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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데스타운

in 엘지아트센터, 2021.10.10 7시

 

 

 

 

조형균 오르페우스, 최재림 헤르메스, 김선영 페르세포네, 김환희 에우리디케, 김우형 하데스, 이하 원캐.

 

 

이야기 구성, 무대 및 조명 연출, 음악, 배우들의 연기와 몸짓과 목소리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작품이었다. 특히 운명의 세 여신과 일꾼 다섯 명의 앙상블이 채워내는 분위기와 화음이 지독히도 매력적이어서 짜릿했다. 주연 배우들도 워낙 믿고 보는 분들이라, 쫀쫀한 서사와 농밀한 감정에 흠뻑 빠져들었다. 드럼을 제외하고 전부 무대 위에서 함께 호흡하는 악기들이 몰입도를 더했다. 1막 첫곡에서 헤르메스가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을 소개한다거나, 2막 첫곡에서 페르세포네가 연주자들의 실명을 직접 언급하며 박수를 유도하는 연출이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다. 이머시브 무대로 연출했어도 손색이 없었을 듯한 자유롭고 농염하며 매혹적인 극이었다.

 

 

 

 

가혹한 바람에 둘러싸인 채 홀로 험난한 시대를 헤쳐나간 에우리디케에게 먼저 손을 내민 오르페우스. 북북 찢어 만든 종이꽃을 새빨간 진짜 꽃으로 바꿔내는 오르페우스의 음악과 그 진심에, 에우리디케의 마음도 움직인다. 그러나 고뇌에 휩싸인 오르페우스에게 에우리디케의 절박한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가장 필요했던 순간의 부재는 차디찬 운명의 길로 그들을 안내한다. 내가 그대에게 향하노라 외치는 오르페우스의 그 지독히 처절하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뜨겁게 조명을 빛내고 지붕을 들어 올리고 꽉 닫혀있던 무대 구조물 사이에 길을 낸다. 

 

 

어둡고 깊은 지하에 공장을 세우고 불을 지피며 이건 모두 페르세포네를 위한 것이라 말하는 하데스의 아둔하고 폭력적인 사랑이 비극의 근간이다. 그대를 향한 나의 욕망이고 갈망일 뿐이라는 말은 페르세포네의 손목을 휘감는 황금빛 족쇄일 뿐이다. 그 무엇도 이곳으로 넘어오지도 동시에 넘어가지도 못하게 만드는 거대한 벽을 "자유"라 명명하는 독재자의 위선이 서슬 퍼렇게 공간을 압도한다. 목을 한껏 뒤로 젖혀 보이지 않는 하늘을 마주하기 위해 애쓰는 페르세포네의 간절함을, 그의 어깨에 가볍게 손 하나 얹는 것으로 침묵시킨다. 그런 그도 오르페우스의 음악에 제 오만을 깨닫지만, 운명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신 역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마치 인간처럼.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노래를 시작하는 것

이번엔 다를 거라 믿는 것"

 

 

마지막 장면 속 헤르메스의 나레이션에 전율이 일었다. 결말을 알면서도 끝없이 노래를 다시 시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운명에 저항하고 기꺼이 생을 끌어안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일이기에. 누구나 잘 아는 익숙한 이야기를 색다른 관점에서 새로운 형식으로 풀어낸 이 극이 브로드웨이에서 사랑받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알겠더라. 신화 속 인간과 신의 이야기는 여전히 철학적인 화두를 던진다. 이토록 매혹적으로, 이다지도 세련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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