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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전동석 두 번째 콘서트 - 기다림

in 롯데콘서트홀, 2022.12.30 8시

 

 

 

 

3년 전 데뷔 10주년 기념의 첫 번째 단독 콘서트는 시라노 재연 회전을 도느라 보지 못했다. 두 번째 콘서트는 놓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으나 티켓팅에서 장렬히 패배했다. 공연 직전까지도 양일 올매진이어서 새삼스레 그의 인기를 절감케 했으나, 언제나 그러했듯 전동석 배우는 자리 하나 정도는 제공했다. 팬텀과 프랑켄 사연 때 자리를 구해준 덕친 언니가 이번에도 좋은 자리를 하나 건네준 덕에, 행복한 연말 관극을 할 수 있었다. 

 

 

롯데콘서트홀 공연장 자첫이었는데, 악명대로 음향이 참 애매하더라. 다음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1층 뒷자리에 앉아야겠다. 이날 앉은 자리는 1.5층에 위치한 E구역의 1열이었는데, 스피커가 바로 앞이라서 소리가 째지게 들렸다. 하지만 무대를 향해 살짝 휘어진 위치와 한 개만 덩그러니 놓인 좌석 덕분에 마치 5번 박스석에 앉은 팬텀을 체험하는 기분이 들어 즐거웠다. 무대 위 배우에게 오롯이 집중하며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자리여서 특별했다.

 

 

롯데콘서트홀 공식홈페이지 좌석 시야 캡쳐

 

 

1부

대성당들의 시대 /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우리는 & 어쩌나 이 마음 / 뮤지컬 <베르테르>

나는 나는 음악 / 뮤지컬 <모차르트!>

그 어디에 / 뮤지컬 <팬텀>

그게 나의 전부란걸 /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단 하나의 미래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 전동석, 정택운

너의 꿈속에서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 게스트 정택운

너 하나만 /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 

Life After Life / 뮤지컬 <드라큘라>

 

2부

Music of the Night /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Wicked Little Town (Reprise) / 뮤지컬 <헤드윅>

Amazing Grace / 찬송가

시간에 기대어 / 가곡

그림자는 길어지고 / 뮤지컬 <엘리자벳> / 전동석, 이지훈

없는 사랑 / 뮤지컬 <엑스칼리버> / 게스트 이지훈

사랑의 찬가 / 가곡

 

앵콜

Loving You Keeps Me Alive / 뮤지컬 <드라큘라>

지금 이 순간 /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My Way / 가요

 

 

 

 

셋리가 마음에 쏙 드는 건 아니었지만, 듣고 싶었던 몇몇 넘버들과 가곡 하나가 무척 좋았다. "시간에 기대어" 노래의 가사 하나하나를 곱씹듯 노래하는 목소리에 눈물이 펑펑 났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보다 이 곡이 훨씬 거대한 위로가 됐어. 동모촤가 돌아오지 않으리란 건 본인이 너무 자주 말해서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난나음이라도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난나음과 웨인월을 듣는데 어쩌면 그렇게 눈물 날 수 있는지.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가사 하나하나가 심장에 박혀 들었고, 그 음악을 선사하는 배우가 너무나 반짝거려서 형용하기 힘든 감정에 휩싸였다. 음악이란, 기적 그 자체다.

 

 

동큘 못사여서 앵콜의 러빙유도 몹시 고마웠다. 새삼 드큘 넘버들이 아름답다는 생각도 들었고. 첫공 셋리에서 위킫을 발견하고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전주 첫 음을 듣자마자 무대 위 세상이 바뀌었다. 헤드윅이 아니라 토미 버전의 위킫맆을 선택한 건 동드윅다웠다. 본인이 힘들 때 헤드윅을 만나 다행이었다며, 짜여진 동선이 아닌 무대 위의 자유로움을 깨닫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라는 말에 헤드헤즈로서 어찌나 벅차던지. 헤드윅 전후의 지앤하 본공과 서울 앵콜공의 자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는 말에 재차 헤드윅이라는 작품의 의미를 되새겼다. "작품을 만난다는 건 배우에게 운명 같은 일이서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라고 말한 그가, 직후 위킫맆에서 "운명이란 없는 거야" 라고 부르는 가사를 들으며 절로 미소가 났다. 음악도 작품도 운명처럼 만나는 거지만, 결국 그 길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일 테니.

 

 

막콘 앵콜에서 첫콘 때 부르지 않은 사골을 불러준다기에 순간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듣다 보니 절로 몰입하게 되는 게 역시 명곡은 명곡이구나 싶었다. 돌이켜보면 동지킬 첫공 이후로 동의 사골은 처음이기도 했고. 그 당시의 감동과는 결이 다른 충족감이 들어 즐거웠다. 동그랭 대성당도 처음이어서 좋았고, 목을 긁고 손짓 디테일을 넣어 부른 랖앺랖도 즐거웠다. 앵콜에서 무반주로 프블 도입 길게 부르다가, 뱀슬 파트는 객석에게 마이크를 넘겨준 것도 특별했고. 뮤옵나 끝나고 밴드가  POTO 반주 깔아주니 동크리가 노래해 줬고, 생창 첫 소절도 무반주로 불러줬구나. 역시 콘은 막콘이다.

 

 

게스트를 미리 알고 갔는데, 막콘을 선택한 이유의 8할인 택앙이 분위기를 제대로 띄워주고 가서 행복했다. 단하미 때 목소리가 좀 얼어있기도 했고, 멘트할 때도 중앙 객석 쪽은 쳐다도보지 않고 전동석 배우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어서 긴장을 많이 한 티가 났다. 덕분에 내 자리에서 택앙 얼굴이 내내 잘 보이긴 했지만. 등장 전에 소대에서 대기하며 "어제 은태 형도 이렇게 떨었어요?" 라고 물어봤다는 얘기도 귀여웠다. 첫콘 끝난 뒤 은앙이 "난 콘서트는 절대 못하겠어" 라고 했다는 전동석 배우의 말에 절망했다. 안됩니다! 뮤배들 단콘 반드시 해야 한다는 뭐뭐법 반드시 발의할거야. 아무튼 그러다가 전동석 배우가 춤 얘기를 꺼내며 제 무덤을 팠고, 이를 놓치지 않은 택앙이 바로 몰이를 시작했다. 덕분에 무반주로 한잔술을 부르며 춤을 추는 동빅이라는 희귀템을 볼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이런 것도 해야 한다며 볼하트와 깨물하트를 시키는 아이돌 짬바 10년의 택앙 덕분에 객석이 다들 즐거워했다. 심지어 팬서비스를 앞쪽 뒤쪽 좌석 골고루 시키는 그 섬세함이란. 개인적으로는 동빅 애교보다 두 사람이 몰고 몰리는 상황 자체가 사랑스러워서 몹시 즐거웠다. 동빅이 나중에 복수할거라고 중얼대던데, 택앙 단콘 할 때 놀러 가면 되나요?

 

 

 

 

"후회투성이 살아온 세월만큼 더 

너와 난 외로운 사람

난 기억하오 난 추억하오

소원해져 버린 우리의 관계도

사랑하오 변해버린 그대 모습

그리워 하고 또 잊어야 하는

그 시간에 기댄 우리"

 

 

배우를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는 멘트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대극장 주연을 턱턱 맡는 이 사람도, 자신의 진로에 대해 나아갈 삶의 방향에 대해 언제나 고민하는구나. 가뜩이나 나이대가 비슷한 배우여서 내적동질감이 있었는데, 제가 겪은 고민의 편린을 모호하게나마 공유해주는 그 말이 갑작스럽게 위로가 됐다. 다들 흔들리며 살아가는구나. 다 함께 험난하고 지난한 시국과 고통스러운 참극의 시대를 헤쳐가고 있구나. 때로는 사무치게 외롭고 때로는 지독한 슬픔 속에 침잠하기도 하지만, 음악으로 유대하며 또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거구나.

 

 

첫 넘버부터 목 상태가 최상은 아니구나 싶었는데, 공연장의 건조함까지 더해지니 멘트 중간중간 계속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더라. 후반주에 구내염에 걸렸었다는 멘트를 듣고 그제야 납득했다. 컨디션이 그렇게 안 좋은데 어떻게 풍성한 소리들을 낼 수 있는지 놀라웠다. 비중 적고 음역대 찰떡이긴 하지만, 호흡 길게 달려야 할 오유가 눈앞에 있으니, 부디 아프지 말고 지치지 말길 바란다. 앵콜 직전 꽤 긴 시간 동안 끊김 없이 쏟아지던 썰물 같은 박수 소리에 벅차올랐던 내 마음만큼, 그 역시 힘과 용기와 나아갈 방향성을 다시 한번 되찾았길 바란다.

 

 

한 해를 마무리하기에 부족함 없는 공연이었다. 온갖 인생이 녹아있는 뮤지컬을, 그 안에 담긴 음악을 사랑하지 않을 방법, 이제는 도무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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