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시 22분 in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2023.08.01 7시반 박지연 제니, 최영준 샘, 임강희 로렌, 양승리 벤. 스포 절대 금지 때문에 후기를 쓰기가 애매하다. 반전을 반드시 모르고 봐야 짜릿하고, 결말을 마주한 다음 극을 통째로 되새김질하며 새롭게 이해해야 하는 작품이다. 자첫과 자둘의 장르가 현저히 달라지는 극이라는 점만 명기해 둔다. 배우들이 너무 잘해서 극이 더 탄탄해진 점도 없지 않다. 다들 캐릭터를 씹어 삼켰음. 젼제니와 깡로렌 연기톤이 너무 좋아서 내적희열을 느꼈다. 강약 조절 완벽한 이양승벤도,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맛깔나게 빈정대는 영준샘도 찰떡같았다. 말장난과 조소와 섹드립과 비아냥이 많아서 약간 미드 보는 기분도 들었다. 대사가 정확하게 들려야 하는 극이고, 다들 딕션이..

12인의 성난 사람들 in 대학로 미마지아트센터 눈빛극장, 2023.05.09 7시반 이지혜, 이현경, 오재균, 방기범, 홍성호, 김용식, 김신영, 허준호, 민병욱, 최명경, 김서아, 박정민, 오륜. 워낙 고전이어서 한 번은 꼭 보고 싶었던 작품인데, 이제서야 연이 닿았다. 짜임새 있게 구성된 쫀쫀한 텍스트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집중할 수 있었다. 다수결의 원칙에 입각한 민주주의 체계에서 "소수"의 의견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고민해보게 만든다. 만장일치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 "조금만 더 대화를 나눠보자"는 고집스런 소수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미국의 사법제도에 약간의 부러움도 느꼈다. 명명백백하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흑과 백이라는 단호한 결론을 내는 이들 사이에서, "합리적인 의심"을 거둘 수 ..

더 헬멧 in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2022.06.15 9시15분 룸서울 스몰룸. 정원조, 정인지, 김지민, 이정수, 김도빈. 지난 시즌에 자첫을 했을 때부터, 그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냈던 부모님께 이 극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고민은 길어졌다. 사람을 패고 고문하는 백골단을 보는 것이 나도 이렇게 힘든데, 너무 생생하게 트라우마를 자극할까봐 걱정이 됐다. 그렇게 지난 시즌을 보냈으나 3년 만에 돌아온 이 극을 다시 또 보내기는 아쉬웠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사전에 충분한 설명을 드린 뒤, 괜찮을 것 같다고 하신 엄마와 함께 객석에 앉았다. 알고 보는데도 여전히 쉽지 않은 극이었고, 특히 헬멧B의 서사에 몰입하며 내내 오열했다. 배우 자첫이었는데, 인지시고니 연기가 ..

죽음의 집 in 두산아트센터 Space111, 2022.04.20 8시 황상호 역 이강욱, 이동욱 역 이형훈, 박영권 역 심완준, 강문실 역 문현정. 반복적이고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하루들이 누적되며 무기력과 무의욕이 만성적으로 굳어가고 있다. 원인이야 차고 넘치지만 돌파구는 보이지 않아 막연하던 차에, 운 좋게 시간이 났고 타이밍 맞게 매진극의 표를 구했다. 죽음의 집에 방문해보면 죽음을 마주하고 생을 직시하며 삶을 채워갈 원동력을 조금이나마 얻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나의 무력감은 더 깊고 무심함은 더 짙었던 모양이다. 죽음을 인지하고 나서야 하나씩 소중하게 늘어놓는 일상의 찰나들이 애틋하다기보다 도리어 숨통을 조여왔다. 무대 위의 언어가 무대 밖의 현실을 부정적으로 일깨우고 있음..

내가 멜론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in 스튜디오76, 2022.03.26 6시 강애심 윤희, 강보민 숙자. 독특한 제목이 눈길을 끄는 극이었는데, 평도 꽤나 좋아서 폐막 직전 일부러 시간을 내서 보고 왔다. 오랜만에 앉은 객석은 소극장답게 불편했으나, 중간중간 암전이 많고 관객의 웃음도 잦아서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맛깔 나는 말투와 자연스러운 행동거지와 익숙하고 평범한 상황 덕분에, 마치 옆집 사는 숙자네와 함께 수다를 떠는 듯한 편안한 기분이었다. 때론 유쾌하고 때론 답답한 대화가 점층적으로 집중을 높였고, 중간중간 과거의 다른 장소로 시점을 옮기며 부드럽게 주의를 환기했다. 배우들의 연기가 워낙 좋아서 재미있었지만, 극 자체만 놓고 보면 만족보다 아쉬움이 앞선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입장의 두 여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