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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로망스
in 예스24스테이지 3관, 2021.06.06 2시
임진섭 장선호, 김태한 이중섭, 서예림 전혜린, 원종환 박인환, 조진아 성여인, 신창주 채홍익.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에 꿈꾸고 있는 세상이 있는 법이다. 예술가든, 예술가가 아니든. 험난한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에 너무 익숙해버린 이 시대의 청춘이, 낭만이 있던 60여 년 전 예술가들의 다방에 불시착하여 스스로 생각하고 꿈을 꾸기 시작하게 된다. 공무원 선호의 말과 행동에 공감이 되기에 몰입하게 되고, 1956년 예술가들의 삶에 대한 로망이 있기에 동경하게 된다. 시대를 초월한 만남을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지만, 끝끝내 제 삶의 철학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점도 낭만적이다.
"아이야, 내 삶이 거기 없듯이 니 삶도 여기 없는 기야."
누구보다 열렬히 살고 싶었던 이들이지만, 그 "삶"은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고 숨을 쉬는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나답게 내 앞에 주어진 이 현실을 올곧게 끌어안고 당당히 생을 마주하는 것이 그들이 바라고 꿈꾸는 삶이다. 행복하고 뜨겁게, 진실하고 빛나게, 나답게, 살고 싶은 열정으로 뜨겁게 생을 불사른다. 그렇기에 이 예술가들이, 그들의 삶이, 우리에게 기억되며 이토록 심장을 뜨겁게 만드는 것이다. 내 모습 그대로, 내 꿈이 빛날 세상을 끝없이 꿈꾸며, 삶을 불태운 이들.
"그런 세상 내 안에 있어
내가 그리는 꿈 같은 세상
다른 세상 만날 수 있어
내가 그리는대로 이뤄지는 세상"
"다음이라는 순간이 당신한테 당연히 올 거라고 확신한다면, 그건 오만이죠"
선호가 입에 달고 살던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의 의미가 변한다. 극 초반에는 조금만 참으면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지나가리라 되뇌며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란다. 지금 당장의 기쁨과 즐거움은 매번 다음으로 미루면서. 그러나 56년 명동의 로망스 다방에서 벗들을 만나고 겪은 선호는 변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을 붙잡지 않는다면, 이 소중한 시간 또한 지나가리라 깨닫게 된 것이다. 괴로움을 삼키며 현재를 억압하는 대신, 순간순간을 긍정하며 정성껏 살아내야만 함을 이해한다. 시대나 상황과 무관하게, 청춘이라면 이 이야기에 피가 뜨거워질 수밖에 없으리라.
"왜 난 그림 그리며 아파하나
왜 난 고통스럽게 시를 쓰나
왜 난 나를 불태울 꿈을 꾸나
왜 난 누구와도 다른 진짜 내가 되길 멈추지 못하는 걸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불태우고 쏟아내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의, 청춘의 의무이자 특권이라 믿는다. 비록 시대와 권력이 이를 억압하고 제한할 지라도, 꿋꿋하게 자기 자신으로써 살아남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모든 이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이 있기에 이 세상은 도태되거나 정체하지 않고 여전히 반짝이며 생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겐 예술이, 젊고 뜨거운 열정과 피가 필요하다. 역사 속의 모든 시대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내게 생명수를 줘
이 잔 가득 따라줘
이 한 잔이면 난 살 수 있어"
고등학생 시절 예술가 전혜린을 동경하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사랑했던 소녀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열망하며 거리로 나서 청춘을 뜨겁게 불태웠다. 이제는 탄소중립이라는 또 다른 새로운 꿈을 가슴에 품고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그는 오랜만에 전혜린을 다시 만나 그 시절을 마주했다. 여전히 생동하는 현대사는 반짝 외우고 금세 잊어버려야 하는 지식이 아니라, 기억하고 되새겨야 하는 역사다. 역사를 잊은 자는 쉽게 철학을 내버린 채 말을 내뱉고, 그 말이 남긴 자국이 폐허를 만들어 끝내 자기 세상 하나 품지 못하는 텅 빈 껍데기가 되어버린다.
소주 막걸리 동동주 위스키, 생명수를 갈구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한 잔에 또 하루를 살아낼 힘을 얻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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