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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일

in TOM 2관, 2021.03.06 3시

 

 

 

 

이봉준 태일 목소리, 김국희 태일 외 목소리.

 

 

이전에 전태일기념관에서 올라왔을 때 장렬하게 티켓팅을 실패하고 못사로 남았던 극인데, 이번엔 대학로에서 올라온 덕분에 마침내 만나게 됐다. 베르나르다 알바에서 반한 김국희 배우로 꼭 보고 싶었는데 마침 그 회차에 현장 구매 할인이 풀려서 냉큼 공연장으로 향했다. 노동운동가이자 그에 앞서 한 사람의 인간이었던 청년 전태일을 어떻게 담아냈을지 무척 궁금했고, 이 극이 택한 방향성에 고개를 끄덕이고 왔다. 생각했던 방식이 아니긴 했으나, 전태일 열사의 글과 생각을 목소리로 구현하고 기록하는 근간에 그를 향한 존중과 애정이 담뿍 담겨있었다. 각오했던 것보다 쉽고 편안하게 관극 했으나, 예상했던 만큼 묵직하고 단단하게 울림을 전달받고 왔다.

 

 

기타와 키보드의 라이브 연주에 얹어내는 두 목소리의 이야기와 감정이 친숙하고 마땅하며 다정했다. 공부를 하고 싶어 하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으며 꼴찌를 하더라도 끝까지 완주하기를 택했던 소년 전태일이 현실의 부당함 앞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환하게 미소를 걸어내던 얼굴에 결연한 의지가 담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절망과 고통이 따랐던가. 법으로 정해진 마땅한 인간의 권리를 요구한 것뿐인데, 노동자들이 싸워야만 하는 대상은 너무나 많고 거대했다. 아서라, 말아라, 다치는 건 너희뿐이다, 라는 만류를 들으면서도, 거짓과 위선에 속아 좌절하면서도, 도무지 포기할 수 없는 길이자 진정한 소명. 신문값이라는 핑계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모두가 알게 해 주어서 고맙다며 어린 여공이 건넨 100원의 지폐에 담긴 그 진실한 마음의 가치가 심장을 울린다.

 

 

 

 

극 초반에 두 차례 배우들이 극 중 인물이 아니라 배우로서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부분이 있다. 전태일 열사의 원동력은 가족이었노라 설명하는 장면에서 김국희 배우가 자신의 원동력이라고 말한 이야기가 몹시 뜨겁게 다가왔다. 전작 뮤지컬 광주와 연극 헬멧을 언급하며 세월이 흘렀으나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이 시국으로 인해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배우들이 정말 많아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노라 말했다. 그리고 우선은 주어진 일에, 바로 이 공연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이다.

 

 

지금의 이 당연한 일상을 누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내던지며 피를 쏟았던가. 당장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없다는 무력함을 딛고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기에, 결국 현실은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피를 토해내며 인권을,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목소리들을 결코 외면할 수 없다. 진심을 담아 전해 받은 이야기에 뜨거워진 가슴을 끌어안고, 어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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