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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압을 받고 있다는 이 영화는, 집 근처의 대기업 계열 영화관에서는 상영하지 않아서 종로에 있는 서울극장까지 가서야 볼 수 있었다. 그것도 큰 상영관에 관람객이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화가 분명 아닌데다가, 답답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로 인해 꽉 막히는 가슴을 두드리게 만들기 때문에 쉽사리 보러 가지 못하는 건 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꼭 봐야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많아져야만, 보다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 영화의 각본은 완결성이 좋고, 폐부를 찌르는 대사들이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특히 멍게 이야기. 왜 영화의 연관검색어가 멍게인가 했더니, 정말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중요한 비유였다. 멍게는 동물로 태어나 식물로 죽는다는데, 그 이유는 태어날 때는 뇌가 있지만 바다 어딘가 안전한 곳에 정착하게 되면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뇌를 소화시켜 버리기 때문이란다. 나이가 들고 안정성을 추구하며 결국에는 안주하고 타협하는 인간의 습성을 이보다 더 적절한 비유로 표현할 수 있을까...?!
무거운 내용을 다루면서도,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대중 영화의 요소 역시 충분히 지니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맘놓고 웃음을 터뜨릴 수는 없지만, 미소 정도는 지을 수 있는 개그 요소도 깨알같이 들어있고, 공감이나 슬픔을 종용하는 (소위 강요하는) 분위기도 결코 아니다. 영화를 보는 사람이 원하는 만큼 공감하고 수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관람을 꺼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눈 깜빡하지 않고 개인에게 병의 책임이 있다는 헛소리를 하며, 어떻게든 산재 인정의 사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회유와 협박을 일삼는 횡포를 부리면서도, 상대가 배움이 짧아 한심하다는 식으로 깔보는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영화 전반에 걸쳐 목격할 수 있다. 대자본의 농간에 너무나 소중한 개개인의 인생이 침해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대로 자본의 논리와 돌아가는 구조를 파악하고 인지하고 있어야만 한다. 다함께 분노하고 연대해서 반발하는 모습을 보여야, 내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어도 그들이 우리의 권리를 인정해준다. 이게 현실이다.
근처에 상영관이 없어서 조금 멀리 가야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영화가 전달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줬으면 한다. 적극적인 행동까지 부탁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p.s.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너무나도 창창한 나이에 세상을 떠난 주인공 윤미의 실제 모델이, 신화의 팬이었단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도중, 미처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택시 안에서 숨을 거둔 그의 옆에 작은 종이가방이 있었는데 그 안에 오빠들 사진이 빼곡했다고..... 이 기사를 개봉일에 읽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갑자기 현실감이 확 들었다고 해야 할까. 정말로, 그냥 바로 옆에서 함께 웃고 울었을 비슷한 나이대의 청년일뿐인데, 자신의 잘못은 조금도 없음에도 가혹하고 잔인한 상황에 처하게 된 그 절망감이 절절히 공감됐다. 너무나 아파서 병원으로 가는 와중에도 좋아하는 것들을 꼭꼭 챙겼던 그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가서, 가슴 시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감정이 온몸을 휘감는다. 여러모로, 참으로 분노스러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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