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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in 샤롯데씨어터, 2020.03.18 3시
류정한 드라큘라, 임혜영 미나, 손준호 반헬싱, 이예은 루시, 진태화 조나단, 김도현 렌필드. 류큘 자다섯, 네 번째 류임페어 자넷. 류정한 배우님 101번째 관극:)
갑작스럽게 생긴 최애페어의 회차에 결국 반차까지 내고 다시 샤롯데를 찾았다. 류큘을 처음 마주한 자극으로 혼미했던 첫공을 제외하면, 네 번의 관극 중 가장 흥미진진하게 몰입했다. 이전 관극에서는 2막이 1막보다 훨씬 취향이었는데, 이날은 1막이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흠뻑 빠져들었다. 게다가 처음으로 부음감이었는데, 배우에게 맞춰주는 오케의 소중함을 새삼스레 절감했다. She 넘버 박자 이렇게 맞출 수 있잖아! 피날레에서 류큘이 랩 안해도 되잖아!!! 도현렌필드 넘버 시작할 때 호흡 기다려주고 반주 시작 가능하잖아!!! 배우 뿐만 아니라 지휘자 스케쥴도 공개해주면 좋겠다.
류임이 주고받는 감정선 자체는 0313 공연이 훨씬 맹렬했지만, 전반적인 호흡과 밀도는 이날이 더 쫀쫀했다. 극에 오롯이 빠져들어 여러 인물들의 입장에서 다각도로 이야기를 바라보는 재미가 있었다. 앞선 네 번의 관극은 무대 오른편에 앉았는데 이날은 무대 왼편에 처음 앉아본 것도 신선함을 더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류큘의 표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고, 미나의 디테일이나 원캐 배우들의 표정도 다양하게 뜯어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중블 왼쪽의 단점은 시덕션 침대 위 류큘의 표정과 엔딩장면 관 안쪽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뿐이었다. 피날레의 류큘 표정이 보이지 않으니 결말의 여운이 덜할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중블 2열 중앙에서조차 마지막 장면은 코끝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관을 비스듬하게 배치한 연출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 커튼콜 마지막도 당연히 볼 수 없었다.
스포있음
초반 늙큘의 목소리에 문득문득 날카로운 젊은 톤이 새어나왔다. 조나단에게 면도를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자," 하는 탄성을 넣는 등, 대사 톤이나 호흡이 미묘하게 달랐다. 프블은 역대 최고로 좋았다. 무대를 넘어 객석까지 일렁이는 어마어마한 위압감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고, 유난히도 붉게 빛나는 강렬한 눈빛은 눈조차 깜빡일 수 없게 만들었다. 조나단의 피를 마시고 회춘한 뒤 확연하게 돌변하는 젊고 섹시한 목소리를 너무나 사랑한다. 고급스럽고 부드러우며 명징한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으며 어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위트비베이에서 영원한 삶을 거부하는 미나의 팔을 붙들고 버럭 하는 류큘의 표정을 이날 처음 봤는데, 눈썹 위에서부터 미간까지 이어지는 분노와 번뜩이는 눈빛이 엄청났다. 0313 공연에서는 이것이 네 선택의 결과라는 얼굴로 루시를 대신 물고 도망치듯 걸어나가다가 문쪽에서 미나를 다시 쳐다보며 입가를 소매로 닦았다. 이날은 화가 난 상태 그대로 루시를 물고서는 바로 입가를 닦으며 미나와 눈을 맞췄다. 오른쪽으로 퇴장할 때 펄럭이는 코트 끝자락이 몹시 우아하여 매번 설레는 장면이다.
She. "신이시여," 하면서 하늘을 삿대질한 것과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되냐는 물음에 "미나, 당신과 함께." 라며 이름을 부른 것은 이날 처음이었다. 러빙유 중간쯤 기차역에 선 미나를 붙잡으려 다가가며 "미나," 하고 이름을 불렀다. 넘버가 끝나고 무릎을 꿇은 채 미어지는 감정을 뚝뚝 떨구며 왼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디테일도 이날 처음 봤다. Invitation 에서 루시의 방으로 들어와 입꼬리를 살짝 말아올리며 거부할 수 없는 아우라로 손을 내밀던 표정과 랖앺랖 "끝없는 파멸," 하면서 박자에 딱 맞게 양팔을 옆으로 촥 펼치는 동작이 너무 멋있었다.
비록 시덕션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잇츠오버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각도의 다채로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반헬싱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미나의 오른쪽 어깨 너머로 휙 빼는 얼굴, 무릎 꿇은 채 미나를 조심스레 눕히는 손길, 앉은 자세로 넘버를 시작하고 몸의 무게중심을 낮게 두며 안정감 있게 침대 위에 똑바로 서는 자세, 휙 몸을 던져 뛰어내리는 착지까지. 풍성한 음색으로 공간을 사로잡는 트시에서의 표정도 명확하게 보였고, 더롱거 마지막 즈음에 몸에 힘이 쫙 빠진듯 비척대며 계단을 내려오는 것도 제대로 보여서 확 몰입이 됐다. 반헬싱의 말 하나하나에 흔들리는 동공과 파르르 떨리며 섬세히 패이는 안면근육도 생생히 지켜볼 수 있었다. 미나를 두 차례 끌어안으며 짓는 복합스런 표정을 똑똑히 지켜보며 결말로 치닫는 류큘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미나의 말에 "당신의 진심을 거부하지 말아요" 라고 하기 전 "제발," 이라는 대사가 이전과 다르게 부디, 라는 절절함이 담긴 톤이었다. 이어 왼쪽 벽 영상이 나오며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떠날게요," 라고 이어져야 하는데, 꽤 긴 정적이 흘렀다. 대사 까먹으신 줄.. 윙즈 후반부에는 문 너머 오른편에 서서 대기하는 류큘 실루엣이 언뜻 보인다. 미나가 창문을 확 열어젖히면 오른쪽 문을 친히 잡아서 여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다. 회전무대가 이리저리 돌아가기 때문에 무대 안쪽 배우들의 동선을 구경할 수 있어 한층 흥미진진하다. She. 외투를 벗어 회상씬 엘리자벳사에게 덮어주는 장면에서, 지난주는 제대로 못 펼치고 어깨부분만 간신히 덮었는데 이날은 완벽하게 덮었다. 그래서 임종 직전 엘리자벳사가 왼손을 덜덜 떨며 류큘 얼굴께로 가져가는 디테일을 못했다.
"그대 위해 어떤 벌도 달게 받겠어"
이날 류임 페어는 이 가사가 정확히 부합했다. 400년 동안 엘리자벳사만을 기다려온 류큘과 진심 앞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선택을 한 임미나의 떨리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연하다. 서로를 향했지만 어긋나버린 운명으로 맞닥뜨리고 만 비극. 인간이었으며 인간으로써 남길 바랐던 인간의 선택. 소중하게 양손을 끌어안으며 칼을 쥐여주고 다정하게 미소를 그리며 그 칼을 함께 박아넣는 잔인한 행동이 처절하게 눈부셨다. 각자의 벌을 받고만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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