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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해피엔딩

in 예스24스테이지 2관, 2020.08.09 6시

 

 

 

 

전미도 클레어, 정문성 올리버, 성종완 제임스.

 

 

'러블리함'의 대명사 미도클레어가 돌아왔으니 만나러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초연에서 만났던 그대로 사랑스러움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미도클을 보며 두시간 내내 너무 행복했다. 일부러 문미도 회차로 맞춰갔는데, 안정감 있는 두 배우의 합이 극을 더 매끈하게 풀어냈다. 이 페어를 초연 연출로 만났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번 시즌은 스크린과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무대 구성이나 소품 배치 등 전반적인 분위기가 초연보다 디지털화 되어 있었다. 근미래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있지만, 버려진 힐퍼봇들이 모여사는 아파트에는 다소 아날로그한 감성이 더 어울린다. 오케를 무대 위쪽으로 올린 것도 집중을 분산시켰고, 올리버가 주문한 잡지가 우측 책장 높이보다 커서 불편하게 비스듬히 꽂는 점도 몹시 거슬렸다. 무대 연출은 배우의 동선과 흐름이 막힘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야하는데, 이런 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여 아쉬웠다. 자동차 연출도 초연이 더 취향이고. 두 사람의 의자와 캐리어를 붙였을 때 각각 모양이 맞아 떨어지는 소품연출은 좋았다.

 

 

 

 

스포있음

 

 

극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은 초연 리뷰로 갈음한다. (참고)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헬퍼봇들이, 장애가 있거나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자꾸 겹쳐보였다. 자꾸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올리버의 말에 "지루해서" 라고 대답하는 클레어의 얼굴이 유난히 공허하고 쓸쓸해서 더 그러했다. 지금 사회는 소수자에게 모여지낼 공간을 제공하기는커녕 기어코 배제하려 들고 더 나아가 아예 없는 것마냥 존재 자체를 지우고만 있으니, 극 중 세상이 현실보다 더 낫다는 자괴감도 들었다.

 

 

"고마워요" 라는 말을 들으면 무조건 "천만에요!" 라고 대답하는 헬퍼봇5만의 기능을 놀리며 즐거워하는 헬퍼봇6의 모습이 초연에 비해 줄어든 게 가장 아쉬웠다. 초연은 제주도로 떠나기 전 아파트 방안에서 클레어가 고맙다는 말을 올리버에게 계속 반복했고 올리버는 발끈하면서도 계속 "천만에요"를 반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서는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클레어가 "고맙다"는 말의 어미만 변경하며 재미있어하다가 독백처럼 "헬퍼봇5만 있는 기능"이라고 부가설명을 넣었다. 두 로봇의 관계성을 돈독하게 만드는 이 사랑스러운 포인트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도 아깝지 않은데, 어떤 이유로 이렇게 줄이고 삭제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클레어의 대사도 지나치게 설명조라서 극의 흐름을 깬다.

 

 

"쉿! 말하면 안 돼!"

 

 

이미 무슨 말을 할 지 알고 있었음에도, 이야기를 통해 쌓아올려온 클레어의 감정과 올리버의 마음이 절정에 닿는 이 순간 눈물이 터져버렸다. 미련이 없었기에 이대로 수명을 다해 멈춰버려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고, 슬픔을 몰랐기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알지 못했다. 깨달아버린 감정을 돌이킬 수는 없다. 아마도 클레어는 기억을 지웠겠지만, 이것만은 기억해도 된다는 두 사람의 약속을 기억하듯 화분과 낡은 엘피판을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짓는 미도클의 그 표정이 너무나도 애틋했다. 몽글몽글한 감정에 휩싸인 채 커튼콜 내내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이 극의 모든 찰나가, 클레어와 올리버의 모든 몸짓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종이컵 전화기에 얼굴을 부딪히며 꺄르르 웃던 미도클의 사랑스러움은 앞으로도 결코 잊을 수 없겠지. 미도클레어를 다시 만날 수 있어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했다. 앞으로도 이 멋진 배우를 무대에서 자주자주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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