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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in 샤롯데씨어터, 2020.03.13 8시

 

 

 

 

류정한 드라큘라, 임혜영 루시, 손준호 반헬싱, 김수연 루시, 진태화 조나단, 김도현 렌필드, 이하 원캐. 류임페어 세 번째 공연이자 자셋. 류큘 자넷. 류정한 배우님 공연 100번째 관극!

 

 

류정한 배우님을 첫 번째로 만났던 <팬텀>에서의 페어가 류임이었는데, 일백 번째로 만나는 <드라큘라>에서도 운명처럼 류임 페어를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가능하면 이 페어를 전관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 정도로 이날 감정과 노선이 너무 좋아서 더 행복하기도 했다. 피날레 장면에서 폭발하는 감정선이 참 좋아서 커튼콜까지 여운이 길었다.

 

 

스포있음

 

 

운명적인 사랑을 믿지 않았던 임미나는 She 에서 류큘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닫는다. 바로 자신이 엘리자벳사이며, 그와 운명적인 사랑을 나눴음을. 기도를 끝낸 엘리자벳사가 드라큘라를 향해 달려가는 그 타이밍에, 임미나 역시 당장에라도 그를 안을 듯 똑같이 달려가려다가 순간적으로 멈칫한다. 엘리자벳사에게 완전히 동화된 임미나는 엘리자벳사로서의 감정을 고스란히 일깨웠고, 드라큘라를 향한 사랑을 확실히 인지해버린다. 당장에라도 그를 끌어안고 싶지만, 눈앞의 현실을 감히 내칠 수 없는 임미나는 고통스럽게 그를 외면한다. 스스로도 주체하기 힘든 감정에 휘둘리며 괴로워하지만, 영혼을 잃고 자기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워하고 망설인다. 렌필드와의 대화에서 이 감정이 명확히 드러났다.

 

 

임미나는 이미 드라큘라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반헬싱에게 뚜렷한 벽을 친다. 렌필드와 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잭이 허락하지 않자, 저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원하는 바는 이뤄야겠다는 눈빛으로 반헬싱을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부탁드려요 교수님," 이라 청한다. 이미 반헬싱과 명확하게 거리를 두던 임미나는 Train Sequence 직전부터 그를 향한 적대감을 숨기지 못한다. "제가 교수님 생각을 모르는 편이 더 좋겠네요," 라는 말에서 냉기가 뚝뚝 떨어졌다. Deep In The Darkest Night 에서 러빙유맆을 부르는 드라큘라의 목소리에 시선을 떼지 못하던 임미나는 출정을 약속하는 자신의 촛불을 끄지 않는다. 드라큘라와 엘리자벳사의 초상화를 마주하며 임미나는 선명하게 깨닫는다. 자신의 빛은 "태양이 아니라 그대 눈빛" 이었음을. 영원히 빛을 잃는다해도, 영원히 그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아무 상관 없다고. 비로소 선연히 깨닫게 된 운명에 자신을 내던졌기에, 드라큘라가 스스로 선택한 그의 죽음 앞에서 처절하게 무너진다.

 

 

극 중에서 드라큘라 성의 초상화는 두 점이 나온다. 첫 번째는 응접실에 누구나 볼 수 있게 걸려있는 엘리자벳사의 단독 초상화다. 두 번째는 드라큘라 관 옆에 천으로 가려진 채 비스듬히 놓여있는 드라큘라와 엘리자벳사의 초상화다. 피날레 장면에서 미나의 깨달음을 위한 그림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행복을 침대 맡에 항상 두고 있음에도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있던 드라큘라의 고독을 짐작할 수 있는 그림이기도 했다. 더 이상 거울에 비치지 않는 제 모습을 그림으로라도 차마 마주하지 못하는 드라큘라의 고통까지 가늠해볼 수 있는 연출이었다.

 

 

 

 

류큘은 "원한다면" 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환영합니다. 원한다면 들어오시죠." 라는 첫 대사, 위트비베이에서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라며 미나를 안심시키는 말, 플돈미 전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떠날게요," "하지만 진심으로 날 원한다면 그 때 날 불러줘요," 라며 사라지는 목소리까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듯 보이지만, 상대는 거부하거나 거역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드라큘라다. 인간이 스스로 선택을 내리도록 함으로써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인간에게 전가한다. 마음을 사로잡아 매혹시키는 것은 힘으로 강제하는 것보다 더 교묘하고 압도적인 지배고, 이러한 류큘의 말과 행동은 계속해서 미나를 붙든다. 러빙유에서 "이제야 진실을 알게 됐는데 지금의 삶을 선택하겠다구요?" 라는 절박한 물음은 미나에게 영혼이 원하는 바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끝내 미나는 피날레에서 "이건 나의 선택이에요" 라며 드라큘라에게 애원하기에 이른다.

 

 

엘리자벳사는 당연히 자신과 함께 해야한다고 믿고 그를 계속 붙들던 류큘은, 자신의 행동이 정말 '사랑'인 것인지 문득 회의한다. 상대의 영혼을 빼앗는 것이 사랑인가. 400년이 넘도록 유일했기에 제 사랑은 어딘가 뒤틀려버렸음을 깨닫고, 잃어버렸던 인간으로서의 무언가를 다시 맞닥뜨린다. 막을 틈도 없이 줄리아의 심장을 찔러버린 반헬싱을 보며 "이런 일을 바란 게 아니.." 라며 말을 채 끝내지 못했다. 게다가 이전 공연들에서는 부인하듯 뒷걸음질 쳤는데, 이날은 반헬싱을 향해 조금씩 다가갔다.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정말 모르기에, 그래서 꼭 알아야겠다는 본능처럼.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한 류큘은, 모든 걸 내던지며 그대에게 "영원히 몸과 마음을 맡"기겠노라 외치는 임미나의 눈빛을 보며 마침내 깨닫는다. 그를 자신과 같은 삶으로 끌어내리는 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동시에 자신의 고통을 끝낼 수 있는 건 오직 사랑 뿐이라는 것을. "나를 사랑한다면 자유를 줘요" 라는 잔인한 부탁은, 자신이 미나를 사랑하듯 미나 역시 자신을 사랑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구원을 달라며 애달프게 짓는 미소, 칼에 찔린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입가, 끝내 마주한 자유에 마지막까지 형형한 그 눈빛.

 

 

The Mist 직전 장면. 류큘이 루시를 물지 않고 망설이고 있는데, 갑자기 "미나~" 하고 부르는 임미나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름 잘못 부르는 실수는 가끔 나오기 때문에 꾹 웃음을 참았는데, 이어지는 "제 이름을 어떻게 아시죠?" 하는 미나 대사 때문에 이번엔 숨까지 참아야했다ㅋㅋ 좀전에 본인 이름 너무 크게 부르셨어요ㅋㅋ 수연루시가 던진 부케가 너무 멀리 떨어지니까 류큘은 아예 잡을 생각도 안했다. 대신 그대로 서서 흉포한 눈빛으로 노려보다가, 퇴장하면서 소대 안으로 부케를 뻥 차버렸다. 류큘 랖앺랖 마지막 "우리 영혼 구원도 저주도 못해" 라는 가사를 앞쪽이랑 섞어서 "죽은 영혼 구원도 저주도 못해" 라고 개사해버렸고. 잇츠오버 중간에 다시 등장할 때 커튼이랑 맨날 싸우는데, 이날은 아예 얼굴에 휘감기다시피 해서 순간 빵 터졌다. 다른 등장 장면들처럼 뒤에서 바람을 좀 세게 불어주면 잘 헤치고 나올 수 있을텐데! 가장 멋있어야 할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백작님 체면 구기지 않게 잘 좀 부탁 드립니다.

 

 

피날레에서 "이런 삶 이런 인생," 하면서 관을 가리키는 류큘 디테일이 0311 공연부터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염력으로 관을 다시 들어올리는 행위이자, 관으로 표상되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삶을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더라. 시덕션으로 다시 하나가 되었다고 믿었는데 잇츠오버에서 미나가 반헬싱을 감싸자, 분노로 이글거리며 "미나!!!!!!" 하고 외치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허망한 눈으로 말뚝을 내던진다. 디테일의 색감도 노선에 따라 달라지고, 대사톤과 호흡도 공연마다 다르게 표현되니 잦은 관극에도 지루할 틈 없이 흥미진진하다.

 

 

 

 

She 넘버 도입도 못 맞추고 중후반 박자도 계속 어긋나는 오케를, 하마터면 저주할 뻔했다. 박자가 너무 이상해서 촛대를 내치고 단상에 올라가는 동작의 타이밍까지 안 맞았고,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악마에게," 를 낮게 부르고 "팔아서라도-" 는 원래대로 높게 부르는 등 변주를 해야만 했다. 배우에게 맞춰줄 생각이 없는 지휘자가 대체 왜 있어야 하는거죠? 넘버의 마지막까지도 박자 제대로 안맞춰주는 걸 듣고 있자니 분노를 넘어 어이가 없었다. 미나 솔로 넘버는 아예 미나가 오케에 맞춰주는 게 보여서 짜증났고, 피날레는 정말이지 얹을 말이 없다. 2주 동안 4번 관극했는데 오케가 단 한 번도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냐구요. 하아. 

 

 

3차 관극 때 반헬싱 대사에 대해 불호를 남겼었는데, 이날 손헬싱은 지도를 보며 "분명 이 지점을 지나가고 있어," 라는 대사를 하더라. 드라큘라 성에서 미나는 어디 있냐는 조나단의 물음에, 탤헬싱은 "안전하게 마차에서 기다리고 있네," 라고 했던 것 같은데 손헬싱은 "여기가 안전한지 확인할 수 없어서 마차에서 기다리라고 했네," 라는 식으로 답했다. 배우마다 대사 디테일이 확 다르더라. 손헬싱 대사 몇 번 씹은 거 외에는 이날 정말 좋았다. 도현렌필드도 류큘 첫공 때 만났던 것만큼 목이 좋아서 행복했고, 수연루시도 지난주보다 좋아졌다.

 

 

커튼콜 첫 등장하면서 씩 웃으시는 류배우님 덕분에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다. 페어 둘공 때 커튼콜 순서 헷갈렸던 류큘을 기억하는 임미나가 친절하게 지금 손을 잡아야한다고 알려줘서 류큘이 빵 터졌고. 커튼콜마저 달려버리는 오케 때문에 류큘은 평소보다 약간 빠르게 몸을 돌려 관으로 돌아갔다. 씩 웃으며 객석을 향해 쌍따봉을 날린 류큘이, 팔짱을 끼고 관벽에 기대며 장난스럽게 웃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비명처럼 환호를 질렀다. 100회 관극을 자축하며 편지와 선물도 무사히 전해드릴 수 있어 완벽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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