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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옥랑문화상'을 받았지만, 삼성그룹의 영화제 후원 중단 등의 외압으로 한참을 빛보지 못하다가 2014년에 와서야 가까스로 개봉을 하게 된 영화, <탐욕의 제국>. 얼마전 개봉하여 화제가 됐던 영화 <또 하나의 약속>과 같은 맥락에서, 하지만 전혀 다른 전달 방식으로 부조리의 실태를 고발한다.
재개관한 아리랑 시네센터 3관에서 텅빈 영화관에 혼자 앉아 삼성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당시 그들이 매일 겪었던 작업방식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빼곡하게 담긴 스케쥴러를 눈에 담았다. 편하게 대화하듯, 혹은 그저 자신의 경험을 독백하듯, 잔잔히 과거를 이야기하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이제 거대그룹에 대한 이악문 배신감보다는 체념이 더 짙게 배어있는 듯해 가슴이 아파왔다.
시각보다는 청각을 활용하여 극적인 감정을 이끌어내는 이 영화의 연출방식은, 그 어느 효과보다도 더 절절하게 '약자'의 괴로움을 전달해 주었다. 갑작스럽게 내려앉는 정적은 분노와 답답함으로 뜨겁게 열이 올랐던 얼굴을 냉정하고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위로 올라가면서 창 밖으로 유리로 된 외관의 고압적인 빌딩을 훑어내리는 장면은 쉽게 잊혀질 것 같지 않다.
이 영화 보러간다니까 점심 사주시던 아빠께서 너무 별세개 그룹 미워하는 거 아니냐며 조금 웃으셨다. 래디컬 하다면서 말이다. 잠시 생각해본 결과, 응, 미워하는 건 맞는 것 같다. 자본의 논리를 내세우며 돈도 없고 배우지 못한 사회적 약자는 무시하고 이용하고 괴롭히며 종내는 버려버리는 '물건'으로 대하는 거대기업의 행태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행동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너무 밉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당장 삼성은 망해버려야 한다 라는 급진적인 주장을 내세우는 건 아니다.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살리고 있다는 거지같은 논리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의 능력과 꿈을 키워나가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단 한명도 산재 인정을 해주지 않으며 돈으로 인간을 매수하려는 '기업문화'는 그 그룹 오너 일가들의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행태가 근본적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업구조를 바꿔야 하고, 그래서 법적으로도 '돈'으로 피해갈 수 없는 단단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게 래디컬인가......?
ps. <또 하나의 약속> 리뷰 -> http://tinuviel09.tistory.com/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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