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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

in 부산 드림씨어터, 2021.06.24 7시반

 

 

 

 

손승연 엘파바, 정선아 글린다, 진태화 피에로, 남경주 마법사, 김지선 모리블. 손썸머 페어막이자 자첫자막. 위키드 라센 자셋자막.

 

 

여름휴가 차 부산여행을 오는 김에 위키드 관극을 일정에 넣었다. 하필 이날 낮에 감천문화마을 구경하다가 발목을 삐끗했으나, 이미 서울에서 한 번 놓쳤던 썸머글린다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재관 증빙을 깜빡해서 차액까지 물었지만, 1열 정중앙이었기에 노할인 정가를 감내했다. 부산 드씨 공연장 자첫이었는데, 협소한 로비와 아쉬운 캐슷보드와 이해할 수 없는 화장실 입구의 포토존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무대가 가까운 덕분에 오프닝에서 타임드래곤 움직임을 조종하는 하수 기둥 위 엔지니어를 비롯하여 이후 장면 곳곳에서도 기술적 연출을 엿볼 수 있어서 한층 재미있었다. 1막 마지막에 글린다가 엘파바 어깨에 둘러주는 까만색 망토가 플라스틱 버클인 것도 처음 봤으니.

 

 

 

 

썸머글린다의 사랑스러움에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는데, 역시 Popular 넘버가 압도적이었다. 이 어려운 넘버를 숨 쉬듯 편안하게 찰떡같이 소화하며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발랄함과 상큼함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보는 것만으로도 광대가 승천하게 만드는 매력이 넘쳐흐른다. 다리 찢기를 하고 나서 안 괜찮다며 슬쩍슬쩍 스트레칭을 하는 디테일이 미소를 짓게 만들고, "와 이라노" 하는 귀여운 사투리가 함박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파티드레수~~" 라고 외쳤음에도 변화가 없자 지팡이 끝을 감싸며 "너도 무섭지?" 하는 애드립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영원히 파퓰러 해주세요.

 

 

"꿈을 이룬다는 건 예상보다는 단순하지 않네요

치룰 대가가 있고 또

포기할 것이 있고 또

힘든 시간도 견뎌내야죠 다 지나갔지만

꿈을 이룬 기쁨 생각보다는 덜 해도 뭐

완벽한 해피엔딩 엄청난 환호 속에

난 기쁜 게 당연해 이제 행복이 가득해

모든 꿈을 이룬 지금 더없이 행복해"

 

 

Thank Goodness 넘버는 혼란과 당혹감에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애써 삼켜내며 환하게 미소를 보일 수밖에 없는 글린다의 괴로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장 화려한 순간 가장 고독하다는 이 역설. 나나글린다는 위태로움이 여실히 보여서 내내 안쓰럽고 아팠던 반면, 썸머글린다는 태연을 가장하다가 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감정에 고개를 살짝 돌려 입가를 손으로 막아서 가슴이 미어졌다. 나나글은 지독한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며 사명을 마주했다면, 정글은 집어삼킨 고통을 주어진 소명을 올곧게 응시하는 원동력으로 치환했다. 닮았으나 다른 두 글린다의 성장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너라는 중력이 손을 내밀어

난 너로 인하여 달라졌어 내가"

 

"우리 다시 만날 수 없다 하여도

너는 이미 심장의 일부가 되어

나 숨 쉬는 매 순간 항상 곁에서

힘을 내라 미소 지어 줄 테지"

 

 

파퓰러도 디파잉도 땡굿도 노굿도 훌륭했지만, 이날 관극에서 단 하나의 장면만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For Good 넘버를 택하겠다. 서로를 마주 보며 서있는 두 사람의 실루엣이, 썸머글의 노래를 듣던 손파바의 얼굴에 차오르던 감정이, 마지막이라는 먹먹함과 애틋함에 끝내 푹 젖어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제 파트를 부르는 손파바 본체의 현실 눈물이, 그 눈을 마주하며 눈물로 온통 얼룩져버린 썸머글의 얼굴이, "고마워" 라고 입모양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넨 뒤 포옹하는 손파바의 진심이, 너무나도 애틋하고 벅차고 완전했다. 무대 위 엘파바와 글린다 너머, 이 이야기와 인물들을 오롯이 사랑하고 아꼈던 두 배우가 온몸으로 서로를 향해 마음을 쏟아내던 마지막 포굿을 오래도록 기억하리라.

 

 

 

 

"이제는 나 중력을 벗어나

날아올라 날개를 펼칠 거야

날 막을 순 없어"

 

 

너무 사랑해서 오히려 많이 보지 못한 이 극에 작별을 고해야 한다는 것이 이제 와서 아쉽지만 후회 따윈 하지 않으리라. 엘파바와 글린다는 이미 심장의 일부가 되어 내 모든 순간에 함께 하고 있으니까. 그저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이 찬란한 무대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친애하는 오즈여, 잠시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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