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라스트세션
in 예스24스테이지 3관, 2020.08.07 8시
남명렬 프로이트, 이석준 루이스.
실제로 만난 적은 없는 두 대가가 펼쳐내는 지적 논쟁을 만나러가지 않을 수 없었다. 신과 인간, 욕망과 역사에 대해 때로는 유려하게 때로는 치열하게 주고받는 철학의 공방이 충만한 지적희열을 선사한다. 헛점을 발견한 순간 날카롭게 파고드는 집요함과 상대의 예리함을 인정하고 수긍하는 우아함이 매끄럽게 이어지며 긴장과 안정감을 넘나든다.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해보는 실존에 관한 소재들을 지나치게 현학적이지 않은 문장들로 엮어내며 쫀쫀한 텍스트를 완성한다.
※스포있음※
실재하지 않았던 사건을 풀어내는 이 극의 시간적 배경은 1939년 9월 3일. 프로이트가 존엄사를 택하기 20일 전이자,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을 선포한 날이다. 대화 중간중간 라디오를 틀어 암울하고 절망적인 시대적 배경을 이야기에 녹여낸다. 신의 존재에 대해 논하는 고차원적인 이성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본능이 공존하는 모순을 통해 더없이 명확하게 인간성을 보여준다. 존엄사를 택했으면서 공습 경보에 덜덜 떨며 몸을 숙이고, 신이 주신 고통이 인간을 완전하게 한다면서도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균형미를 지닌 구성이 동화 같은 인상을 주고, 실재하지 않은 대화가 판타지의 요소를 지녔으나, 이 모든 대화가 전쟁이라는 극한의 현실에 꼼짝없이 묶여있다는 아이러니가 흥미롭다.
도덕률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자는 루이스의 말에 그것만은 동의할 수 없다며 자기파괴적 본능을 지닌 인간에게는 적이 꼭 필요하노라 강변하는 프로이트. 다윈의 진화론대로 인간의 육체는 진화하였으나 정신은 진화하지 못했다면서, 역사에는 언제나 히틀러 같은 미친놈이 있었노라 말한다. 루이스는 그럼에도 인간들은 살아남았다고 변론하지만, 프로이트는 "그래, 또다른 미친놈을 맞이하기 위해서!" 라며 조소한다. 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은 없다는 점에 두 지식인은 모두 동의한다.
신화와 기독교가 무엇이 다르냐는 물음에 루이스는 답한다. 그들과 달리 예수는 직접 인간과 함께 이 땅을 걸었노라고. 그 사실을 믿기를 선택한 것이라고. 인간 대신 죄를 짊어진 그에 대해 말하자, 프로이트는 "원죄! 그 오만함이란!" 하고 불같이 화를 낸다. 구강암 때문에 기분이 들쑥날쑥하다며 무례함에 대한 사과를 건네긴 하지만, 스스로 신을 자청하며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하겠노라는 그 발상에 대한 불신만큼은 확고하다.
우리 인간은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하기에 위대한 신의 뜻을 알 수 없다며 무지 뒤에 숨어버리는 유신론자의 태도 또한 비판의 대상이다. 프로이트는 일생 속에 겪어온 수많은 아픔과 지옥이 내려와 입 안 가득한 당장의 고통을 생생한 예시로 들며, 고통과 괴로움이 인간을 완전하게 한다는 루이스의 관점을 비웃는다. 유신론자 중에서도 가장 독하게 신을 부정하고 의심한 사람이라 자칭하는 루이스는 프로이트의 비판에도 어디에든 신이 존재하노라는 입장을 흔들림 없이 견지한다.
뇌에 관한 전문가인 자신이 입 속의 피 때문에 질식해가는 걸 뇌에 문제가 있는 중환자가 구해주었노라며 이보다 더한 유머가 어디있겠느냐 말하는 프로이트. 그 유머 같은 상황은 누가 만들었을까 날카롭게 질문하는 루이스. 전사한 친구의 어머니를 돌보는 루이스에게 그와의 관계를 집요하게 물으며 사람들이 말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노라 말하는 프로이트. 구강기의 욕망만 남은 프로이트와 그의 입천장 속 보철물을 유일하게 만질 수 있는 딸의 관계에 대해 물으며 맞서는 루이스. 팽팽하게 맞서는 논리의 대립이 지적유희란 무엇인가를 생생히 증명한다.
감동이라는 감정을 이성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없기에 음악을 듣지 않던 프로이트가 루이스가 떠난 뒤 라디오를 끄지 않는 마지막 장면의 구성까지 깔끔하다. 개인적으로는 톨킨과의 대화를 언급하며 성경의 진실성에 대해 역설하는 루이스의 말에 "글솜씨가 엉망이어서 성경이 진실이라는 거냐"는 프로이트의 비아냥이 가장 즐거웠다. 산발적이고 맥락이 맞지 않는 성경의 문장들에 대해, 유신론자는 진실이기 때문이라 믿고 무신론자는 거짓이기 때문이라 주장하는 간극이 매번 흥미롭다.
"딱 하나 더 미친 짓이 있지.
그렇다고 생각을 접어버리는 거!"
"우리 둘 중 하나는 분명 바보일 것이다" 라는 프로이트의 마지막 말에 그건 동의할 수 없노라고 속으로 반박했다. 신이 있든 없든, 주어진 상황에서 끝없이 고민하고 회의하고 생각하고 번뇌하는 인간은 모두 존엄하고 숭고하다. 신이 "있음"을 증명해야 하기에 힘든 유신론자와 신이 "없음"은 끝내 증명될 수 없기에 불리한 무신론자의 토론은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인간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덧. 나중에 또 읽으려고 남기는 배우 인터뷰.
'공연예술 > Other Stag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극 이퀄 (2020.10.18 2시) (0) | 2020.10.19 |
---|---|
연극 와이프 (2020.08.12 7시반) (0) | 2020.08.15 |
연극 데스트랩 (2020.06.19 8시) (0) | 2020.06.26 |
연극 렁스 (2020.05.14 8시) (2) | 2020.05.16 |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2020.02.02 2시) (0) | 2020.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