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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그네스

in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2020.11.11 3시

 

 

 

 

박해미 닥터 리빙스턴, 이수미 미리엄 원장 수녀, 이지혜 아그네스.

 

 

쉽지 않은 연극이었다. "여배우의 에쿠우스" 라는 수식어가 있던데, 에쿠우스보다 잔인하고 적나라한 현실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들었다. 여성으로서 절절히 공감하고 지독히 이해할 수밖에 없는 폭력, 흔히 접하고 있는 종교의 아집과 배척, 머리로 믿는 이성과 가슴을 짓누르는 연민의 충돌 등이 관극 내내 심경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외면하고 싶다 못해 아예 몰랐던 양 잊어버리고 싶지만, 한 번 마주한 이상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묵직한 질문이 무대를 넘어 객석으로 전이됐다.

 

 

토월극장의 커다란 무대가 별다른 소품 없이 여백의 미를 보이지만, 조명 연출을 통해 화자의 변경과 장면의 전환을 가시적으로 표현했다. 박해미 배우를 무대에서 본 건 처음인데, 풍성하고 결 좋은 금발과 딱 떨어지는 매끈한 정장 바지를 입은 채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며 명징하게 대사를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반해버렸다. 워낙 대사량이 많아 살짝 씹은 부분들이 있긴 했지만, 연기가 워낙 좋아서 거슬리지 않았다. 아그네스를 진심으로 배려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나오는 점이 특히 좋았다. 이수미 배우도 명확한 딕션으로 완전한 캐릭터를 구축했고, 이지혜 배우 역시 자칫하면 어지러워지기 쉬운 아그네스라는 인물을 군더더기 하나 없이 부드럽게 그려냈다.

 

 

 

 

※스포있음※

 

 

과학과 이성을 추구하고 신을 믿지 않는 닥터 리빙스턴과 과학이 침범하지 못할 기적을 믿는 미리엄 수녀는,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의뭉스럽게 대립한다. 두 사람의 차이는 아그네스의 아름다운 노래를 대하는 자세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리엄 수녀는 어릴 적 함께 대화하던 천사의 음성과 꼭 닮은 그 목소리를 신의 은총이라 찬양하지만, 닥터 리빙스턴은 아름답긴 해도 고작 그 정도 은총 때문에 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고통받을 필요는 없노라 부르짖는다.

 

 

"네! 주근깨 때문에 신을 버렸어요."

 

 

어린 소녀였던 닥터 리빙스턴은 친구가 트랙터에 치여 죽었는데 그 이유가 신께 기도를 하지 않아서라고 설교하는 수녀의 말을 듣고 신을 버린다. 예쁘지도 않고 주근깨도 많은 자신 또한 아침 기도를 드리지 않았는데, 죽은 건 자신이 아니라 예쁜 친구였다는 죄책감과 허망함에 휩싸인 채. 자신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주지 못한 엄마 때문에 자신 역시 엄마가 되기를 포기했고, 병원도 가지 못한 채 수녀원에서 죽어버린 동생을 잊지 못해 종교를 불신하고 미워한다. 일로써 처음 만났지만 끝내 제 아이처럼 제 동생처럼 아끼게 되어버린 아그네스 때문에, 닥터 리빙스턴은 자신 또한 피와 살과 영혼이 있는 인간이라 절규하듯 독백한다. 그리고 휘몰아치던 감정이 깊이 침잠한 얼굴로 완경 후 수년만에 다시 생리를 시작했노라 고해한다. 마치 이제는 그 역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음을 은유하듯이.

 

 

"하지만 그렇게 되어버렸죠. 구경거리요!"

 

 

아그네스는 마르고 볼품없는 벽화 속 성인들을 보고 스스로가 뚱뚱하고 못생겼다며 거식증을 앓고, 양손에 관통상을 입혀 피가 철철 흐르도록 자해하는 등 계속해서 징후들을 보였다. 순수하고 순결하다는 표현으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학대와 격리로 인해 왜곡된 생각과 감정에 갇혀버렸다고. 수녀원 안에서 아그네스는 안전하다 믿었던 미리엄 수녀는 진실을 요구하고 상처를 헤집는 닥터 프로스트에게 묻는다. 그게 정말 아그네스를 위한 일이냐고. 그 모든 징후들을 세상 밖에 내보이지 않았던 건 아그네스를 위한 일이었다고. 그래서 닥터 프로스트는 답한다. 결국 그렇게 되어버리지 않았느냐고. 신만큼 절대적이었던 엄마라는 존재에게 정신적으로 성적으로 학대 받은 아그네스가 억지로 수녀원 밖의 세상에 끄집어내져 낱낱이 파헤쳐지고 해체당하고 있지 않느냐고.

 

 

 

 

신의 실수이니 신에게 돌려보내야 한다며 제 몸 속에서 나온 갓난아기의 목에 탯줄을 감았던 아그네스. 그 모든 진실을 제 입으로 뱉어내는 그를 보며 절망하는 미리엄. 짐작했기에 더욱더 처참한 현실 앞에서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비틀대는 리빙스턴. 비극을 초래한 종교의 안이함과 이성의 잔혹함 너머에, 아이를 보듬고 이끌어야 하는 정상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사회가 존재한다. 수녀원 밖 정신병원에 보내진 아그네스가 시름시름 앓다 끝내 세상을 떠나게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이 극은 아그네스를 강간한 범인조차 정확히 특정하지 않으며 다분히 의도적으로 모든 '남성'을 지워버린다. 삭제되었으나 부재하지 않는 남성의 흔적이 비틀리고 왜곡된 여성의 삶에 잔존한다. 그리하여 여성에서 여성으로 이어지고 여성으로부터 여성까지 연결되는 이야기가 남성의 실재 없이도 온전하게 존재한다. 이 시대의 여성들은, 또다른 아그네스들은 과연 무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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