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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레퀴엠

in 정동극장, 2022.12.31 6시

 

 

 

 

류정한 맥베스, 안유진 올리비아, 정원조 뱅쿠오, 김도완 맥더프, 박동욱 로스, 이상홍 던컨, 이찬렬 맬컴, 정다예 애너벨, 홍철희 캘런, 김수종 경호원. 총막. 류맥베스 자일곱.

 

 

지난 2월, 지킬앤하이드 막공주를 빼앗긴 것이 의외로 큰 상처였나 보다. 총막에서 레전공을 찍은 류배우님이 성큼성큼 걸어 나와 큰절을 하시는 순간,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펑펑 나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든 류배우님이 평소답지 않게 무대인사가 길어질 거라며 부담스러우니 앉으라고 관객을 앉히는 말에도 계속 눈물이 났고, 울컥하는 감정을 채 숨기지 못한 목소리가 마음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목이 메어서 여러 차례 목을 가다듬는 모습도 처음이었다. 다른 배우들의 인사를 경청하며 마음을 추스르다가, 마지막으로 인사할 때 치밀어 오르는 감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류배우님을 보며 마스크가 다 젖도록 눈물을 쏟았다. 작품에 대한 노력과 애정이 사무치는 그 얼굴을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첫 독백을 듣는 순간, 이건 루프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난 15일 공연의 마지막 장면 독백과 유사한 어조 및 톤으로 내뱉는 막공의 첫 독백은, 이 이야기가 처음이 아님을 절감케 했다. 맥더프와 최후로 대립하는 장면에서 "아무도 나를 죽일 수 없다" 는 예언을 입에 올릴 때, 맥베스는 이미 스스로를 죽여보려 시도한 적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에게서 태어났기에 자신 또한 맥베스 본인을 죽일 수 없음을 경험해본 것 같았어. 탕, 하는 총성과 함께 모두가 쓰러진 뒤 홀로 남겨진 맥베스. 그가 짓는 웃음은, 이 모든 지옥이 다시 새롭게 반복되리라는 것을 예감한 듯한 표정이었다.

 

 

"여기서 멈추면 안 돼. 계속 가야지.

돌아갈 수 없어"

 

 

예언을, 제 마음 속의 조각을 맹신하고 던컨왕을 죽이기로 선택한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은 달라져버렸다. 엎질러버린 물을 결코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듯, 이 크고 시끄러운 환청이 그를 깨워주길 아무리 간절히 바란다 하여도 죽어버린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잘못된 선택의 결과를 돌이킬 수 없기에, 더 깊고 짙은 파멸로 향하는 선택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맥베스. 한 번 어긋나 버린 길은, 스스로 멈추지 않는 이상 결코 돌아갈 수 없기에. 

 

 

이 루프물 노선이 막공의 노선이라는 점이 류정한 배우의 위대함을 절감케 만든다. 비록 <맥베스 레퀴엠>의 마지막 공연은 끝이 났지만, 맥베스의 절망과 고통은 어둠 속에서 영원히 계속되리라는 메타포 그 자체 아닌가. 무대인사가 끝난 뒤의 마지막 포즈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읽혔다. 물론 배우 본인은 슬픔과 아쉬움을 담아 한 손으로 눈가를 가렸겠지만, 극 중 맥베스가 자주 취하던 자세였기에 마치 극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다. <드라큘라> 삼연 총막 커튼콜에서 마지막으로 관짝에 들어가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떨구던 그 자세처럼 말이다. 연기를 이렇게 살벌하게 했으면서, 무인에서는 연기를 못한다고 겸손을 떠는 류배우님께 대체 무슨 말씀이냐 외치고 싶었다.

 

 

 

 

"신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신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유난히 힘든 한 해였다는 류배우님 말씀이 왜 이렇게 가슴 아프던지.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 년이었죠, 2022년. 부디 2023년은 보다 즐겁고 행복한 일이 많기를, 그리하여 하루하루가 충만하고 다정하기를 바라요. 올해의 마지막을 배우님과 함께할 수 있어 더없이 영광이었어요. 어느 극장에서 어떤 작품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얼굴 가득 환하게 미소를 걸고 시간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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