 어쩐지 들어가고 싶지는 않은 침묵이라고 해야 하나. 순간 1km도 안남았는데 여기서 포기하고 돌아설까 하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잠시 겁을 먹었다. 





하지만 또 그럴 순 없잖아?? 양갈래로 나 있는 길 중 왼쪽길을 택했다. 내려올 때는 반대로 내려왔고. 이 선택이 또 신의 한 수였다^^b





오르막길이라 숨을 몰아쉬며 걸음을 뗐다. 으와, 정상이 머지 않았어............!!! 





그리고 갑작스러울 정도로 단번에 펼쳐지는 전경. 





와, 이건 다른 오름에 비교할 게 아니야. 진짜 와아....... 전망대 위에 서서 연신 감탄사를 중얼댈 수밖에 없었다. 제주섬의 모든 오름들이 360도의 시야 안에 전부 들어온다고 생각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장관이었다. 결코, 절대, 사진의 2차원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장면이다. 동영상 찍고 별 난리를 다 쳐봤지만, 불가능. 데세랄 사고 싶다ㅠ  





바로 뒤에는 한라산이 보인다. 비가 그친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유난히 가깝게 보였다. 이번 여행 핵심 목표 중 하나가 한라산 등반이었는데ㅠㅠ 개인사정으로 포기해야만 했다는 게 가슴 아플 뿐이다 흐엉ㅠㅠㅠ





아쉬운 대로 파노라마 컷. 전방엔 오름, 좌측으로는 남해, 후방에는 한라산. 이 이상의 "전망대"가 과연 있을까. 아까 오름을 오를 때 좌측길을 선택한 것이 신의 한 수라고 했는데, 그 길은 오르면서 시야가 숲 속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전망대에 발을 딛는 순간 펼쳐지는 광활한 전경에 더욱 강한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 반면 오른쪽 길은 도착하기 조금 전부터 전방의 장면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물론 그 전망을 보면서 길을 오르는 것도 충분히 훌륭했겠지만, 그 강렬한 첫인상을 생생하게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까의 그 나무숲을 지나 다시 곶자왈 쪽으로 넘어가는데, 갑자기 웬 대여섯 마리의 소들을 옆쪽에서 발견했다. 귀에 인식표도 있는 걸로 보아 야생은 분명 아닌데, 왜 뜬금없이 여기 소가 있는 거지??! 하며 혼자 당황하다가 소랑 눈이 딱 마주쳤다. 새카만 눈이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갑자기 달려들 것만 같아 황망히 시선을 돌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 때 갑작스레 들려오는, 분명 소의 울음은 아닌 동물소리!!! 빛의 속도로 다시 소떼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우아한 자태의 노루가 저 멀리 보였다!!!!!!!! 우와!!!!!!!!! 노루다!!!!!!!!!! 작은 부스럭 소리를 들었는지 곧장 눈을 마주쳐오는 노루와 멀리서 눈싸움 아닌 눈싸움을 하게 됐다. 약 5초나 됐을까,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결코 움직일 것 같지 않은 노루의 분위기에, 그냥 먼저 시선을 돌리고 가던 길을 걸었다. 어차피 나무덩굴 너머 저 멀리 있었기에 사진 찍어 봤자 잘 안나올테고, 무엇보다 녀석의 동네니까. 의외의 마주침에 감사하기로 했다.





꽤 큰 민달팽이. 초등학교 때 교실에서 엄청 큰 달팽이 암수 한 쌍을 기른 적 있었는데, 거의 내가 다 먹여살렸다. 그래서 이런 달팽이를 보면 물론 징그럽긴 하지만 동시에 묘한 반가움도 든다. 





제주의 정글, 곶자왈!!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오름 정상에 올라보고 싶다. 이 날 코스는 전부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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