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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쪼가리 자작

in 알과핵 소극장, 2020.11.13 8시

 

 

 

 

김선권, 이경민, 장원경, 전민영, 최예경, 백효성.

 

 

추천 가득한 후기를 접하고 냉큼 시간을 내서 관극했다. 객석 입장 직전에 안경알이 똑 빠져서 흐린 시야로 보느라 약간 힘들긴 했지만, 철학적인 화두를 던지는 흡입력 있는 전개와 구성 덕분에 극에 푹 빠져들 수 있었다. 마치 마당놀이처럼 광대 분장의 이야기꾼들이 때로는 극 중 인물로서, 때로는 극의 서술자로서 입담 좋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극중극의 대사를 읊다가 문득 극의 배우 본인으로 돌아와 노골적으로 반박하고 비판하는 이의제기가 극 전체의 역설을 한층 부각한다. 이 요소들이 객석의 관객 역시 제4의 벽 너머 관찰자가 아닌, 극중극을 보며 웃고 즐거워하는 극 안의 청자로써 존재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반쪼가리 자작을 표현하기 위해 적재적소에서 인형을 사용한 연출이 이 작품의 백미였다. 포탄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의 머리와 팔과 다리의 움직임이 몹시 자연스럽고 생동감 넘쳤다. 말과 노새, 칼과 지팡이를 쥔 인형을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으로 얼굴 반쪽을 가림으로써 모든 배우가 번갈아가며 반쪼가리 자작이 되는 연출 또한 흥미진진했는데, 관객에게 그 역할을 직접 요청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으로 몰입도를 높였다. 무대 앞쪽 정중앙의 조명을 통해 무대 안쪽 검은 벽에 그림자가 생기도록 만들거나, 반투명 막 너머 실루엣을 활용한 연출 등이 잔혹동화 같은 이야기에 생명럭을 더했다.

 

 

※스포있음

 

 

  

 

"넌 비극적이고 야만적으로 돌아왔구나!"

 

 

온전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자와 스스로 온전하다고 믿는 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대한다. 확립하지 못한 주체성으로 번뇌하고, 시대의 혼란에 두려움과 흥분을 동시에 느끼며, 잔인함마저 따뜻한 시선으로 수용해버리는 질풍노도의 "청년" 메다르도 자작. 혈기에 휩싸여 포화의 정면으로 뛰어들었던 그는 반쪼가리가 되어버리고, 비난과 저주의 속삭임을 견디지 못해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고 만다.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지고 그를 기다리던 고향의 피지배층 사람들은, 반쪼가리가 된 그를 비웃고 조롱하다가 덧붙인다. 온전하지 못한 그가 안쓰러워서, 다 걱정되니까 하는 말이라고.

 

 

"아름다움과 가치와 정당성은 조각난 것들에 있다고!"

 

 

아버지마저 온전한 아들을 바라며 눈앞의 자신을 외면하자, 오른쪽만 남아 돌아온 자작은 '온전한 악'이 된다. 온전한 이들 역시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기 위해 온전한 것들을 조각내며 폭력과 공포를 앞세운다. 그와 다른 형태로 살아남은 왼쪽만 남은 자작은 선행과 베풂과 올바름만을 올곧게 추구하며 고향으로 돌아온다. 오른쪽만 남은 자작과 극단적으로 다른 왼쪽만 남은 자작을 향해 사람들은 말한다. 온전한 선이라고. 차라리 하나만 있을 때가 적응하기 쉬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오른쪽만 남은 자작과 왼쪽만 남은 자작 모두를 증오한다.

 

 

"들끓는 욕망을 자제하십시오."

"그러는 넌, 자제하고 있나?"

 

 

사랑 때문에 결국 자기 자신에게 칼을 겨누게 된 오른쪽만 남은 자작과 왼쪽만 남은 자작은 동시에 쓰러지고, 그 사랑 덕분에 다시 하나가 된다. 온전한 악과 선을 경험해봤기에 현명해진 자작은 아이도 낳고 지역도 잘 다스리며 행복해진다. 하지만 사람들이 원했던 완벽하게 공정하고 만족스러운 세상은 도래하지 않는다. 완전해지고 현명해진 자작이라 하더라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구하려들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세상을, 소수의 사람이 온전히 구원할 수 있을 리 없기에.

 

 

 

 

유쾌한 부분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오고 진지한 부분에서는 숨소리도 없이 고요한 객석을 느끼며, 새삼스레 이야기의 힘을 느꼈다. 흥미진진하고 맛깔난 이야기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언제까지나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이런 이야기들이 더 다양하게, 더 자주 올라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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