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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오브라만차
in 샤롯데씨어터, 2021.02.25 7시반
류정한 세르반테스/돈키호테, 윤공주 알돈자, 이훈진 산초, 김대종 도지사/여관주인. 류동키 자다섯, 류공주 자셋.
이 극이 건네주는 희망의 메시지는 심장을 벅차오르게 만든다. 동시에 극 내내 반복적으로 폭력과 억압이 영혼을 지치게 만든다. 비단 2막의 그 장면뿐만이 아니라, 노새끌이들이 행하는 모든 형태의 희롱과 괴롭힘이 끔찍하고 역겹다. 그 추행을 힘겹게 밀치고 뿌리치는 알돈자의 저항이 괴롭고 힘들다. 관극을 거듭해도 무뎌지지 않는 이 불편함이 마땅하기에 더 속상하다. 주제에 담긴 가치가 중하다고 해서, 수단의 폭력성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악이 활개 치는 세상을 두고 볼 수 없는 미친 기사의 정의를 위해 약자를 학대하는 불의를 반드시 전시해야만 하는가. 벅찬 마음을 끌어안고 나오면서도 매번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 작품을,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가 없어 서글프다.
그럼에도 무대를 꽉꽉 채워주는 배우들이 참 고맙고 든든하다. 까라스코 역의 박인배 배우는 냉소적인 현실주의자로써 세르반테스와 대치하고, 신부님 역의 조성지 배우는 푼수데기 같은 첫인상부터 감화되어 변화하는 따뜻함과 다정함까지 보여준다. 믿고 보는 이발사 김호 배우는 죄수 역의 목소리마저 반갑다. 가정부 역의 김현숙 배우는 명확한 딕션으로 감칠맛 나는 추임새를 더한다. "안돼요 돼요 돼요" 하는 15년 가정부 대사가 너무 싫었는데, 이번 시즌은 "저리 갓!" 하며 발차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까라스코에게 "딱이네 딱이야" 하는 것도 좋고, 세르반테스가 만든 결말에 투덜거리는 목소리도 귀에 잘 꽂힌다. 조카 안토니아 역의 정단영 배우는 16년 짹 이후로 오랜만이어서 반갑다.
이날 극중극을 시작하기 전 류동키가 직접 쓴 가발이 살짝 비뚤어져서, 맨오브라만차 넘버 초반은 오른쪽 눈이 눈썹에 가려져서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비대칭이 돈키호테의 번뜩이는 눈빛을 더욱 강렬하게 보이도록 했으나, 산초 파트에서 앙상블들이 매무새를 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가발 위에 쓴 투구의 왼쪽 턱끈의 쇠 고리가 류동키 마이크에 계속 걸려서 소리를 내는 것까지는 정리를 못해줬더라. 그래서 넘버 내내 딱딱 하며 거슬리는 소리가 섞였고, 다음 장면에서도 이 잡음이 지속됐다. 풍차를 향해 달려들었다가 엉망이 된 류동키가 객석을 잠깐 등졌을 때, 여관주인 역의 유신 배우가 본인 왼쪽 뺨을 톡톡 치며 신호를 줬는데 류동키가 안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인 걸 보니 역시 배우님도 알고 계셨더라. 극중극에서 극으로 넘어오자마자 투구를 벗어 드는데 그마저도 가발에 걸려서 좀 헤맸다. 이후 다시 등장했을 때 투구 오른쪽에 검은색 테이프로 끈을 고정한 것 같았다.
"오직 그분만을 위해 행하며, 그분만을 품고 살겠나이다."
이렇게 소품 참사가 소소하게 있어서 집중이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짙은 감정과 선명한 노선이 다시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아니된다, 아니된다 돈키호테!" 하며 스스로를 책망한 류동키가 객석을 등지고 무대 안으로 걸어간다. 청아한 목소리로 철야기도를 올리며 정연한 걸음을 옮기는 세류반테스의 모습이, 여관에 들어설 때 한쪽 어깨를 크게 움직이며 비대칭으로 걸어 들어오던 류동키의 모습과 명확히 대비되어 더욱 극적이었다. "사내들에게는 정정당당하고" 부분부터 류동키의 목소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난 2/11 공연처럼 "그분만을 믿고 따르겠나이다" 라는 마지막 문구를 "그분만을 품고 살겠나이다" 라고 바꿔서 말했다. 오로지 자신의 레이디만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기사의 의지가 드러나는 이 디테일이 무척 취향이다. 충무아트센터로 옮겨가서도 종종 들을 수 있길 바란다.
이날 공주돈자는 닳을 대로 닳아버린 슬픔을 분노로 감춰두고 살다가, 돈키호테라는 계기를 통해 순수하고 맑은 본연을 되찾아갔다. 눈물이 가득 차올라있던 눈동자에 어느 순간 반짝임이 깃들기 시작하는 변화가 좋았다. 노새끌이들의 조롱에 순간 분함이 섞인 울상을 짓더니 "이 사람도 사내지?" 하고 짓씹듯 묻는 목소리가 너무 아팠다. 꾸깃 구기고 내던진 그 서한이 이미 너무 소중해져 버린 알돈자여서, 그들 틈새를 빠져나오는 얼굴에 아픔과 속상함이 뚝뚝 떨어졌다. 돈키호테의 언어를 궁금해하고 이해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 애틋한 만큼, 너덜 해진 채 공허하게 조소를 거는 처참한 2막이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이번 시즌은 알돈자에게 더 자주 이입을 하게 되는데, 마지막 선언을 하는 순간 눈물 흘리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거는 공주돈자를 몹시 사랑했다.
세류반테스와 류동키가 건네는 메시지가 황홀하게 아름답기에, 알돈자의 변화가 눈부시기에, 무엇보다 이 극이 전하는 가치에 깊이 공감하기에, 또다시 관극을 하러 공연장을 찾을 것이다. 책 속에 나오는 세상 인간들의 천인공노할 작태에 의분으로 가득 차게 되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 그만 머리가 텅 비어버리고 만 알론조 키하나처럼, 언젠가 나 역시 잘못 돌아가는 세상을 바로잡겠다며 기사를 자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현실주의자가 되고자 하는데, 해괴하기 짝이 없는 미치광이로 남을지 혹은 조금이라도 세상에 자비를 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 또한 이 작품의 생명력을 연장시키는 큰 힘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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