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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레퀴엠
in 정동극장, 2022.12.10 2시
류정한 맥베스, 안유진 올리비아, 정원조 뱅쿠오, 김도완 맥더프, 박동욱 로스, 이상홍 던컨, 이찬렬 맬컴, 정다예 애너벨, 홍철희 캘런, 김수종 경호원. 류맥베스 자셋. 위멮데이. 류정한 배우님 공연 150번째 관극!
위메프 덕분에 무대인사에 커튼콜 촬영까지 가능했다. 오랜만에 듣는 류배우님의 육성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가 문득 지난 2월에 잃어버린 지앤하 막공주 공연 3개가 떠올라 울컥했다. 당연한 일상을 위협하는 시국이 이 찰나의 행복을 어찌나 애달프게 만드는지. 우리의 모든 어제는 죽음으로 이르는 길이지만, 그 길 위의 걸음 하나하나는 더없이 찬란하고 소중하다.
저녁까지 혼자 있고 싶다며 "괜찮겠죠 왕비님?" 하고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눈으로 올리비아를 바라보던 맥베스는, 그가 등을 돌려 떠나자마자 천천히 무대 왼쪽을 향해 있던 고개를 객석으로 돌린다. 웃음을 담아 휘어져있던 눈매가 서늘히 가라앉으며 모든 감정이 침잠하는 그 짧은 순간의 표정 연기가 정말 좋았다. 여기서부터 대관식 파티까지 버릴 구석이 하나 없었다. 극 초반의 우유부단하고 위태로운 인간미도 매력적이지만, 우아하게 좌중을 압도하는 귀족미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절규하는 비장미야말로 류배우님의 전매특허 아니던가.
뜻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 확 치밀어오른 분노와 짜증을 부드럽게 갈무리하며 나긋하게 잔인함을 드러내는 류맥베스의 연기가 심장이 떨릴 정도로 좋다. 다만 레베카 류막심처럼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고고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눈은 이미 돌아가 있는 차분한 광기가 더 취향이다. 3일 밤공 노선이 조금 더 좋았다는 그런 얘기.
던컨 왕이 맥베스의 뺨에 묻힌 흰색 피가 결말 즈음에는 잘 안보여서 아쉽다. 새빨간 색이면 더 눈에 띄고 자극적이었을 게 분명하여 섭섭했는데, 연극에서는 보통 분장 상의 이유로 피를 하얀 색조로 표현한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그럼에도 첫 살인 이후 절대 지워지지 않는 얼굴과 손의 핏자국이 극의 마지막까지 가시적으로 남아있었더라면 훨씬 좋았으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당신, 우리가 아이를 잃었을 때
두려움마저 잃어버렸구나."
"나만 잃어버린 건 아니길 바래."
맥베스가 예언을 따르겠노라 결심한 시점. 그건 존댓말에 익숙해져야 한다며 냉정하게 주종 관계의 명확한 선을 긋는 던컨 왕의 말에 눈동자를 번뜩이던 순간일까. 맥베스의 천성까지 걱정하며 본인이 더 적극적으로 두려움 없이 예언을 실현하려 움직이던 올리비아가 무너지게 된 시점은 분명하다. 설마 하던 염려가 벼락처럼 현실이 되었을 때. 친구이던 뱅쿠오는 물론이고 자식처럼 아끼던 그의 아들까지도 해하려 한 맥베스의 잔혹함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무너진다. 아이를 잃을 때 함께 잃어버린 건 두려움뿐이었기에.
원캐로 매일 무대에 서고 계신 열 분의 배우들, 모두 막공까지 무사히 건강하게 멋진 무대 만들 수 있기를 바라요! 위메프 삼창*2 덕에 더욱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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