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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위키드송

in 예스24스테이지 3관, 2021.01.23 6시

 

 

 

 

남명렬 마쉬칸, 이재균 스티브.

 

 

오랜만의 객석은 여전히 다정하고 익숙했지만, 퐁당당으로 많이 비워진 옆자리는 허전하고 속상했다. 2015년 초연 이후로 오랜만에 다시 만난 이 극 또한 여전히 따뜻하고 사랑스러웠다. 처음으로 자둘까지 한 연극이기도 해서 이 재회가 한층 애틋하기도 했다. 막이 끝날 때마다 잠시 암전이 내리며 음악이 흐르는데, 1막 중간에 암전이 내렸다가 잠시 옅은 조명이 들어오며 아무도 없는 무대 위에 큰 창문 너머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만 크게 울리는 장면의 연출을 참 좋아했던 기억이 불현듯 피어올라 행복했다. 다만 초연 때는 창문이 비스듬한 천장에 달려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 시즌은 벽에 위치해 있더라. 초연 자첫후기. 자둘후기.

 

 

균티븐은 배우자첫이었는데, 순간적으로 확 잡아내는 감정의 몰입도가 몹시 쫀쫀했다. 부드럽게 전환되는 연기가 단정하면서도 묘한 흡입력이 있어서, 명렬마쉬칸의 깔끔하고 명징한 연기와 잘 어우러졌다. 마쉬칸이 키파를 벗겨냈는데 똑딱삔 두 개가 머리카락에 걸려 달랑거리는 게 무척 귀여웠다. 오페라를 보고 온 스티븐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소파 위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정말 좋아해서 아직도 엉티븐의 이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인데, 균티븐 역시 이 장면에서 너무나도 반짝거려서 보는 것만으로도 그 벅찬 충만감이 전염되는 느낌이었다.

 

 

 

 

 

※스포있음※

 

 

첫만남에 자둘까지 할 만큼 애정했던 작품이기에 꽤 자주 곱씹어보곤 했던 이야기다. 초연과 사뭇 다른 노선의 명렬마쉬칸은 담백하면서도 위태로운 트라우마를 보여줬다. 사회의 편견을 견디다 못해 일부러 먼저 스스로를 폄훼하게 만드는 차별적 발언을 하고, 나치 출신의 정치인이 당연히 선거에 이길 것이라고 확언하기도 한다. 깊은 내면 속의 진심은 결코 그렇지 않더라도. 영혼에 새겨진 상처는 결코 사라지지 않지만, 마쉬칸은 나름대로의 타협점을 찾아 삶을 살아낸다. 비록 그 길이 수차례의 자살시도와 진저리치며 깨어나 연도를 외치는 악몽으로 가득할지라도, 마쉬칸은 그렇게 자신의 일상을 담담히 걸어간다.

 

 

과하게 열정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유태인이면서 유태인을 비하하는 마쉬칸을, 스티븐은 오해했다. 하지만 그의 가르침과 이야기로, 마쉬칸 개인이 살아낸 동화로, 스티븐은 배우고 변화한다. 타인의 모자를 쓰고 타인을 연기하는 것에 재능이 있었던 스티븐은, 마쉬칸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자신을 마주하고 인정하기에 이른다. 처음으로 피아노를 치며 행복함을 느껴보고, 처음으로 오페라를 보고 짜릿한 희열과 기나긴 여운을 경험하며, 멀게만 느껴졌던 전쟁의 상흔을 절감하고 이해한다.

 

 

 

 

마지막 장면을 보며 여성 배우들이 펼쳐내는 이 극을 상상해봤다. 과거가 여즉 감싸고 있는 빈의 분위기와 사제 간의 관계성이 색다른 질감의 이야기을 선사하리라는 예감이 강하게 든다. 상상하고 기대하고 바라게 만드는 것, 이게 바로 공연예술이 지닌 또 하나의 매력이지. 관극이 당연해질 그날을, 여전히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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