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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in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2022.04.23 3시
김소향 프리다, 리사 레플레하, 임정희 데스티노, 허혜진 메모리아. 티몬스테이지.
딤프 초청작일 때부터 관심 있던 극이었고, 2년 만에 만나게 됐다. 마타하리부터 웃는 남자, 엑스칼리버까지, EMK의 창작뮤지컬은 모조리 취향이 아니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쟁쟁한 여성 배우들만 잔뜩 나오는데 극이 취향이 아닌 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객석의 반응을 끌어내며 무대를 쥐락펴락하는 레플레하 때로는 사랑스러운 첫사랑으로 때로는 달콤한 죽음으로 프리다의 선택을 종용하는 데스티노, 목소리 톤의 낙폭이 인상적이었던 평행세계의 프리다 메모리아, 그리고 온몸을 불사르며 하나의 생을 살아내는 프리다까지. 무대를 꽉꽉 채우는 네 사람의 열기에 두 시간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불편한 부분에 밑줄을 그으라고?
내 인생 전체에 밑줄을 그어야 할 텐데."
라스트 나이트 쇼의 화려한 조명이 잠시 꺼지고 분장실 거울 앞에 홀로 남겨진 프리다는, MC 레플레하의 배려에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걸며 자조한다. 불편한 부분에 밑줄을 그으라니, 내 인생 전체가 그 대상이라는 조소 어린 프리다의 표정이 지독히 고독하고 외롭고 허망하게 침잠한다. 삶의 전환점마다 들려오는 삐뽀삐뽀 사이렌 소리가 울릴 때마다 오른팔을 들어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는 프리다의 눈물 얼룩진 얼굴이 운명을 거듭할수록 더욱 아득하고 다채로운 감정을 담는다. 더 비극적으로, 더 찬란하게. 고통스러웠기 때문이 아니라 충분했기 때문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선언하는 프리다의 온몸에서 형용할 수 없는 빛이 쏟아진다.
"멋진 인생 따윈 없어도 돼
화려한 조명도 필요 없어"
"더 굳세게 더 강하게
내게 갑옷을 줘
화살을 견딜 총알을 견딜
내게 갑옷을 줘"
잔인하고 가혹한 운명을 올곧게 마주하며 분연히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두 다리로 딛고 서는 프리다의 이 넘버 제목이 '코르셋'이라니. 육체를 구속하고 제한하는 코르셋이 오히려 프리다에게는 굳센 갑옷이라는 아이러니가, 절대자가 부여한 숙명을 거부하는 프리다의 의지를 한층 견고하게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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