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어째 후기들이 묘하게 이끌려서 결국 개봉 이틀만에 보고 왔다. 그리고 꽤 만족스럽다!! 사전 정보는 거의 없이, 강동원이 한복입고 화보 찍었다더라- 정도의 감상만 듣고 갔는데, 전반적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들이 많았다.
일단 스포일 없이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런닝타임이 좀 길다. 지루한 건 아닌데, 중간중간 집중도가 떨어진다. 그리고 내용을 chapter 4개로 나눠 제목을 둔 것이나, 캐릭터 소개 장면, 삽입된 음악과 그 타이밍 등이 만화적, 아니 2D적 느낌을 풍긴다. 원작 소설이 있어 그걸 영화화한 느낌이랄까. 원작을 영화로 '잘' 만든 것 같다. (물론 내가 알기로 원작은 없다.) chapter를 나눠서 그런지, 스토리 흐름이나 이야기 전개의 호흡이 유려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분명한 캐릭터였다.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들의 개성이 매우 뚜렷하고, 내노라 하는 배우들이 나무랄 데 없이 잘 소화해내서 영화 자체가 더욱 풍성해졌다. 물론 사투리 등의 말투 면에서 조금 어색한 부분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전라도라는 지리적 배경과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겹쳐 어렵긴 했을 것이다. 아주 디테일한 행동까지 전혀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연기가 정말 좋았다.
강동원 씨는 완벽한 '악역' 이었는데, 너무나도 잘생긴 외모로 관객들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강동원 씨의 출연작을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전우치> 때 사극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이미 생각한 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이번 영화에서 그 미모에 직격타를 입지 않았다..ㅋㅋ 얼굴 뿐만이 아니라 몸도 한복이 정말 잘 어울리고, 목소리 역시 매력적인 저음이라서 살짝 뒷말을 끄는 사극 특유의 말투와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한다. 의도적으로 강렬한 눈빛을 갓의 넓은 챙에 한 번 걸러지도록 하는 연출을 여러차례 반복해서 조윤(강동원 扮)의 강한 인상을 부각시킨다. 우산을 들추며 크고 맑은 그의 눈을 강조했던 <늑대의 유혹>이 생각나기도 했다. 긴 칼을 휘두르는 조윤의 싸움 장면들은 연출진이 심혈을 기울였다는 걸 여실히 느끼게 했다. 영화 내내 계속 잘생기게 나오는데, 가장 또렷하게 남은 장면은 한 손에 검을 들고 흉흉한 눈빛으로 길다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서있는 장면이다. 한복은 진짜 멋있는 옷이야..... 우리나라에 양복이 들어와 한복을 일상에서 말살해버린 역사가 너무도 아쉽다.
한 사람이 이렇게 부각되다보니, 머리까지 밀며 작품에 임한 하정우 씨가 상대적으로 너무 약하다는 평이 많다. 도치(하정우 扮)의 캐릭터가 약한 데다가 오히려 땡추(이경영 扮)의 역할이 더 커보일 정도라며, 하정우 씨가 왜 이 작품에 출연한 건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나오더라. 그렇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 영화의 캐릭터들을 단순히 보여지는 기준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영화 <군도>의 핵심적 구도는 '소수의 권력자(지배층)'와 '다수의 백성들(피지배층)'의 갈등이다. 여기서 억압하는 지배층으로 대표되는 조윤과, 핍박받는 피지배층으로 대표되는 여러 민중들(도치, 땡추, 대호, 이태기, 천보, 마향 등)은 당연히 스토리에서 비중이나 강조점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아, 여기서 더 나가면 스포일이 될 수 있으니 뒤쪽에서 이어말하도록 하겠다.
도치가 지리산의 군도 마을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깔리는 음악이 뭔가 <반지의 제왕>을 연상하게 했다. 그리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등장한 마을의 전경에 웃음을 피식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리븐델 같잖아!!!!!ㅋㅋ 그 한국적인 마을이 리븐델을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연출이나 배경효과가 반제 시리즈 영화에서 리븐델을 처음 관객에게 보여줄 때와 정말 비슷했다. 설마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건가............?! 여기에 영화 중간중간 군도들이 멋있게 걸어나오거나 싸울 때 깔리던 음악들이 뭔가 만화스럽기도 하고, 007시리즈 같은 헐리웃 오락영화 ost를 한국식으로 바꾼 것 같기도 해서 신기했다. 영화 내내 이런 컨셉을 의도적으로 유지했다 보는데, 나쁘지 않았다. 자칫 진부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스토리를, 뚜렷한 캐릭터와 이처럼 독특한 연출들을 통해 효과적으로 살렸다.
결론은, 친구가 꼬신다면 조조로 한 번쯤 더 보러가고 싶은 영화였다. 스토리가 아주 훌륭하다거나, 배우가 정말 잘생겼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다. 하지만, 마치 한 권의 소설책을 다 읽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어디서 읽은 평처럼, 시리즈물로 두 개 정도로 나눠 나왔으면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한 번의 영화로 흘려보내기엔 참 아까운 캐릭터들인데.......ㅎ
※스포 주의※ 영화를 보신 분들만 읽으시길 바랍니다^^
※한 번 더 스포주의※
위에서 언급하다가 만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고 리뷰를 마무리하려 한다. 뭐 엄청난 스포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용상 김이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위쪽에서는 말을 아꼈다. 군도는, 민중은, 개개인의 약한 사람들이 모인 다수이다. 마지막 챕터의 제목 <모이면 백성, 흩어지면 도둑> 이 담고 있는 의미는, 따로 떨어져 있는 개인들은 미약하고 어리석지만, 그런 그들이 한데 모인다면 핍박하고 괴롭히는 소수의 지배계급을 몰아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주권'을 지닌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 민중, 이 영화에서는 '군도'인 그들은, 소시민이다. 그들 중에 '영웅'은 없다. 그들 중 아무도 '완벽한' 영웅이 아니기에, 개인으로서는 너무나도 강력한 지배계급인 조윤과 검을 맞대었을 때 그토록 쉽게 목숨을 빼앗긴다. 소수의 권력자, 이 영화에서는 '조윤'인 그들은, 개인이 지닌 힘이 너무도 강력하여 누구도 쉽사리 무너뜨릴 수 없다. 자신들을 짓밟는 권력자의 발 아래에서, 민중들은 포기하지 않고 저항하고 결국 한데 모인다. 결국 마지막에 조윤의 목숨을 거두는 것은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백성들 중 한 사람이다. 이 영화가 전하고 싶었던 주제가 바로 이 지점과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내용을 루즈하게 하는 장면들이 있어서 지루한 면이 있고, 중간에 여러 차례 나오는 나레이션이 (내 기준) 매우 거슬려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지닌 '상징성'에 주목해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맛깔스러운 캐릭터들과 나쁘지 않은 연출, 기존 한국영화와는 다른 독특함을 강하게 풍기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은 영화를 만들어냈다. 진짜 강동원 씨 외모에 꽂히기만 했으면 n차 뛰었을 거 같은 영화야........ㅋ
'취향존중 > Scre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팽이 식당 (2010) (0) | 2014.08.25 |
---|---|
명량, 해적, 해무 (2014) (0) | 2014.08.14 |
그녀 (2014) (0) | 2014.06.07 |
탐욕의 제국 (2012) (0) | 2014.04.03 |
열쇠가 잠긴 방 (鍵のかかった部屋, 2012) (2) | 2014.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