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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끝나자마자 엄청난 크기의 캐리어에 겨울옷을 가득 담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 위쪽 선반에 그 무거운 캐리어 올려 놓느라 고생하고 아침 못먹어서 멀미하고 기차에서 내릴 때 또 캐리어 꾸역꾸역 내리느라 고생하고. 그렇게 내린 파리 북역에서 또 남역을 찾느라 발품을 열심히 판 뒤에 간신히 제대로 된 지하철을 찾아 파리 중심지에서 살짝 비켜난 민박집까지 힘겹게 캐리어를 끌고 갔다. 역시 길 한 번 헤매 주시고, 돌길 때문에 캐리어 바퀴 자꾸 걸리고, 초인종 어떻게 누르는지 몰라서 멘붕하고ㅋㅋㅋㅋㅋㅋㅋ 가까스로 민박집에 캐리어를 내려놓고 샤를 드골 공항으로 향했다.
왜냐면 한국에서 엄마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고 있었거든!!! 딸 유럽에 있을 때 한 번 와야하지 않겠냐며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결국 유럽행 티켓을 끊으신 것이다. 12박 13일의 일정으로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3국을 함께 여행했다. 모녀가 함께 한 해외여행은, 딸의 부족함이 커서 몸이 많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기억에는 많이 남았다.
생전 처음으로 공항에서 누군가를 기다려본 경험은, 지금도 생생하다. 의자에 앉아 스도쿠를 열심히 하며 지루함을 달래던 2시간 남짓했던 시간ㅋㅋㅋㅋㅋ 처음 해외에 나오시면서 걱정이 가득하시던 엄마를 위해 시간이 조금 뜨더라도 민박집에서 바로 직행해서 내가 기다리는 쪽을 택했기 때문에 불만은 없었다. 그래도 기다림이 길어서 인지 세 달 만의 재회에도 엄청 반갑게 맞이해드리거나 하지는 못했다.... 엄마도 긴 비행으로 지쳐 계셨고.
이 날은 파리 시내로 돌아와 식사 하고, 거의 아무 것도 안 했다. 그리고 다음날, 베르사유로 향했다.
이 역은 파리로 돌아갈 때 사용했다. 베르사유 궁전은 파리에서 기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일드프랑스 지역의 베르사유에 위치해 있으니, 인터넷이나 가이드북의 정보를 잘 얻어서 가는 방법을 확실히 알고 가야 한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베르사유 궁까지 걸어가는 도중 카페를 만난 엄마가 커피~!!!를 외쳐서 각자 커피 한 잔씩 앞에 놓고 맛있는 크로와상까지 먹었다.
북적거리는 베르사유 궁전. 아침에 가까운 오전이었음에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표를 구입하는 것도, 입장을 하는 것도 오래 걸렸다. 베르사유 궁전은 태양왕 루이14세가 절대왕정을 과시하기 위해 건축한 17세기의 거대한 궁전으로 전체길이가 680m라고 한다. 매일 같이 화려한 파티가 열리는, 귀족들의 연회장소였던 곳.
입장하고 나서 안내데스크 사람에게 지도를 달라고 하니까 어떤 언어냐고 물어왔다. 별 생각 없이 English라고 대답했는데, 혹시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다시 묻는 게 아닌가. 그래서 Korea라고 하니까 한국어 지도를 건넸다. 그리고 입장 티켓을 보고 오디오가이드가 포함되어 있으니 한국어 가이드 들으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줬다. 덕분에 오디오의 설명을 들으며 흥미진진하게 베르사유 궁전을 감상할 수 있었다.
화려한 오르간이 시작부터 사람을 압도했다. 고풍스러운 기둥들은 그리스 신전에서나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커다란 벽난로의 모습. 실제로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게 신기했다.
독특한 벽지를 배경으로 그려져 있는 초상화. 그리고 태양왕의 얼굴을 그려놓은 황금색 부조.
천장을 가득 메우고 있던 각기 다른 천장화들. 천장만 보고 걸어도 족히 반나절은 걸릴 것 같았다. 벽은 물론이고 천장까지 빈틈없이 꽉꽉 예술작품으로 채워져 있는 그 화려함에 감탄이 반복적으로 터져 나왔다. 물론, 천장화는 바티칸에 끝판왕이 있기 때문에,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보지 않았으면 이런 감탄도 반쪽짜리일 뿐입니다...ㅋ
이런 섬세한 부조들로 모든 방을 장식하기 위해서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을 들였을까...!
복원 중이던 천장화. 바티칸의 천지창조는 성당이기에 늘 켜두던 초들의 그을음으로 덮여버렸는데, 덕분에 작품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복원할 때 원래의 색감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 특수처리된 면봉으로 일일이 닦아냈다고. 사진 속 천장화에 붙어있는 종이들도 색을 선명하게 하는 용도가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본다.
누구나 한 번쯤을 봤을, 태양왕 루이14세의 초상화. 조명이 너무 붉었다.
말에 타고 있는 왕은 늠름한데 어째서 아래 쪽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에게 더 눈이 가는 걸까. 전쟁에서 승리한 왕을 보여주는 부조 같지만, 마음 한 쪽이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제 거울의 방에 진입! 크기도 크지만, 방 안 가득 화려한 장식들이 가득하고 17개의 거울이 정원을 향한 창문의 맞은편에 위치해 있어서 더욱 웅장한 느낌을 준다. 방이 아니라 로비 혹은 복도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길이가 길다. 바로 여기서 세계1차대전의 종결을 알린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렇게 방 한쪽 면이 거울이고, 거울에 비친 것처럼 반대쪽이 창문이다. 햇빛이 유리에 반사되서 눈이 아플 정도.
화려한 천장화는 물론이고, 방의 매력을 더하는 작품들도 곳곳에 가득했다. 정말 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장식품들이 많았다. 오른쪽은 아르테미스 조각으로 당시에 그리스,로마 신화의 영향도 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밤에는 얼마나 어두울지 짐작케 하는 사진이다. 유럽은 한국처럼 실내를 밝게 해두고 살지는 않는다. 일단 천장에 등이 없는 건 기본이고, 밤에 어둠을 밝히는 스탠드 조명도 형광등이 아니라서 은은한 빛만 내뿜는다. 그래서 유럽에 갔을 때 그 어두움에 적응하는 것이 꽤 어려웠다.
이런 게 참 좋다. 방 구석에 위치한 창문 걸쇠일 뿐이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몇 백년 간의 손때가 잔뜩 묻어 있는 정감 가는 일상용품.
루이 14세의 침실. 이 방에 들어서면 그 사치스러움에 혀부터 내두르게 된다. 하지만 이런 방을 혼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많은 시종 및 신하들이 쉴새없이 들락날락 거렸다는 점에서 왕이라는 직위가 조금 안쓰럽기도 하다.
역시 화려한 왕비의 침실. 사진 속 하얀 작은 문으로 프랑스 대혁명 당시 마리 앙뜨와네뜨가 도망을 갔다고 한다. 그 격동의 역사적 현장에 울려퍼졌던 분노에 찬 목소리들이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마리 앙뜨와네뜨의 흉상.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갔던, 여전히 역사의 평가가 갈리고 있는 사람.
대혁명과 그 시기를 전후로 하는, 혼란과 혼돈에 찬 거리의 모습. 성난 민중들이 귀족들의 사치스러움을 비난하며 파리에서부터 걸어서 행진해왔던 이 베르사유 궁전에, 바로 그들의 절박한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니. 이런게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나폴레옹과 관련된 그림들도 많았다. 큰 사진은 그 유명한 대관식 장면. 왜곡된 역사적 사실로 가득하다는 이 그림은 루브르 박물관에도 하나 더 있다. 나폴레옹 뒤에 앉아 있는 교황이 황제 즉위를 긍정하는 손짓을 하고 있는 것이 거짓말이고, 뒤쪽 하얀 옷을 입은 나폴레옹 친모는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절대군주들이 본인의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건 서양이나 동양이나, 과거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나폴레옹을 영웅화 시킨 그림.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라는 작가의 그림인데, 앞발을 전부 든 말 위에 위풍당당하게 앉아있는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그린 사람과 동일인이다. 권력자에게 아부하며 풍족한 삶을 살았고, 지금까지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사람이다.
역사적 인물들의 초상화가 벽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던 방. 개개인의 인생 이야기가 참으로 재미있을 듯 했지만, 궁전이 너무 커서 진이 다 빠진 관계로 오디오가이드도 건성건성 들었다.
독특한 샹들리에. 도자기로 되어 있어서 떨어지면 깨질 것 같았다. 동양풍 장식으로 가득했던 방.
이렇게 궁전을 한 바퀴 돌고 나오는데만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이 궁을 제대로 하나하나 뜯어보려면 일주일도 모자랄 듯 싶다. 처음 이 궁전으로 초대받은 귀족들이 충분히 압도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궁전에서 떠나기 싫어 했을 법도 하다. 이토록 화려한 곳에서 살다보면 본인도 세련되고 우아해 보일 것이라고 생각되었을 테니까.
그리고 이렇게 탁 트인 엄청난 정원이 바로 앞에 있다면 당연히 새삼 반하지 않겠어? 인위적으로 잘 조성해 놓은 잔디와 나무들도 인상적이지만, 정원이라고 쉽게 믿을 수가 없던 자연 그대로의 느낌이 물씬 풍겨나오던 것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크기도 엄청나고. 여행이 3월이었기에 겨울 느낌이 채 가시지 않았던 것은 아쉬웠지만, 계절의 한계가 이 넓고 아름다운 정원의 매력을 감소시키지는 못했다.
호수(혹은 운하)에 위치해 있던 화려한 조각상. 포세이돈 인 듯..?
무료로 개방되어 있는 정원의 잔디밭에는 많은 주민들이 드러누워 한가하게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아니 '결코'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전혀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여유롭게 살고 싶다.
조정 경기 연습을 하던 학생들. 에이트다 에이트!! ㅋㅋㅋ 무도로 쌓은 조정 지식^^
썩 좋은 날씨가 아니었음에도, 정원이 워낙 넓게 탁 트여 있어서 아름답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사진에 쉽게 담아낼 수 있었다. 가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베르사유 정원을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기회가 생기면 꼭 다시 가보고 싶을 정도로 그리움이 현재 진행형이다.
그랑 트리아농(grand trianon)이라고 본 궁전과는 조금 떨어져 있는 별장 느낌의 궁전. 쁘띠 트리아농이라는 궁전도 있다. 분홍색 대리석이 아주 인상적이다.
너무나 큰 정원이기에 탈 거리가 두세 종류나 됐다. 물론 가격이 정말 엄청나게 비싸서 탈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 그리고 정원은 산책하는 곳입니다. 여행할 때는 뚜벅이가 최고죠!ㅋㅋ
기차역으로 걸어갈 즈음에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비를 고스란히 맞으면서도 아이쇼핑하고, 시장에서 치즈랑 소시지도 사고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녔다. 기차역을 못 찾고 헤매다가 현지인에게 길을 물었는데, 정말 영어를 모르더라... left right 조차도 모르다니..!! 그래도 도와주려고 노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기차역을 찾아 다시 파리로 돌아갔을 때 너무 기운이 없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맥주 한 잔씩 마시고 일정을 마무리지었다. 베르사유에서 놓치고 지나간 것이 많아 아쉽기만 한데, 시간과 돈과 체력은 이제 충분하다며 힘들다고 아우성이었다.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 간 곳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베르사유 자체가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일까. 베르사유는 또 가고 싶은 곳이다. 다음에는 더 많이 공부해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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