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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 프랑스 파리. 문화와 예술, 낭만, 로망, 우아함, 혁명, 자유, 평등, 박애, 막연한 동경, 달콤한 와인, 노천카페의 진한 에스프레소, 센느강, 에펠탑, 루브르............. 이 모든 이미지들이 파리라는 도시 하나에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파리에 대한 동경이나 호감이 크지는 않았지만, 볼거리만큼은 많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파리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넘어오던 날 찍은, 기차역 앞의 회전목마. 우중충한 날씨와 함께, 프랑스 영화 같은 독특한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그런데 도심 한복판의 저 목마를 타는 사람들이 과연 많을까?
그리고 일요일 아침 첫 일정으로 선택한 몽마르뜨(Montmartre). 순교자의 언덕(Mont des Martyrs)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한 곳이다. 반대편에는 환락가들이 가득하다며 조심하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는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의 사크레쾨르 사원(Basilique du Sacre Coeur)에만 들렸다.
'사크레쾨르'는 성스러운 마음이라는 뜻이다. 외관이 흰색이라 어디서나 눈에 띄는 이 성당은 1870년 보불 전쟁의 패배와 파리 코뮌으로 암담하던 사회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건축했다고 한다. 내부는 촬영불가라서 일요일 미사를 보고 있는 현지인들을 방해하지 않게 조용히 구경만 하면서 걸었다.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파리 시내. 날이 좋으면 센느강까지 보인다지만, 날씨 운이 없었다ㅠ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을 거쳐 아래로 내려가면서 만난 아파트. 테르트르 광장에는 물가 비싼 노천카페와 기념품 가게,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 외에도 미술관이나 박물관, 공동묘지 등이 몽마르뜨 언덕에 넓게 퍼져 있지만, 사람도 많고 길도 복잡해서 그냥 내려왔다. 자동차가 다니는 거리로 나오자 길 건너에 보이는 익숙한 로고! 스타벅스에서 벤티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고 콩코르드 광장으로 향했다.
콩코르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는 원래 '루이15세 광장'이라는 이름이었는데 혁명 당시에 '혁명광장'으로 바뀌었고, 바로 여기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뜨, 로베스피에르 등의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했다. 이후 피로 얼룩진 과거를 지우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기 위해 화합, 조화라는 뜻의 '콩코르드'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 광장 한복판에는 룩소르 신전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근데 또 이게 또다른 아이러니 아닌가? 제국주의 시대의 약탈물을 화합의 장소에 떡하니 세워두다니. 오벨리스크 옆 분수에는 8명의 여신상이 있는데 프랑스의 대표적인 8대 도시를 상징한다고 한다. 근데 이거 본 기억은 안난다....ㅋ
원래 샹젤리제에 가려고 했는데 공원 건너편에 루브르 박물관이 보이기에 급하게 일정을 바꿨다. 몸과 마음과 머리의 준비 없이 루브르에 간 건..... 정말 미친 짓이었다..ㅠ '안 보고 넘어갈 방들'을 미리 정해둔 다음에 루트를 짜서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정말 거대한 크기의 박물관이다. 여러 번 나눠서 가야 하는 루브르를 한 번에 다 돌아보려고 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튈트리 정원을 지나 카루젤 개선문을 통과해서 유명한 유리 피라미드 앞까지 걸어갔다. 무려 603장의 유리로 만들어졌다는 이 피라미드는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를 모델로 한 것으로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해서 이오 밍 페이(Ieoh Ming Pei)가 설계했다고 한다. 이 앞에 늘어서 있는 줄 뒤에 서면 가방 검색대를 지나 박물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내부에서 올려다 본 유리 피라미드의 모습. 매표소는 여러 개의 입구마다 있다. 나는 유럽 교환학생이라 공짜!ㅋ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를 엄마와 나 둘 다 빌렸는데, 비효율적이었다. 한 사람이 듣고 요약 및 설명해 주는 것이 나을 듯하다. 가이드 기계에 루트를 설정하는 등의 기능도 있었지만, 터치가 안 되서 활용을 못했다.
루브르 박물관은 원래 1190년 필리프 오귀스트 왕이 바이킹으로부터 파리를 지키기 위해 만든 요새였는데, 샤를5세가 궁전으로 개조했다. 1793년 처음 대중에게 공개되었지만, 애초 박물관을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었기에 불편함이 있자 미테랑 대통령이 1981년 '궁전 전체를 미술관으로'라는 모토의 Grand Louvre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실제 박물관을 둘러보니, 썩 성공적이었던 프로젝트는 아니었던 듯. 너무 복잡하고 비효율적으로 전시가 되어 있었다. 정말 그냥 되는대로 막 걸어 놓은 것만 같이 일관성 등이 부족했다. 테마도, 루트도 정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은 독선적인 전시였다. 작품이 엄청나게 많다는 건 알겠는데, 관람객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리슐리외관, 쉴리관, 드농관으로 크게 이루어져 있는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실은 4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또 각각 작은 전시실로 나누어져 있다. 크기가 넓은 것도 문제였지만, 전시실이 다 미로 같았다는 게 관람을 너무나 힘들게 만들었다. 사전에 루트를 짜야 한다는 게 바로 이것 때문이다. 우리는 줄이 제일 짧아 보이던 드농관으로 입장했다. 원래 플래쉬 터뜨리면 안 되는데, 모르고 찍었다. 죄송요ㅠ 작품명은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날개'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홀. 이렇게 길고 폭도 넓은 홀의 양쪽 벽에 작품들이 가득 걸려 있는데다가, 그 중간중간 문이 있어서 작은 전시실로 연결되었다. 산만의 극치라고나 할까.
그 작은 방들 중 가장 소음이 큰 곳으로 들어가면 바로 모나리자가 있다. 이 정도 인파는 예상했기에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막상 가까이 가보니 살짝 측면에서 엄마와 모나리자만 담아 인증샷을 찍을 수도 있었다.
루브르의 작품 중 가장 크다는 그림. 최후의 만찬을 묘사하고 있다.
러시아 원정을 나간 나폴레옹의 모습.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을 보며 교과서나 인터넷에서 자주 등장하는 그림이 원본의 박력을 반의 반도 못 따라간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거대한 크기의 캔버스에 절규에 찬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표정에 내 얼굴이 같이 일그러질 정도로.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1830년 7월 28일의 7월 혁명을 그린 작품이다. 낭만주의 그림임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작품 안에 작가 들라크루아도 있다. 중절모를 쓴 남성이 들라크루아라고 한다.
대충 캔버스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사진. 이렇게 유명한 사진들이 한 벽에 걸려 있다니.....!
그림 속에 담긴 수십개의 그림과 조각들. 섬세한 표현력에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만나고 왔던 나폴레옹 대관식.
성경의 장면을 표현한 그림. 유럽 박물관의 작품들 중 과반수 이상이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내용이 담긴 그림들도 많이 보였다.
네모 반듯한 캔버스 말고도 독특한 모양의 캔버스가 많았다.
정말 많은 작품들. 나중에 가서 엄마는 그림들이 다 너무 원색적이라 눈이 아프다고 하셨다. 나는 반대로 강하고 밝은 선명한 색이라서 마음에 들었는데.
그림만 있는 게 아닌 루브르. 표정이나 구겨진 옷감이 너무 현실적이라서 한 번 만져보고 싶을 정도였다.
이집트와 관련된 약탈 문화재들. 이 부분에서는 대영박물관에 비하면 루브르 박물관은 새발의 피다.
너무 방대한 작품의 수에 혀를 내두르며 박물관을 나오려는데 출구를 못 찾아서 또 한참 헤맸다. 들어왔던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가서야 가까스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입장이 점심시간 이후였기에 박물관을 나오니 폐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세 건물로 둘러 싸여 있는 이 광장에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 수다도 떨고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출구로 빠져나가면 오른쪽으로 센느 강이 보인다. 그리고 바로 퐁네프(Pont Neuf) 다리도 있고. 만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최신형이었기에 새로운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지금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인증샷도 남기고 센느 강변 산책도 하다가 카페 하나를 골라 들어갔다. 스테이크를 시켜 맛있고 배부르게 잘 먹긴 했는데, 팁 안주는 동양인이라는 인식이 때문인지 서비스가 영 엉망이었다. 그래서 진짜로 팁 안주고 나왔다. 팁은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주는 거지, 그냥 문화라는 이유 하나로 꼭 줘야 하는 건 아니잖아. 누굴 바보로 아나.
그리고 에펠탑으로 메트로를 타고 이동했다. 네 시 정도였기에 야경을 볼 목적이었다. 너무 빡빡한 일정이어서 다음날 고생 좀 했지만. 멀리서 보이는 에펠탑. 지하철 역에서 조금 걸어야 한다. 대충 도쿄타워를 상상하며 에펠탑 모형을 팔고 있는 길거리의 흑인들을 지나 가까이 다가갔는데,
물론 도쿄타워에 가까이 다가가서 본 적은 없었지만, 설령 그 경험이 있다고 해도 애펠탑과 도쿄타워는 제대로 비교조차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단순한 철골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너무나 예술적이고 아름다웠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무늬가 모이고 모여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을 이루고 있다. 에펠탑이 처음 파리에 세워졌을 때 반대를 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디테일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매끈한 자태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목 아픈 것도 모르고 고개를 젖히고 감탄하느라 바빴다.
위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를 타려 줄을 기다리는데, 에펠탑을 설계한 귀스타브 에펠의 흉상이 눈에 들어왔다. 에펠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념을 기념해 개최된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세워졌다. 당시 모파상이나 드가 같은 예술가들이 정말 싫어했다고. 20년 한정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었지만, 무선 전신 전화 안테나의 역할을 맡으며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이제는 파리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아이콘이 되었다.
줄이 길어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2층까지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계단도 있는 걸 보니 원하는 사람은 계단으로 내려갈 수도 있는듯...? 제법 쌀쌀한 날씨에 내부에서 커피를 마시고 밖으로 나갔다.
디카가 고장나서 폰으로 찍은 파리의 야경. 역시 높은 건물이 없어서 탁 트인 전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위쪽으로는 불이 밝혀진 에펠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부시게 예쁜 모습!
낮에도 밤에도, 가까이서 봐도 멀리서 봐도, 너무나 아름다운 에펠탑의 모습. 계속 계속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았는데 밤바람이 추워져서 결국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내려왔다.
매시 정각부터 10분 정도 레이저를 쏘는 조명쇼가 펼쳐진다. 파란색 조명이 이질적으로 반짝인다.
다음에 에펠탑에 갈 때는 꼭 묵직하고 좋은 카메라를 목에 걸고 가야지. 폰카였기에 이 아름다움을 1%정도 밖에 못 담은 것 같아 진한 아쉬움만 남았다.
다음날 첫 일정은 개선문이었다. 샹젤리제를 어느 방향으로 걸을까 고민하다가 콩코르드 광장 대신 개선문 쪽 지하철 역에서 내렸는데, 현명한 선택이었다. 샹젤리제 거리는 지도에는 드러나지 있지 않은, 급격한 경사로였다. 덕분에 힘들게 걷지 않아도 됐다. 개선문(Arc de Triomphe)은 생각보다 거대한 규모였다.
개선문 위로 올라가서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고 하지만, 어제 에펠탑에 올라가 봤기에 패스했다. 개선문은 사방에 큰 자동차 거리가 있기 때문에 지하로만 접근할 수 있다.
섬세한 개선문의 부조 중 일부. 총 10개의 부조가 있는데 나폴레옹의 공적을 기념하고 있다. 이 부조가 가장 유명한데, '1792년 의용병들의 출정-라 마르세예즈 La Marseillaise'라는 이름으로 파리를 지키기 위해 진군하고 있는 의용군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바닥에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무명 용사들의 무덤이 있고, 개선문 안쪽 벽면에도 프랑스 혁명부터 나폴레옹 시대까지 총 128번의 전쟁에 참여했던 558명의 장군들 이름이 적혀있다.
그리고 이제 샹젤리제(Avenue Champs Elysees)를 걷기 시작했다. 오~ 샹젤리제~ 하는 노래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데다가, 왠지 낭만적인 돌길이 쭉 이어질 것 같은 이미지 때문에 나름대로 상상했던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명품샵의 향연에다가 자동차가 쌩쌩 다니는 넓은 도로 때문에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샹젤리제라는 이름만 아니었으면 엄마나 나나 결코 오지 않았을 거리. 환상이 쨍그랑 거리는 소리를 내며 깨졌다ㅜㅠ 이미 다녀와서 실상을 알고 있음에도, 처음에 상상했던 샹젤리제의 이미는 여전히 마음 속에 살아 있다....ㅠ
샹젤리제 거리를 다 내려와서 찍은 샹젤리제. 가로수 사이에 숨어 잘 보이지 않는 개선문이 보인다.
메트로를 타고 마레지구(La Marais)로 향했다. 마레는 불어로 늪이라는 뜻인데, 17세기에 이곳에 화려하고 거대한 저택들이 들어선 이후로 여전히 남아있다. 그리고 개성적인 상점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사진은 바스띠유 오페라 앞의 기념팝이다. 바스티유 감옥 자리에 세워진 이 오페라를 한 번 찾아보고 싶었다. 상점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쇼핑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사먹으며 한참 걸었다. 피카소 박물관에 가고 싶어서 한참 헤매다가 경찰에게 물어봤는데, 메트로 타라는 답만 돌아왔다... 난 걸어가는 길을 물어본 거였다고ㅠ
그래서 피카소 박물관은 포기하고 노트르담 대성당(Cathedrale Notre-Dame)으로 향했다. 메트로 앞 노천 꽃가게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새장들.
웅장한 크기와 아름답고 화려한 외관에 압도 당해 한동안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장미창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유난히 한국인이 많았던 관광지. 내부는 들어가 보지 않았다. 역시 다음 기회에:)
날씨가 너무 좋았고, 성당 주변의 공원이 너무 예뻐서 사진이 찍는대로 다 잘 나왔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2세기 고딕 건출물인데 센느 강 위의 시테 섬에 위치해 있다. 1163년 착공하여 1320년에 완공된 역사 깊은 건물로, 1301년 필리프 4세의 삼부회 최초 개최, 1455년 잔다르크 명예회복 재판, 1572년 앙리4세와 마르그리트 왕녀의 정략결혼, 나폴레옹 대관식, 미테랑 전 대통령의 장례식 등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던 곳이다.
인물 사진도 정말 잘 나와서 한참을 사진 찍으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센느 강 다리 한쪽 면에 주렁주렁 달려 있던 자물쇠들. 세계 어느 도시를 가든, 이름을 적은 자물쇠를 걸며 영원한 사랑을 비는 전통을 발견할 수 있다. 이걸 함께 매단 커플들 중 지금까지 사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하는 말을 중얼거리자 옆에서 시니컬하게 엄마가 하시던 말. "이런 거 하는 커플들이 오래 가겠냐. 다 깨졌겠지." 내가 누구 닮았는지 알겠다니까^^ㅋ
강변에서 바라본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습이다. 민박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노선의 버스를 찾지 못해서 결국 메트로로 이동했다. 저녁은 엄마표 스테이크를 민박집에서 해먹었다♡
파리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여 오르세 미술관(Musee d' Orsay)으로 향했다.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리옹 역의 코인락커에 잘 두고 도착!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1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오를레앙 철도의 종착역이었던 이 건물은 기계화로 인해 39년 만에 그 기능을 잃고 버려져 있다가, 퐁피두 대통령 시기에 미술관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을 받아들여 이탈리아 건축가 아울렌트의 주도 하에 미술관이 되었다.
건물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내부에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밝고 아름다웠다. 강철과 유리로 장식되어 있고 유리돔을 통해 쏟아지는 자연광을 활용하고 있었다. 모네, 르누아르, 세잔, 고갱 등의 거장들 작품이 잔뜩 전시되어 있었다. 부드럽고 유한 느낌의 작품들에 엄마는 루브르 보다 좋다며 칭찬일색이셨다. 나 역시 독특한 분위기의 전시관과 많은 조각들, 그리고 모네의 작품에 반해버렸다. 딱히 특별한 날이 아니었음에도 입장할 때 표 사라는 이야기가 없어서 무료로 입장했다.
오르세 미술관 앞을 흐르고 있는 센느강과, 건너편의 루브르 박물관. 4박5일의 일정이었지만, 못 보고 온 것들이 너무 많다. 퐁피두 센터도 못 가봤고. 파리를 떠나 스위스로 향할 때만 해도, 지저분했던 파리 거리와 불퉁했던 현지인들, 생각보다 별로였던 샹젤리제 거리 등등으로 인해 실망감이 컸다. 그래서 교환학생이 끝날 때까지 굳이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 오니까 자꾸만 생각난다. 갑자기 파리라는 도시가 마음에 들게 됐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문득문득 한참을 걸었던 파리의 거리들이 생각난다. 너무 많이 걸어서 몸이 힘들긴 했지만, 거리를 걷던 순간들이 소름끼칠 정도로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토록 강한 후유증을 겪고 있는 걸 보니. 확실히 파리라는 도시의 마력이 있나보다. 다시 파리에 간다면, 이번에는 좋은 추억들만 만들고 올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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