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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 0328. 봄

in 광명시민회관 대공연장, 2021.08.11 7시

 

 

 

 

이 극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적인 3.1운동이 아닌, 조금 늦게 터져나온 만세운동을 소재로 한다. 경성이 아닌 공간에서, 이미 두려움에 한 번 도망쳐본 청년들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 독창적이다. 이야기를 시작하고 맺는 변사는, 악사와 함께 극 중간중간 서술자이자 분위기를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 어느 순간 그들과 함께 움직이는 가수의 존재는 다소 겉돌았다. 무대 위 밴드가 연주하는 넘버들이 잔잔하고 따뜻하여 마음에 들었는데, 담담한 목소리로 부르던 두번째 넘버 '조선의 봄' 이 특히 울림이 좋았다.

 

 

무대 왼편 밴드 앞쪽에 늘어뜨린 실커튼을 활용한 조명연출이 특히 좋았다. 조선의 봄을 노래할 때마다 무대 오른편 상단의 조명이 실커튼 위로 비스듬하게 선명한 빛을 비춘다. 위는 빨간색 아래는 파란색으로, 마치 태극기의 태극처럼. 너댓번 반복되는 이 조명연출에 딱 한 번 변주가 있는데, 정석 호찬 순만이 대립하는 '누구를 위한 독립인가?' 넘버다. 당장 내 가족이 한 끼를 더 먹어 살아남는 것이 중하기에 대체 너희들이 부르짖는 독립이라는 것이 누굴 위한 것이며 무슨 의미가 있느냐 묻는데, 그 때 빨간색과 파란색 조명 중간에 노란색 조명이 비춘다. 자유 평등 박애를 담은 프랑스 국기가 기울어진 채 일렁거리는 듯하여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살아봐서 그래.

우리가, 살아남아서 그래."

 

 

지금 당장의 안위보다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중요하다고 믿는 이들의 언어가 다소 설득력이 부족한 감이 있었다. 이웃을 팔아넘긴 비겁함을, 친구의 용기를 외면한 냉정함을, 눈앞의 죽음이 두려워 도망친 부끄러움을 변화시킨 도화선이 충분한 장면과 대사에도 불구하고 그리 극적이지 못했다. 사소한 아쉬움들이 이야기의 몰입을 방해한 탓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장면에서 굳이 일본의 국화 벚꽃을 언급한다거나, 극 중에서 주구장창 일본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대사가 있는데 극의 제목은 '일기'가 아닌 '다이어리'라는 영어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럼에도 곳곳에 여러모로 정성을 들인 티가 많이 나는 작품이어서 관극이 즐거웠다. 극 내내 배우들이 각자 하나의 인물만을 연기하는 1인1역의 정직한 연출이 생각보다 큰 안정감을 선사해서 오랜만에 무척 신선했다. 조선의 봄을 바라고 꿈꾸며 행동한 이들 하나하나를 향한 깊은 감사와 존경을 다시금 되새긴 따스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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