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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앤하이드

in 샤롯데씨어터, 2019.03.14 8시

 

 

 

 

전동석 지킬/하이드, 아이비 루시, 이정화 엠마, 이희정 어터슨, 이하 원캐. 동지킬/동하이드 첫공.

 

 

전동석 배우의 필모는 대부분 챙겨보고 있다. 프랑켄슈타인 재연의 동빅터 첫공을 봤고, 팬텀 재연 동릭도 공연 초반의 페어첫공을 관극했다. 그리고 이번에 이 배우가 처음으로 도전하는 지킬앤하이드 역시, 첫공을 보고 왔다. 배우가 '처음으로' 구축한 캐릭터를 '최초로' 만나는 경험은, 특별하다. 배우에게도 첫공은 뜻깊고 긴장되는 무대겠지만, 객석의 관객 또한 새롭게 만나는 첫 만남이 무척 설레고 떨렸다. 이 유의미한 첫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즐거웠다.

 

 

"그중에서 '지킬'이란 인물을 만드는 데 시간을 쏟고 있다. 섬세하면서도 열정적인 '지킬'을 보여줄 예정이다" (출처)

 

 

동지킬과 동하이드 모두 좋았으나, 동지킬이 기대 이상으로 아주 좋았다. 위에 언급한 인터뷰대로, 지킬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배우가 고민을 많이 했다는 티가 났다. 동지킬 출연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건방지고 고집 센 꼿꼿한 대나무 같은 지킬이리라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무대 위의 동지킬은 휩쓸리고 휘청대면서도 꿋꿋하게 뿌리를 내리고 선 억새 같은 지킬이었다. 지킬의 성향이 단단하게 구축되어 있으니, 강렬한 하이드도 매끄럽고 안정적으로 극에 녹아들었다. 하이드의 경우,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참고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남의 몸에 깃들어 새롭게 탄생한 존재. 갓 태어나 제 정체성을 인지하고 깨달아가는 존재. 명확하게 어느 부분을 차용했다고 꼽기는 어려운데, 분위기나 동작 등이 묘하게 괴물을 연상시켜서 흥미로웠다. 

 

 

This Is The Moment. 이날 관극에서 가장 강렬했던 장면을 꼽자면, 단연 사골이었다. 뮤지컬 배우라면 누구나 꿈꾸고 선망하는 그 넘버.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작품 안에서, 바로 이 무대 위에서, 바로 이 순간 최초로 부르는, 바로 이 넘버. 기대와 열망과 희망과 벅참으로 가득한 지킬의 감정은 끝내 배우 본체에게 고스란히 옮겨가며 폭죽처럼 화려하고 눈부시게 터진다. "신이여 허락하소서-" 하며 오른팔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린 피날레 포즈를 취한 동지킬이, 기쁨과 벅참으로 가득 찬 반짝이는 눈으로 객석을 바라본다. 터져 나오는 박수와 환호가 끊이지 않는다. 배우 또한 가득 차오른 벅참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그 순간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그 모습에 더욱 큰 환호가 쏟아진다. 배우와 관객이, 공연장 안의 모든 사람들이 공유한 그 눈부신 찰나. 일렁이는 불꽃같던 그 눈망울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리라.

 

 

 

 

※스포주의, 극에 대한 극불호 주의

 

 

동지킬은 젊고 어리고 위태롭다. 곧은 신념이 있지만 유약하다. 주관이 뚜렷하지만 소심하다. 사회의 부조리를 잘 알지만, 맞서 싸우기 보다는 체념하고 외면하는 것에 익숙하다. "왜 현명한 사람도 단 한순간 어둠 속에 영혼을 빼앗" 기는지 "알아야 해" 라고 고민하고 해결해내리라 굳건히 다짐한다. 그는 아버지를 위해 연구를 시작했고, 모든 인간은 이중성을 타고났다는 점에서 실마리를 얻었고, 마침내 선과 악의 분리야말로 잘못된 세상에 팽배한 위선과 불의의 유일한 해결책이라 확신한다. 

 

 

이사회 앞에 선 동지킬은 면전에 가감 없이 쏟아지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 한다. 긴장한 표정으로 이마를 만지고, 푸우- 하며 입을 풀고, 단상 옆을 양손으로 짚고 오른쪽 손가락 몇 개를 초조하게 타닥, 움직인다. 인간이 타고난 두 개의 성품 중에서 어두운 면을 분리하여 통제하면 된다는 제 의견을 열정적으로 피력하는 그의 눈빛은, 기대와 열정으로 반짝인다. 그것이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섭니다" 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희망찬 미래에 대한 벅찬 기쁨으로 파르르 떨린다. 온갖 멸시와 비아냥에도 물러서지 않고 진심을 다해 기꺼이 고개를 숙인다. "기회를 주세요 단 한 번만" 이라 간청한다. 몰이해와 편견이 너무나 답답하여 손으로 눈가를 가리고 한숨을 푹 내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위험한 발상이라 말하는 이사회를 향해 "아닙니다!!" 하고 비명처럼 외친 동지킬은, 그들을 향해 양손을 뻗으며 "위험한 게 제발 저에게 단 한 번만" 하며 애원한다. 지금 당신들의 모습, 그 내면 속의 사악함을 보라며, 그 어두운 면을 분리하면 모든 악행을 통제할 수 있노라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설득한다. 무겁게 내려앉는 적막. 그 절박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끝내 밀물처럼 쏟아지는 단어, "네이".

 

 

더 이상 설득의 여지도 없는 굳건하고 견고한 불통의 선언에, 동지킬은 꼿꼿하게 선 자세 그대로 얼어붙는다. 여긴 대영제국이지 미국이 아니라며 비꼬던 장군이 퇴장하고 나서야 휘청 흔들린다. "다수가 미치면, 개인은 절대 제정신이 아니니까" 하고 짓씹듯 말한다. 자신이 본 미래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 이들이 진절머리 나고, 지위와 안위만을 중시하는 위선이 역겹다. 어터슨의 걱정을 "그만." 하고 단호한 말로 끊어내지만, 결국 "나더러 뭘 어쩌란거죠!!" 하고 폭발한다. 답답함과 분노와 절망에 휩싸여 눈물을 비친 동지킬은, 지긋지긋한 공간을 형형한 눈빛으로 돌아본 뒤 악몽을 떨쳐내듯 휙 퇴장한다. 

 

 

Letting Go. 정화엠마의 우아하고 확고한 강단과 봉환댄버스의 부드럽고 나긋한 다정함. No One Knows Who I Am.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하루들에 진절머리 내는 과자루시의 감정은, 어둡고 추악한 본성만이 넘실대는 레드랫을 집어삼킬 듯 타오른다. 동지킬은 평생 여자라고는 엠마만 알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연구에 몰두하며 틀어박혀 있느라 유혹 자체에 노출되어 본 경험이 없다. 뒤에서 어깨를 만지는 여앙의 손길에 화들짝 놀라고, 레드랫 여성들의 춤과 노래를 대단한 작품인 양 바라보고, 어터슨의 유도에 따라 박수를 치며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호응에 참여하는 등, 처음 접하는 상황에 대한 생경함이 잔뜩 묻어난다. 스파이더에게 얻어맞는 루시의 모습에 벌떡 일어나지만, 어터슨의 제지에 강경한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파사드에서 귀족과 평민의 대립을 목도하는 위태로운 표정과 루시를 대하는 조심스러운 태도가, 정의감은 있으나 소심하고 인간적인 동지킬의 노선을 명확히 드러냈다. 루시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그를 막거나 밀어내는 등의 적극적인 제지 없이, 뻣뻣하게 서있던 몸은 그대로 둔 채 고개만 돌려 회피한다. 이 찰나에 지킬이 내면에 감추고 있는 위선이 선명히 드러나고, 스스로의 위선을 인지하는 동지킬의 옅은 자괴도 비친다.

 

 

 

 

깨달음을 얻은 동지킬의 눈빛이 번뜩인다. 맑고 고매했던 정신을 지녔던 아버지의 초상화를 올려다보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다. Now There Is No Choice. 걱정을 제쳐두고 스스로 기회를 잡겠노라 다짐한다. This Is The Moment. 이 넘버는 가히 완벽했다 평하고 싶다. 손동작과 팔동작이 많았는데, 넘버 가사에 맞춰 디테일을 만들어 온 게 분명했다. 넘실대는 감정이 얼굴 가득 일렁이고 벅찬 기대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온다. 본인에게 주사를 놓은 뒤, "마약?" 하고 나서 컹컹 소리를 섞어 낄낄거리고, "마약이래," 하고 킬킬거리고, "뚜렷한행동변화는없다" 하고 높은 톤으로 속사포처럼 쏟아낸 뒤 큭큭거린다. 다 잘될 거라 애써 진정하는 순간 예기치 않은 변화. 단정하고 맑은 지킬의 목소리 중간중간 굵고 투박하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섞여 나온다. 내려앉은 정적을 깨는 자정 종소리에 깜짝 놀라 마치 짐승처럼 구부정한 몸을 부풀리며 경계한다. 주위를 휘휘 둘러보다가 무대 왼쪽의 거울을 발견하고 큰 보폭으로 걸음을 떼는 뒷모습은 야생동물과 흡사하다. 갓 태어난 동물. 위에서 언급했듯, 프랑켄의 괴물의 행동에서 착상을 얻은 듯한 행동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오싹할 정도로 서늘한 웃음을 가득 짓는다. Alive. 굵은 목소리로 대사처럼 처리하는 마디들, 급작스럽게 튕기듯 변하는 목소리, 위협하듯 긁어내는 소리와 신음 같은 탄성 등이, 인간이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광기 어린 하이드의 본질을 생생하게 내보인다. 

 

 

낮고 굵은 목소리로 "야옹, 우리 야옹이~" 하고 비아냥대며 등장하는 동하이드. "가장 두드러지게 타락하고 부패한 위선자. 위선자, 위선자, 위선자!" 하며 시작하는 Alive 2. 넘버 자체도 아주 좋았지만, 무엇보다 술병 디테일에 내적 환호를 엄청나게 질렀다. 꺼내 든 술병을 다리 사이 중심에 정확하게 들고 마구 흔들어 술을 뿌리는, 마치 사정을 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는 디테일. 이것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류하이드의 디테일이라서, 이렇게라도 만나게 되어 너무 기뻤다. 류배우님 디테일 가져와주는 전동석 배우님, 매우 아낍니다. 객석까지 열기가 전해지는 뜨거운 불길과 함께 화려하게 마무리되는 1막 피날레.

 

 

 

 

2막. Murder Murder. 낮고 두툼한 목소리의 동하이드는 이사회의 위선자들을 찾아가 냉혹하고 잔인하게 죽음을 선사한다. 동지킬은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는 약방 주인의 걱정에 불안하게 눈을 굴리더니 양팔을 벌리며 "아주 평온해," 라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그러나 순간 억, 하고 몸을 숙이며 힘겨워하고, "좋아, 아주 좋아-" 라는 절규 같은 외침의 끝자락에 하이드의 목소리가 묻는다. 만면 가득 즐거움과 희열을 담아 태연하게 자행하는 동하이드의 살인 중, 비콘스필드 부인 살해 부분의 목소리와 동작과 표정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굵은 저음으로 하하하하, 쏟아내는 웃음소리도 좋았고. 머더머더 마지막 조명에 칼을 맞춰 반사시키는 것이 이번 시즌 지앤하에서 유행처럼 강조되고 있던데, 동하이드 칼은 넓은 조명 한가운데에 잘 들어갔다.

 

 

엠마가 떠나자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를 내며 흐느끼는 동지킬 디테일은 노선과 잘 어울렸다. 다만 이 장면의 표정 연기는 다소 아쉬웠다. 양 눈을 질끈 감고 코까지 완전히 찡그리는 배우 본체 특유의 표정이 있다. 자신을 믿어주는 엠마 덕에 안도하고 위안받는 순간과, 오롯이 홀로 감내하는 끔찍한 고통으로 괴로움이 전부 이 표정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지킬의 복잡한 감정이 표정으로 표현되지 않으니, 그의 번뇌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비명처럼 날카로운 소리, 파동의 굵기가 다른 다양한 울먹임, 지킬에서 하이드로 넘어가는 음색 변화 등, 목소리 연기는 중간중간 희열이 느껴질 정도로 좋았다. 그래서 더 아쉽다. 잘생긴 목소리와 더불어 이 배우의 노선 해석이 항상 취향에 맞아서 공연마다 기대를 거는데,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섬세함이 부족한 연기가 마음에 밟힌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지킬의 표정이 더욱 다채롭고 예민하게 표현되리라 믿는다.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마!!!" 라며 어터슨을 향해 번쩍 치켜든 주먹 쥔 오른팔을 가까스로 인지한 동지킬은, 당황한 표정으로 서둘러 그 손을 끌어안는다. 목소리 뿐만 아니라 눈가에도 울음이 맺힌다. 홀로 남겨진 그는 완벽한 은신처를 찾아낸 괴물이 "그토록 없애고 싶었던 또다른 내면" 이었음을 고해한다. Streak Of Madness. "미워하기는 힘들죠 나니까" 하며 시작되는 이 넘버의 가사들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본인의 노선과 정확히 맞물려서 좋았다. 이미 언급했지만, 동지킬은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확실히 높다. 머더머더와 인히쟈 사이의 연기만 잘 다듬어 낸다면 정말 만족스러운 지킬이 될 것이다.

 

 

비아냥의 웃음을 가득 띄우며 느긋하고 여유 있는 목소리로 "우리 루시는 거짓말이 서툴러" 하고 말한 동하이드는, 잡아먹을 듯이 그르렁대며 "그래서 귀엽지" 하고 웃는다. 말그대로 짐승 같은 하이드. It's A Dangerous Game. 많은 공연을 봐왔지만, 이 넘버만큼 천박하고 역겨운 연출은 찾기 어렵다. 연출을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결코 좋아할 수 없는 혐오스러운 장면이다. 동하이드의 노선이 그나마 용납 가능한 범위였기에, 지난 자둘 관극 때처럼 눈을 질끈 감는 대신 가까스로 그의 얼굴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다만 너무나 현실적이고 절박한 과자루시의 열연이 시야에 자꾸 걸려서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겨웠다. 동하이드의 댄져는 늪처럼 끈적한 성폭력이 아니라, 내재된 잔인함이 가감 없이 우러나오는 날 것 그대로의 폭력이었다. 루시의 머리채를 휘어 잡고 그가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을 하며 눈을 번뜩이는 동하이드는, 사냥감을 앞에 둔 잔혹한 야수였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크고 묵직한 폭력성이 흘러넘친다. 제 마음에 드는 약한 자를 제 마음대로 휘두르며 유린하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추악한 본성의 하이드.

 

 

음색과 톤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목소리가 예측할 수 없는 하이드의 성향을 부각한다. 어터슨에게 달려들며 위협하는 몸 연기도 썩 만족스럽지 않았으나, 하이드가 지킬이 되고 지킬이 하이드가 되는 부분은 외려 자연스럽고 괜찮았다. 지킬과 하이드가 서로 다른 존재임을 분명히 구분해야 하는 지점은 능숙하게 분리하여 매끄럽게 넘나들면서, 지킬과 하이드가 각각 개별적인 정체성을 지니고 존재하는 장면은 어색하다니. 배우가 어디에 방점을 두고 분석하고 연구하고 연습했는지 너무 잘 알겠더라. 덕분에 무려 첫공임에도 이 정도 퀄리티가 나올 수 있었고, 그렇기에 추후 공연들이 기대가 된다. 전반적으로 2막이 아쉬웠음에도, 이렇게 여러모로 재미있고 짜릿한 관극이었기에 후기가 혹평과 호평을 넘나들고 있다. 

 

 

 

 

The Way Back. 동지킬이 이 넘버의 호흡이나 목소리 조절을 좀 더 하면 좋을 것 같다.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많이 섞여서, 가사가 명확하게 잘 들리지 않는 마디들이 다소 있었다. 팔을 휘두르는 디테일이 여기도 좀 있다. 실험대 위의 하얀 구체를 밀면 불길이 타올라야 하는데 불이 나오지 않는 참사가 있었다. 연구실이 너무나 멀쩡하게 퇴장해버려서, 긴박함과 긴장감이 경감되었다. 과자루시의 New Life 는 정말 좋았다. 저와 "모든 걸 공유하고" 있다 확신했던 지킬이 자신 몰래 루시에게 쓴 편지를 읽은 하이드의 얼굴이 차갑게 굳는다. 순간 그의 눈가가 물기로 반짝인다. 루시를 향한 동하이드의 집착은 결코 사랑이 아니었기에, 그 눈물은 제가 통제한다 믿었던 자들에게 느끼는 배신과 분노로 느껴졌다. Lucy's Death. 1막에서 루시가 지킬을 향한 마음을 담아 불렀던 Sympathy And Tenderness 를 조롱하듯 흥얼대며 그를 잔인하게 찌르고 베는 하이드. "나른해져어어억" 하며 하이드에서 지킬로 변화한 그는, "아니야," 하고 울먹이고 "아니야, 아니야아악" 하며 뛰쳐나간다.

 

 

간절함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밤 검은 어둠 길 잃은 당신" 이라 운을 띄웠던 1막 첫 넘버. 그리고 충격과 고통으로 비틀대며 파들대는 목소리로 "밤 검은 어둠 길 잃은 영혼" 이라 울먹이는 2막 클라이막스. Confrontation. 부담스러운 첫공임에도 극 내내 배우 본체의 긴장감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컨프롱은 컨프롱인지라 이 넘버에서는 긴장한 태가 좀 났다. 조명에 맞춰 동작과 표정과 목소리 만으로 지킬과 하이드를 완벽하게 분리하며 스스로 대립해야 하는 극악한 넘버. 게다가 3시간 가까이 무대 위에서 극을 끌고 오다 보니 몹시 힘들기도 했을 터다. 그럼에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넘버 초반에는 꼿꼿하게 선 채 검지를 세워 오른손을 왼쪽 상단으로 뻗는 지킬과 왼쪽으로 몸을 확 숙인 채 뭔가를 그러쥔 듯 왼손가락을 구부린 하이드가 별개로 존재한다. 지킬일 때는 왼손이 옆구리에 딱 붙어있고, 하이드일 때는 반대로 오른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을수록 지킬과 하이드는 서로에게 물들어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격해지는 만큼 높아지는 동화의 정도는,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던 반대편 팔을 지킬과 하이드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증명된다. 팔을 휘두르는 동작 역시 갈수록 커지는데, 지킬은 사골과 웨이백이, 하이드는 얼랍이 연상됐다. 배우의 의도를 확언할 수 없지만, 이 팔동작 디테일을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으로 삼아서 극을 관통하는 일관성을 심으려 한 게 아닐까 싶다. 글로 표현되는 것보다 덜 과하고 더 절도 있는 동작이어서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다. 원체 기럭지가 긴 배우라서 생경하게 보일 수도 있는 디테일임에도, 독특하고 신선하여 상당히 흥미로웠다.

 

 

컨프롱에서 하이드가 "공존은!! 불가능 해-" 하고 쏟아낸 뒤, 몸을 세워 정면을 바라보던 지킬이 땀과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 미소를 건다. 모든 걸 쏟아낸 허망함, 스스로를 내버리면 된다는 깨달음이 주는 허탈함, 묵중하고 절망적이기에 도리어 가볍게 걸어버리는 각오. 울음과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이제 가자" 하고 대사처럼 토해내는 결심. 넘버 마지막에 조금만 더 힘내서 뒷심을 세게 해주면 아주 좋아질 것이다. 힘에 부친다는 느낌까지는 안 드는데 힘들어 보이긴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정말 기대 이상의 컨프롱이었다. 첫 공연인데 넘버 변주를 이렇게나 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긴 했다. 처음인 만큼 정석적으로 가도 괜찮았으리라 생각은 하지만, 욕심낸 만큼 노력한 배우의 치열함이 놀랍고 대단하여 만족했다.

 

 

급작스러운 엔딩. 결혼식 장면은 아쉬웠다. 위에서 뒷심을 운운한 이유 중 하나가 결혼식 장면 때문이다. 무대와 객석의 모든 눈이 오로지 지킬이자 하이드만을 바라보고 있는 이 부담스러운 장면은, 무대 장악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아직은, 부족하다고 느꼈다. 시선을 집중시키는 존재감은 있지만, 관심을 휘어잡는 역량은 모자란다. 무대 장악력은 대개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힘이기 때문에, 배우가 끝까지 집중하여 쏟아낸다면 충분히 향상될 수 있는 능력치라고 믿는다. 새삼, 지앤하는 정말 어려운 극이다. 극악한 극의 난이도를 생각하면 이 정도 수준의 비판은 극찬이 아닐까 싶다.

 

 

 

 

프랑켄 재연 동빅터를 보며 "머지 않은 미래에 동지킬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 (참고) 을 했었다.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되어 반가웠고, 유쾌하게 관극 할 수 있어 너무나 즐거웠다. 동지킬/동하이드의 '처음' 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기뻤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처음' 을 훌륭하게 선보이며 설렘과 벅참을 담뿍 느끼게 해 준 배우에게 커다란 감사를 보낸다. 커튼콜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무사히 끝낸 첫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배우 본체의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다. 연뮤덕이기에 누릴 수 있는 이런 특별한 경험이 어마어마한 행복감을 선사한다. 앞으로의 공연도 무사히 멋지게 잘 해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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