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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in 샤롯데씨어터, 2020.05.08 8시

 

 

 

 

류정한 드라큘라, 조정은 미나, 임정모 반헬싱, 이충주 조나단, 김수연 루시, 김도현 렌필드. 류큘 자열셋, 류선녀 자다섯.

 

 

감히 단언컨대 최고의 Fresh Blood 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특히 회춘 이후의 모든 찰나가 완벽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장면이 전환되었으나, 붉은 코트를 휘날리며 씩 웃고 앞머리를 쓸어넘기는 류큘이, 오블을 손으로 가리키며 자신만만하게 입가에 걸어내는 미소의 잔상이, "살리라" 하며 쩌렁쩌렁하게 공간을 압도하는 공기가 여전히 무대 위에 남아 생생하게 되풀이되고 있었다. 0429 프블도 너무너무 좋았지만, 이날에 비할 바가 아니다. 랖앺랖, 트시, 잇츠오버 등 강렬한 넘버들은 평소처럼 훌륭했으나, 프블이 대레전이어서 오히려 평소보다 감흥이 덜할 정도였다. 인터미션 내내 프블을 곱씹으며 두번 세번 울컥했다.

 

 

 

 

스포있음

 

 

Solitary Man도 정말 좋아서 이미 각오를 하긴 했었다. 강인하고 묵직하고 위압적인 목소리에 짙게 깔려있는 오만한 귀족의 자태. 날카롭고 강렬한 류큘은, 오직 엘리자벳사 앞에서만 어리고 유약한 면모를 내보인다. "한 젊은 왕자"로 돌아간 것처럼. 러빙유에서 "대답해봐!" 하고 강하게 명령조로 묻고서는 "신 따위는 필요없"다고 단언한다. 신이 내린 저주가 아니라 스스로 내린 저주에 휩싸여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는 고통에 짓눌린다. 온몸으로 이끌리듯 류큘의 양 팔목께를 붙들었다가 뿌리치듯 탁 떨쳐낸 선녀미나가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약속해달라 말하자, 류큘은 동공을 흔들며 그런 약속 할 수 없노라 가슴을 짓이긴다. "당신은 이미.." 하고 고개를 젖히며 미어지는 심장에 아파하다가 "결혼했잖아.."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툭 떨군다. 여리고 지친 류큘의 짙은 체념은 강인한 젊음을 부르짖던 직전의 모습과 크게 대비되며 극단적인 감정의 낙폭을 내보인다.

 

 

평소보다 곱슬거리는 앞머리가 오른쪽 눈을 가릴 정도로 길어서, 왼편과 오른편 얼굴이 완전히 다른 인상을 줬다. 앞머리를 올린 왼얼굴은 당장이라도 런던을 지배할 듯 선명하고 날카롭게 잘생겼고, 앞머리를 내린 오른쪽 얼굴은 사랑을 잃어 고통스러운 소년미로 넘실댔다. 미나의 결혼에 무릎 꿇은 채 아아악, 토해내는 비명도 분노보다 절망으로 일렁였다. 덜덜 떨리는 오른손으로 입가를 가리는 류큘의 아득한 괴로움이 여실히 느껴졌다. 러빙유 전후의 절대적인 모습이 강한 만큼, 러빙유의 애절하고 처연한 소년미가 한층 부각됐다.

 

 

한밤중의 위트비베이에서 "그리고 당신 또한 날 잘 알고 있죠" 하며 성큼성큼 다가가던 류큘은 다가오지 말라고 선을 긋는 미나의 말에 멈칫한다. 난 당신을 해치지 않노라 말하며 "아.." 하고 순간적으로 머리 속에서 할 말을 찾다가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난 아무 것도 하지 않아요" 하고 부드럽게 설득한다. 이 약속 때문에 류큘은 잇츠오버가 끝난 뒤 자신을 막아서는 미나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가 원하지 않기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자랑스럽게 내보이듯 기차를 모조리 탈선시켰노라 말하면서 미나를 돌아보던 류큘은, 굳어버린 미나의 얼굴을 발견하고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 까지 말하다가 어미를 흐려버린다. 혼이 나는 어린 아이처럼 고개를 푹 떨구고 "농담입니다..."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냈다. 위대한 사랑은 책에나 있는 거라는 미나의 말에 벤치 뒤쪽으로 걸어가 곁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코트 뒷자락을 펼쳐 깔고 앉지 않는 섬세함과 잠시 제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듯 손등을 위로 하는 작은 손동작의 우아함이 매번 매력적이다. "자," 라는 입모양을 하면서 이야기에 초대하듯 혹은 춤을 권하듯, 손바닥을 위로 하며 부드럽게 오른손을 내미는 이날 디테일이 더해져서 더 좋았다.

 

 

 

 

딮인닼에서 세차게 흔들리는 미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에, 류큘은 번뇌한다. 더롱거. 멈칫할 정도로 청량하게 시작되는 첫 소절과 "알았는데" 하며 깊숙이 땅을 파고드는 저음의 차이가 명확하여 아름답다. 중반부는 흔들리는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여리게 부르다가, 클라이막스는 풍성하고 화려하게 온 공간을 감싸내듯 위압한다. 계단 몇 개를 내려온 뒤 "그대 없다면 내 세상 멈추네" 하며 오른손만 하늘을 향해 뻗어내는 류큘의 감정이 온 세상을 일렁이게 만든다. 굴러 떨어지듯 나머지 계단을 내려오며 "미나," 하고 중얼거린 그는 고통스럽고 허망한 표정으로 관 바닥에 머리를 기댄다.

 

 

러빙유의 서사가 고스란히 러빙유맆으로 이어지고, 이는 피날레를 완성시킨다. "나의 맘의 빛 태양이 아니라 그대 눈빛"이라는 미나의 말에 제 눈을 꾹 감아버리는 류큘. 400년 동안 당신을 사랑해왔고 "당신은 내 삶의 유일한 빛이야" 라며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절절함을 쏟아낸다. 당신의 순수한 영혼을 파괴할 것 같아 "너무 두려워요" 라며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인다.

 

 

안돼, 싫어, 하고 절망하는 미나에게 애써 웃어주는 다정함과 "자유를 줘요" 하며 양팔을 벌리는 허망함, "밤을 허락해요" 하며 따뜻하게 웃어주는 숭고함까지.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감히 사랑이라 명명할 수 있단 말인가. 미나의 손등에 깊이 키스한 류큘은 몰아치는 감정에 허리를 세우고 고개를 젖히며 고통스러워 하지만, 이내 칼을 꼭 붙잡고 스스로에게 찔러 넣는다. 반헬싱의 말처럼 "영혼 없는 괴물"이 아닌, "사랑만을 위해 사랑한" 더없이 인간적인 존재로써.

 

 

러빙유와 플돈미의 가사들이 유난히 심장에 와서 박힌 날이었다. 헤어날 수 없는 달콤한 유혹 같은 류큘 덕분에, 짜릿한 희열과 녹진한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삼연에 돌아와주지 않으셨다면 이 기쁨을 전혀 모르고 살았으리라는 아찔함마저 느껴질 정도다. 재연 시라노에 이어 이번 드큘에서도 커튼콜 촬영 주간이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빨간 코트를 펄럭이는 빨간 렌즈의 류큘을 이곳저곳에서 마주할 때마다 벅차오르는 카타르시스를 막을 길이 없다. 덕간적으로 너무너무 잘생기고 멋있고 예쁘잖아요ㅜㅜ 이대로 총막도 커튼콜 허용이 되면 정말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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