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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날 경주여행의 행선지는 양동마을과 옥산서원이었다. 일반적인 '관광코스'에 들어있지 않은 곳을 찾아 가는 것이 내 여행스타일이다ㅎ 아침 일찍 203번 버스를 타고 출발해서 한참을 달려 10시쯤 도착했다.





경주 손 씨와 여강 이 씨 두 가문이 500여 년간 대를 이어 현재까지 살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마을이다. 이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입장료는 4,000원. 가이드가 있다고 해서 잠시 기다렸다가 다른 여행객 몇 분과 함께 출발했다. 이 마을 출신이신 가이드 분의 설명이 상당히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귀 기울여 들었다. 왼쪽 초등학교를 지나고 가옥이 시야에 들어온다. 공개된 건물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일상집이기 때문에 관람하면서 과한 소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예의다. 





보물 442호인 관가정. 중종 시절의 청백리로 알려진 손중돈의 옛 집이란다. 여기서 누각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누각 위는 신선이차 천녀가 머무는 곳으로 누각의 난간 형태가 구름을 상징한다.  





돌을 깎아내지 않고 그 위에 나무 기둥을 세운 모습. 네모는 땅(地)을 상징하고 원은 하늘(天)을 상징한다. 






여기 설명이 굉장히 좋았는데, 왼쪽과 오른쪽의 문과 벽의 형태가 다르다. 한옥은 '집'으로서 가르침의 공간이다. 양쪽 벽이 다른 이유는, 아이들이 '다름'을 보고 "다양성"을 배우게 한다는 뚜렷한 목적 때문이라고 한다.   





사진 속 서명이 있는 문이 '사당'이다. 오른편은 쪽문이고. 여기에도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여성이 직접 제사를 지낼 수 없었던 유교사회에서 '다른 집'에서 시집온 여성들이 쪽문을 드나들며 사당을 반드시 지나치도록 만들어 '조상'에 대한 생각을 잊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웃기는 상황이긴 하지만, 조상에 대한 지극한 예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마 여기서 들었던 설명인 것 같은데, 부잣집을 명명할 때 '아흔아홉칸'이라는 단어를 쓰곤 한다. 이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채우지 않음'의 미덕을 보이는 것이란다. 그런 옛날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어떻게든 일만석의 재산을 채우고 싶어서 노력하던 부잣집이, 결국 그 욕심 때문에 망해버렸다던 교훈 섞인 이야기.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이 마을은 일본의 침략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입구는 좁고 뒤가 넓은 부채꼴 모양의 마을 형태 덕분에, 적들이 이렇게 큰 마을이 내부에 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다음 마을로 지나쳐갔다. 확실히 안으로 들어갈수록 마을의 규모가 상당하여 놀랐다.  







여기서도 잊지 않고 가옥의 지붕 홀릭^^







여름이라 좋은 점은 역시 푸르른 녹음과 꽃나무들이겠지.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마을을 쭉 둘러봤다.







중요민속문화제 23호, 서백당. 조선 세조 5년에 지어진 집이다. 언급한 손중돈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고. 다른 곳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가옥의 형태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너무 오래되어 지탱하는 기둥이 있어야만 하던 나무. 





뒤쪽에는 사당이 보인다. 저 좁은 길을 걸어 문을 열면 저절로 마음이 경건해질 것 같다. 





내려다보이는 마을의 전경. 양동마을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거짓말처럼 표지판 뒤쪽에 세워져있던 자전거 하나.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던 우물 하나. 





여기도 블로그에서 본 맛집. 연밥정식은 2인부터라고 메뉴판에 적혀있긴 한데, 1인분도 해주시더라♡





반찬도 다 맛있고, 연밥도 맛났다. 다른 테이블에는 일본인 가족이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연밭의 푸르름이 눈을 다 시원하게 만들어줬다. 일상을 살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도 계속 시야에 들어왔다. 






나가는 길에 마을문화관을 지나면서 마주친 벽화들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디테일 해!





똑같은 203번 버스를 같은 방향으로 타고 가면 옥산서원에서 내린다. 그런데 표지판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드넓은 논밭만 펼쳐져 있어서 상당히 당황스러웠다ㅠㅠㅠ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게다가 같은 버스를 탄 프랑스인 2명도 같이 내렸기에 나의 멘붕은 심화되었다..ㅋ 셋이 같이 30분 쯤 열심히 헤매다가 버스가 떠난 방향을 쫓아서 걷고 나서야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보짓 했음ㅠ   





조선 중종 시절의 문신, 이언적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세워진 옥산서원. 건물들이 상당히 밀집되어 있고, 딱 떨어지는 배치 때문인지 엄격함이 느껴진다.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역시 날아갈 듯한 지붕의 모습.





뒤쪽에는 소나무숲과 큰 산이 버티고 있다. 서원의 바로 앞에는 계곡이 흐른다. 프랑스인 두 명에게도 농담처럼 이야기했는데, 이렇게 숲과 물이 좋은 곳에서 과연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자연풍광이 좋다. 더운 여름에는 맨날 뛰쳐나가 차가운 계곡물에 발 담그고 신선놀음 하고 싶었을 것 같다.





크기가 큰 서원은 아니라서 금방 돌아볼 수 있다. 





서원을 나와 정혜사지석탑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가다가 만난 독특한 정자. 칸을 저렇게 나눠놓은 건 처음봤다.






이언적의 사랑채, 독락당. 






가는 동안 중간중간 길을 물어가며 꽤 걸었다. 생각보다 작은 크기의 13층 석탑.





하지만 상당히 아름답다. 13이라는 독특한 수도 그렇고, 기단도 신기하고. 국보 40호로,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다.





한참을 이리저리 찍어보다가 버스정류장으로 갔는데...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버스가 온다는 시간표에 좌절하는 것도 잠시, 피서온 것처럼 계곡에서 쉬기로 했다.  





근처에서 피서온 가족들이 많았다. 외국인 2명과 한국인 1명으로 이루어진 조합은 시선을 끌긴 했지만,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 신발 양말 다 벗고 지친 발을 차디찬 계곡물에 담갔다. 크.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다가 방학을 맞아 무려 1달 동안 한국을 여행하고 있다던 프랑스인 학생 2명은, 서울에서 2주, 경주와 부산에서 1주, 마지막으로 제주도에서 1주일을 머물고 돌아간다고 했다. 완전 부럽다며 눈을 반짝이면서 예전 파리에 갔던 이야기도 하고, 베르사유 이야기도 했다. 영어로 된 경주 가이드북도 구경했는데, 생각보다도 더 구체적인 설명과 사진들을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들에게 경주 남산을 강추받아서, 즉흥적으로 다음날의 일정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한참을 수다 떨다가 버스 시간에 맞춰 정류장으로 돌아갔다. 꾸벅꾸벅 졸다보니 어느새 경주역에 도착해있었다. 아쉬운 인사로 헤어짐을 고하고, 전날 포기했던 감은사지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읽은 것이 있기 때문에, 도저히 그냥 서울로 올라갈 수 없었다.





멀리서 지나쳤던 감은사지 도착. 버스 안내방송이 늦게 나와서 한 정거장 뒤에 내려 한참을 걸었다ㅠㅠ 아무래도 150번 버스와는 인연이 아닌가보다, 라고 스스로 납득하며 드디어 감은사지를 마주할 수 있었다!!  





크지 않은 주차장에 차가 몇 없다. 몇 시간 있었는데, 대여섯 팀만 스쳐지나갔을 정도로 사람이 많이 없었다.





여기서 보는 일몰이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구름이 낮고 짙게 깔려 해떨어지는 것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ㅠ.....





뒤쪽은 숲이다. 야경 조명이 들어올 즈음 듬성듬성 불빛이 켜지는 것으로 보아, 안쪽에 가로등 세워진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 듯했다. 밤에 엄청 음산했다. 감은사의 절 터가 잔해로 남아있다.







사진을 찍어도 찍어도 뭔가 더 찍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피사체였다, 이 두 개의 탑은. 국보 112호.





"아! 감은사, 감은사 탑이여!"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993)」유홍준, p.153





감은사는 문무대왕의 아들 신문왕이 생전의 부왕 뜻을 받들어 완공한 절이다. 용이 된 문무대왕이 드나들며 절을 지킬 수 있도록 금당 구들장 초석 한쪽에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 앞에 웅장하고 장중한 탑 두 개를 만들었고, 감은사탑만이 현재까지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완벽에 가까운 이 탑의 자태를 정확히 묘사할 수 있을 만한 언어가 뭘까. 이미지를 담아내는 사진으로도 고유한 아우라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데, 몇 개의 단어가 그걸 가능케 할 수 있을리가...





슬슬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직 하늘은 푸르러서 해가 떨어졌는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지만, 시간은 벌써 여섯시반을 넘겨가고 있었다. 주변에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저 잔잔한 고요 속에 나만이 가라앉아 있을 뿐이다.







조명을 받는 감은사탑이 예쁘긴 하지만, 독특한 멋은 반감되는 것 같다. 긴 역사의 시간이 전혀 와닿지 않는다고 해야할까. 지나치게 반짝거려서 위화감이 느껴진다. 






물론 첨성대처럼, 더 어두워져서 완전한 어둠이 내려앉았을 즈음에 더욱 예쁠 것 같긴 하다. 다음 경주여행에는 차를 꼭 가져오고 싶다. 자유롭게 야경을 보고 싶어ㅠ 





몇 번이고 확인했던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이제는 헤어져야 함을 알았다.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작별을 고했다. 이렇게 혼자 상념에 젖어있느라, 스탬프투어 도장은 또 새카맣게 까먹어 버렸다.....ㅋㅋ





산책하시던 아저씨와 5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버스가 도착했다. 어두운 도로를 달려 경주역에 도착했다. 또 이렇게 꽉꽉 채운 여행의 하루가 지나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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