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렁스
in 아트원씨어터, 2020.05.14 8시
김동완 남자, 이진희 여자. 뎅찌니.
처음 연극에 도전하는 오빠얌이 궁금하여 프리뷰 공연을 잡았다. 익숙한 이 날짜가 뎅옵의 뮤지컬 데뷔일임을 나중에야 깨닫고 9주년에 함께 할 수 있음에 내심 기뻤다. 관극 시작 직전 기새오빠의 결혼 소식을 접하고 약간 싱숭생숭 했지만, 몰입도 높은 2인극에 어렵지 않게 빠져들 수 있었다. 드라큘라가 아닌 작품의 관극이 거의 세 달만이었다는 점도 즐거웠다. 텍스트 많은 연극이 건네는 힘은 묵직하고, 오롯이 대사와 연기만으로 텅 빈 공간을 채워내야 하는 배우가 건네는 이야기는 단단하다.
이 극을 보게 만든 계기는 뎅옵이지만, 90분 내내 찌니여자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여자의 텍스트가 훨씬 많고 다양하며, 여자의 감정이 더 다채롭고 설득력 있다. 여자의 생각과 행동과 선택으로 전개되기에, 이 2인극의 주된 화자는 여자다. 뎅옵은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찌니는 텍스트를 완전하게 만들었다. 두 배우가 지닌 색감이 유사하고 풀어내는 질감이 비슷해서 극이 몹시 안정감 있다.
※스포있음※
편집증적으로 환경을 고민하고 옳은 행동인가 번뇌하며 정치적 올바름을 좇는 여자와 그 모습을 닮아가면서도 문득문득 따라가기 벅차하는 남자. 아이를 갖자는 한 마디를 했을 뿐인데, 때로 논쟁처럼 때로 독백처럼 보이는 "대화"가 끝없이 이어진다.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결정 앞에서 과호흡이 오는 여자와 세밀하게 파고들며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여자 때문에 숨이 막히는 남자. 호흡이라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이 신경 써서 의식해야 하는 행위로 바뀌는 순간, 일상은 고민이 된다. 자신의 선택이 완전한 목적을 지녀야한다고 믿는 여자와 이만하면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고 굳건하게 믿는 남자의 삶은 희망찬 미래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던 두 사람이었지만, 여자는 "나는 좋은 사람이었는데. 너무 사악해졌어." 라고 괴로워하고 남자는 손을 내밀며 "우리 좋은 사람이 되자." 라고 말한다. 현재형의 문장이 과거형이 되고 결국 미래형으로 이어지는 변화가 극을 관통한다.
유일한 소품인 신발 또한 유의미한 연출 효과를 준다. 극을 시작하는 두 사람은 맨발에 편한 하얀색 운동화를 신고 있다.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음악을 내려놓고 취업을 선택한 남자는 여자가 선물한 가죽 구두로 갈아신는다.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한 여자는 베이지색 플랫슈즈로 갈아신는다. 행복한 얼굴로 작고 하얀 아기 신발을 꺼냈지만, 유산이라는 절망 앞에 두 사람은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맨발이 된다. 어긋나버린 관계 앞에 잠시 다른 방향을 바라보던 두 사람은 가벼운 슬립온을 신고 다시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 연출은 신발을 갈아신는 행위로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을 표현했고, 벗어둔 신발들을 객석 쪽 무대 가장자리에 일렬로 놓음으로써 인생이라는 길을 드러냈다.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이 극의 여자와 남자는 완벽하지 않다. "좋은 사람"이라는 추상적인 명제에 속할 만큼 고민이 많고, 그 안에 속하지 못할 만큼 실수를 저지른다. 그럼에도 존재를 곱씹으며 고통에 침잠하는 여자 앞에서 이전의 일상이 그립노라 괴로워하는 남자의 말은 너무 폭력적이었다. 가까운 이야기이기에 곱씹을수록 이런저런 상념이 뻗어나가는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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