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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의 바이올린
in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21.05.13 7시반
양준모 테비예, 유미 골데, KoN 피들러.
근래 세종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데, 그 과정 중에 포함된 단체 관극이었다. 워낙 고전이어서 이름만 익숙한 작품이었는데, 강의 중에 여러 차례 다뤄진 데다가 직접 특정 장면을 연기하고 노래하는 기회까지 얻으며 한층 가까워졌다. 직접 말로 내뱉어본 대사들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경험이 꽤나 각별하여 신선했다.
고전은 고전만의 가치가 분명히 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담고 있는 가치가 낡고 바래질 뿐. 고전이라 불릴만한 이 극 역시 지금의 관점에서는 진부하고 답답하며 불편한 요소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객의 심장을 울리는 부분이 잔존한다. 가족의 형태와 관계성은 달라졌지만 가족이기에 공유하는 존중과 가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와 닿는 바가 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언어와 연출이 깔끔하고 발랄하고 다정해서, 고리타분하고 가부장적인 시대상에 대한 불편함을 감내할 수 있었다. 앙상블 배우들의 군무와 동선이 음악과 어우러지며 극을 탄탄하게 구성했고, 장면장면에 감칠나게 더해지는 바이올린의 선율이 매력을 더했다. 테비예가 지어낸 꿈 장면의 화려함은 흥미를 끌어냈고, 고민스러운 속마음을 직접 배우의 입을 통해 노래하게 만드는 연출은 즐거움을 더했다. "내가 만약 부자라면(If I were a rich man)" 넘버를 맛깔나게 살려내는 양테비예의 연기가 단연 백미였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객석의 분위기가 보다 부드럽게 열리며 호응도 많아졌다.
장소를 표현하기 위한 무대 구조물의 구성품들이 동화 같기도 그림 같기도 하여 사랑스러웠다. 특히 극 전체적으로 영상을 아주 영리하게 사용한 점이 좋았는데, 2막 첫 장면 지붕 위의 피들러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동안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아나테브카의 마을과 하늘의 색감 변화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무대 위 장면 하나하나를 스냅샷으로 찍어 엽서로 만들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격변의 시대를 살아내는 개인은 시대의 변화 속에 자의로든 타의로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첫 넘버부터 전통의 중요성을 부르짖던 이 극의 마지막은 쓸쓸하고 초라한 뒷모습의 실루엣을 남긴다. 익숙하고 마땅했으나 비합리적인 전통에 의문을 갖고 저항하기 시작한 새로운 세대는, 관습을 거부하고 스스로 선택하여 삶을 변화시킨다. 세상의 거대한 흐름을 바꾸는 것만이 혁명이 아니다. 일상을 바꿔내는 것이야말로 진정 유의미하고 가치 있는 혁명이다. 그렇게 세상은 달라지고 나아가고 있노라, 믿고 싶은 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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