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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레퀴엠
in 정동극장, 2022.12.15 7시반
류정한 맥베스, 안유진 올리비아, 정원조 뱅쿠오, 김도완 맥더프, 박동욱 로스, 이상홍 던컨, 이찬렬 맬컴, 정다예 애너벨, 홍철희 캘런, 김수종 경호원. 류맥베스 자넷. 실황 박제 회차.
거듭할수록 깊어지는 이 극을 처음으로 온전히 보고 온 기분이 든다.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을 내딛기 직전의 류맥베스 표정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먼 훗날 혹여라도 내가 명예나 권력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맥베스가, 바로 이 순간의 고통과 번뇌가 떠오를 것 같다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 직전에 예정된 파멸을 짐작하고 스스로에게 제동을 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맥베스>라는 고전에 담긴 텍스트의 힘을, 비로소 오롯이 마주하고 영혼 깊이 새겼다. 그만큼 이날의 공연이 눈부시게 좋았다. 이 공연이 박제되어서 다행이고, 부디 그 촬영본이 공개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이젠 잠을 잘 수 없다
맥베스가 잠을 죽였다
이젠 잠을 잘 수 없다
글래미스가 잠을 죽였다
그러니 코더의 영주는 영원히 잠들 수 없다
맥베스는 이제 잠을 잘 수 없다"
매 순간이 좋아서 무엇이 특별하게 좋았는지 남길 수가 없다. 왼블 1열이어서 독백으로 번뇌하는 맥베스의 표정을 다채롭게 볼 수 있어 행복했고, 후반부 대립 장면에서 맥더프를 향해 지어 보이는 무심함과 경멸이 똑똑히 보였다. 하늘을 노려보듯 응시하며 성호를 긋는 장면을 매번 사랑했는데, 이날은 유난히 더 서슬 퍼렇고 위태로워서 짜릿했다. 대관식 파티 직전, 극단으로 치닫기 직전의 자신을 설득하려 드는 올리비아의 뺨을 양손으로 붙잡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속삭이듯 말하는 맥베스의 디테일도 좋았다. 마지막 독백의 대사톤도 평소와 다르게 좋았는데, 글로 표현이 안되네.
"날 죽여줘
제발 이 껍데기를 데려가"
내면의 욕망이 그려낸 예언에 매혹되고 사로잡혀 끝내 잠식되어 버린 맥베스. 스스로를 옭아맨 저주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 가련한 영혼이 짓는 표정이 여즉 생생하다. 올리비아의 마지막을 바라보던 뒷모습이, 비명처럼 높은 음의 라크리모사 멜로디를 허밍 하는 목소리가, 고통과 후회와 절망으로 얼룩진 눈물이 가득 일렁이는 두 눈과 그 안광이 잔상처럼 남는다.
이날 로비에서 전동석 배우와 신성록 배우를 봤다. 어쩐지 무대보다 객석에서 더 자주 뵙는 듯.. 전동석 배우의 단콘을 이번에는 꼭 가보고 싶은데 표가 없네. 콘서트.. 부럽다.. 아무튼 함박눈이 펑펑 내린 정동극장을 여러모로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는 날이어서 더욱 만족스럽고 기쁘다. 한 달 동안 진행되는 이 극이 벌써 반이나 지났다니. 덕분에 추운 연말이 벅차게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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