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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in 샤롯데씨어터, 2020.05.09 7시
류정한 드라큘라, 린지 미나, 손준호 반헬싱, 이예은 루시, 진태화 조나단, 김도현 렌필드. 류큘 자열넷, 류린 자셋.
오랜만에 중블 중앙의 좋은 자리이기도 했고, 전반적으로 몰입도가 나쁘지 않아서 꽤 재미있게 관극했다. 간택송 직전 예은루시 신발이 한짝 벗겨져서 "그래서 행운의 왕자님은 누구야?" 라고 미나가 묻는 내내 허리를 숙이고 신발을 다시 신는 귀여운 참사가 있었다. 황급히 신다가 덧신이 튕겨져나와서 덩그러니 무대에 남겨졌는데, 넘버를 부르며 정모퀸시가 자연스럽게 회수해갔다. 트레인 시퀀스에서도 마이크 참사가 있었다. 눈물이 들어갔는지 먹먹한 소리가 나던 린지미나의 마이크가 결국 완전히 나가버려서 트시 넘버는 류큘의 솔로곡이 되고 말았다. 넘버 후 대사까지도 육성으로 진행을 해야 했는데, 손헬싱이 린미나 가까이에 서거나 그가 침대에 앉자 허리를 숙이는 등, 본인의 마이크를 최대한 가까이 대주는 기지를 발휘했다. 라이브로 진행되는 만큼, 가벼운 실수를 빠르게 수습하는 배우들의 대처능력이 매번 반갑고 고맙다. 부음감님이어서 박자는 아주 만족스러웠는데, 몇몇 부분에서 악기 소리가 이상한 음정으로 나와서 아쉬웠다.
스포있음
비가 와서 그런지 류큘의 목청이 더욱 쩌렁쩌렁했다. 프블 초반은 대레전이었던 0508 공연과 비슷하게 좋을 정도였다. 뱀슬에게 먹이감을 던져준 뒤, 곧 만끽할 만찬을 상상하듯 황홀하고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양팔을 벌리는 디테일은 볼 때마다 좋다. "나를 두려워하는" 하고 속삭이듯 말한 뒤 "하하하-" 하고 낮고 묵직하게 웃음소리를 섞는 디테일이 0508과 0509 공연에 모두 있었다. 웃음소리 하나로 세상 모든 인간들을 업신여기는 류큘의 성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를 알고 있는" 까지 이어가다가 "여기 이 성을 떠나" 하며 왼팔을 촥 펼치는 디테일도 지난주처럼 유지됐다.
인간을 뛰어넘는 인외의 존재감을 잔뜩 내뿜는 류큘은 강인하고 자신만만하다. 루시의 부름에 침실로 찾아왔을 때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고개를 왼쪽으로 까딱 하는 디테일이 0508과 0509 모두 있었는데, 이날 그 미소가 더 오랫동안 짙게 유지됐다. 마스터송맆이 압권이었는데, 평소에는 시작부터 굵고 풍성하게 불렀던 부분을 이날 완전히 다르게 불렀다. "오랜 시간 기다린 주인님" 부터 시작되는 앞부분은 조롱하듯 비아냥을 가득 담은 얇은 목소리로 부르다가, "새로운 삶이 시작되리" 하는 마지막 소절만 평소처럼 위압적으로 불렀다. 초반에는 도현렌필드와 포개지던 목소리가 끝에서 완전히 분리가 되는 순간, 압도적인 류큘의 존재감이 한층 명확하게 부각됐다.
미나를 향한 감정 역시 붙잡히지 않는 상대에 대한 애틋함보다는 붙잡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노여움이 더 맹렬하다. 러빙유가 끝난 뒤, 0508 공연에서는 손을 파들대며 입가를 가리고 괴로워했지만, 이날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전개에 눈빛을 이글거리며 온몸으로 분노를 뿜어낸다. 잇츠오버가 끝난 뒤에도 0508 공연에서는 미나의 행동을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눈을 가늘게 뜨지만, 이날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나를 빤히 바라보다 휙 나가버렸다. 더롱거 역시 회한과 후회, 자기 성찰이라는 커다란 맥락은 동일하지만, 감정의 결과 색감이 달랐다. 0508 공연에서는 혼란스러운 미나의 감정에 동화되어 함께 흔들리는 느낌이었다면, 이날은 스스로 믿던 감정과 신념에 회의를 느끼고 괴로워했다. 관 쪽으로 내려올 때, 거의 굴러 떨어지듯 밟는 계단을 손으로 살짝 짚기까지 하며 휘청일 정도였다.
그러므로 "난 미나를 사랑해" 라는 말의 색감과 미나의 손에 직접 칼을 쥐여주는 행동의 이유가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0508 공연에서는 눈앞에 펼쳐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제 유일한 빛을 침잠시킬 수 없기에, 처절함을 다정함 뒤에 숨기고 힘겹게 웃어 보이며 빛을 떠나보냈다. 반면 이날은 400년 동안 사랑해온 빛이 잘못된 길을 찾아왔음을 통감하여 그 빛을 되돌려 보내는 인상을 받았다. 빛과 함께 할 수 없음에 스스로의 존재 의의를 잃어버린 0508 공연과 다르게, 이날은 죽음보다 괴로운 빛이 없는 삶을 견딜 수 없기에 "자유를 줘요" 라고 부탁한다. 스스로 내린 저주에 갇혀있던 0508 공연에서는 미나의 손으로 비로소 맞이하는 최후가 진정한 구원이었고, 끝없이 신과 운명을 저주하며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렸던 0509 공연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다시 이해하고 마주하는 것이 스스로 선택한 구원이었다.
기록용으로 디텔 간략하게. 0508 공연에서는 오른쪽 앞머리를 덮은 반깐이었는데, 이날은 앞머리를 전부 멋지게 넘겼다. 위압적인 이날 노선과도 아주 잘 어울렸고, 커튼콜도 너무 멋있었다. 0505 공연의 헤어스타일은 또 달랐는데, 커튼콜 주간이라고 일부러 전부 다르게 스타일링한 것 같았다. 센스 최고b 한밤중의 위트비베이에서 0508 공연처럼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하고 나서 "아," 하고 속으로 말을 고른 다음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하고 이어갔다. 이날은 실제로 기차를 탈선시켰다기보다는 회심의 농담으로 준비해온 것 같았고, 연구 좀 하셔야겠다는 린미나의 말에 "알겠습니다. 열심히! 연구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She에서 왼손으로 하늘을 향해 바치는 모션을 오랜만에 했고, "나의 모든 것을 바쳤잖아" 하며 제 가슴을 탁 쳤다. "대답해봐!" 하고 강하게 명령조로 얘기했고, 신 따위는 필요 없다며 왼쪽 십자가를 세게 팽개쳤다. "악마에게" 부분은 계속 높여 불러서 좋다. 평소에는 "팔아서라도아아악" 하고 한 호흡에 쭉 이어 비명을 토하는데, 이날은 "팔아서라도" 하고 끊은 뒤 오른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아아아아" 하고 고음의 비명을 쏟아냈다. 신음 같은 헐떡임이 섞이며 날 저주한다는 처절함이 한층 더해진다. 약혼자에게 가봐야 한다는 미나의 말에 순간 숨을 멈춘 류큘은 얼굴을 툭 떨구며 "당신은 이미 결혼했잖아.." 하고 단숨에 이어 말한다. "당신의 자리를 찾아 돌아와요" 하며 안내하듯 제 옆을 가리키는 오른손과 조나단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괴로워하며 귀를 막는 디테일은 매번 있다. 조나단의 곁에 선 미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떨구고 오른손으로 심장께를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워한다. 0508은 부케를 받지 않았고, 0509는 부케를 받고 그대로 들고나갔다.
이제 류큘이 고작 열 번밖에 남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꿈 같은 류큘 덕분에 이 힘겨운 시기를 무사히, 행복하게 버텨낼 수 있어 더없이 감사하다. 다양하게 박제된 류큘의 커튼콜 사진을 다시 하나씩 뜯어보며 다음 공연을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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