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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쥬스

in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21.07.06 8시

 

 

 

 

정성화 비틀쥬스, 홍나현 리디아, 유리아 바바라, 이창용 아담, 김용수 찰스, 전수미 델리아. 비틀쥬스 한국 초연 총첫공.

 

 

팀버튼 작품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영화 <유령신부>를 원작으로 하는 이 뮤지컬이 한국 무대에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두근거렸다. 무대 셋업 이슈 때문에 개막이 미뤄진 건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기대감이 커졌다. 무대가 얼마나 복잡하고 화려하고 개성 넘치길래 정해진 시간에 못 맞출 정도였을까, 하는 궁금함을 가득 끌어안고 객석에 앉았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 관극과 마찬가지로 세종에서 들었던 강좌에 포함되어 있는 단관이었는데, 관극 일자를 택할 수 있어서 망설임 없이 총첫공에 손을 들었다. 한국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초연의 첫공을 만나는 짜릿함이란.

 

 

"비틀쥬스, 비틀쥬스, 비틀쥬스!" 

 

 

다 떠나서 일단 무대가 너무너무너무 매력적이다. 단 한 장면도 허투루 쓰지 않는 영리하게 꽉꽉 들어찬 무대 연출이 극 내내 시각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커다란 메인 구조물들이 여럿 있고, 그 장치들의 요소요소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새로운 공간을 표현해내는 섬세함에 여러 차례 혀를 내둘렀다. 공감각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예술작품에 열광하는 취향인데, 이 극의 무대 디자인은 그 욕망을 너끈히 충족시키고도 남았다. 구조물이 들락날락하면서 장면 전환이 되는 순간에도 단순한 암전을 사용하는 대신 전환 음악과 함께 영상을 사용하는 것도 완벽했다. 영상 속 낙엽이 쓸려가거나 새가 날아가는 방향이 구조물의 등퇴장 방향성과 일관성 있도록 만들어서 안정감과 몰입도를 높였다. 또한 적재적소에서 음악의 변주와 함께 휘황찬란하게 쏟아지고 변하는 조명의 형태와 색감은 이야기를 한층 다채롭고 생동감 넘치게 했다. 

 

 

 

 

"야 이거 뮤지컬이야. 독백을 들으면 어떡하냐? 매너 없이.

이 스포트라이트 안 보여?!"

 

 

개성 넘치는 인물들을 배우들이 찰떡 같이 살려내서 한층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주조연 배우들은 물론이고 앙상블까지 구멍 하나가 없더라. 영화와 닮은 듯 다른 캐릭터성과 태연하게 비꼬고 풍자하는 언어유희가 장면 곳곳에서 빛을 발했다. 함정에 밀어 넣기 위해 웃어 보이면서도 "축복은 무슨 얘 겨우 열여섯이야" 하며 정색하는 부분이 얼마나 속 시원하던지. 특히 시국을 빗댄 대사들과 유쾌하게 번역된 가사들 덕분에 웃음을 많이 터뜨렸다. 그러나 세종의 음향이 너무 답답하고 엉망이어서 화가 났다. 전체적으로 크게 불편한 부분은 없었으나, 외국인의 어눌한 한국어 발음으로 웃음 포인트를 노리는 생각 없는 연출만큼은 제발 그만 만나고 싶다.

 

 

극 내내 "투명하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무대 위 인물들은 존재하고 있으나 투명하기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배재되어 투명해진 이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더 이상 투명한 존재로 남지 않겠노라 투쟁하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비틀쥬스는 외로워서, 바바라와 아담은 자신들의 아늑한 집을 되찾고 싶어서, 그리고 리디아는 엄마가 그리워서, 투명한 자신들의 상태에 저항하고 절규하며 손을 잡고 나아가려 애쓴다. 한치를 예측할 수 없는 전개가 혼미하면서도 중독성 있어서 거듭 몰입을 높여갈 수밖에 없는 극이다.

 

 

 

 

비틀쥬스 넘버 리스트. 출처는 프로그램북.

 

ACT 1 ACT 2
#1. Prologue: Invisible

#2. The Whole Being Dead' Thing


#3. Ready, Set, Not Yet


#4. The Whole Being Dead' Thing Pt.2


#5. The Whole Being Dead' Thing Pt.3


#6. Dead Mom 


#7. Fright of Their Lives 


#8. Ready Set (Rep.)


#9. No Reason


#10. Invisible (Rep.) / On the Roof


#11. Say My Name 


#12. Day-O (The Banana Boat Song) 
#1. Girl Scout 

#2. That Beautiful Sound 


#3. That Beautiful Sound (Rep) 


#4. Barbara 2.0 


#5. The Whole Being Dead' Pt.4 


#6. Good Old-Fashioned Wedding 


#7. What I Know Now 


#8. Home 


#9. Creepy Old Guy 


#10. Jump in the Line (Shake, Senora) 


#11. Dead Mom / Home / Day-O (Rep.)


#12. Encore / Bows

 

 

 

 

"살아있을 때 좀 더 행복할 걸 그랬어"

 

 

살아있는 동안 타인과 교류하고 나아지기 위해 변화하는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응시하기 때문에, 기괴하고 혼란스러운 무대와 소품과 의상과 캐릭터들이 거부감 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생을 긍정하는 이 유쾌하고 신나는 이야기를 꼭 한 번 더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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