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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in 샤롯데씨어터, 2020.03.07 7시

 

 

 

 

류정한 드라큘라, 임혜영 미나, 손준호 반헬싱, 진태화 조나단, 김수연 루시, 김도형 렌필드, 이하 원캐. 삼연 류큘 자둘.

 

 

첫공의 긴장감은 온데간데 없는 능숙함에, 심지어는 초반 노선까지 다르게 가져오신 류큘의 둘공을 보며 다시 절감했다. 언제나 감사하며, 언제나 순종하며,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오랜시간 기다린 류큘을 마주하는 모든 순간이 찬란하고 벅차고 짜릿했다. 시각적, 청각적 자극이 장면마다 색감이 다른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이 자극이 마치 마약과도 같아서, 커튼콜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벌써 류큘이 보고 싶 지경에 이르렀다. 기간이 길고 회차가 많음이 이토록 감사하고 든든할 수가 없다. 아직 표는 더 구해야하긴 하지만. 삼랑켄 회전 돌 때 그랬던 것처럼, 기적 같은 류큘의 한 회차 한 회차를 영혼에 꾹꾹 눌러담아야지.

 

 

미나와 랜필드 말고는 더블캐를 모두 만났으니 간단하게 노선 비교. 태을반헬싱은 강한 분노를 세게 내뿜는다면, 손헬싱은 화를 속에 꾹꾹 눌러담는다. 태을반헬싱은 범상치 않은 아우라에 행동이 크고 강했으며, 손헬싱은 이글거리는 눈빛과 랜필드를 속일 때의 비열한 목소리톤이 잘 어울렸다. 충나단은 처음부터 드라큘라 백작에 대한 의심과 적대심이 강하고, 뱀슬의 유혹에 자연스럽고 당연한듯 넘어가며, 미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에 대한 분노를 자기자신을 향해 돌린다. 반면 진나단은 순진무구하여 의심보다는 불안함이 강했고, 뱀슬의 유혹도 정신을 거의 놓은 채 휩쓸리며, 미나는 자신이 지키겠다는 반헬싱의 말에 나약하게 동의하는 유약한 지식인의 모습이 강했다. 예은루시의 흘러넘치던 발랄함은 드라큘라의 유혹을 기점으로 강렬한 섹슈얼 텐션으로 변화했고, 수연루시의 순진함은 커다란 눈 가득 번뜩이는 광기로 돌변했다. 더블캐들의 노선이 다르고 장단이 분명해서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어려운 넘버들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던 도형랜필드는 광기의 완급조절이 능숙하여 보기 편했다. 

 

 

 

 

※스포있음※

 

 

임미나는 꾀꼬리 같은 음색도 좋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혼란스러운 감정을 유려하게 풀어내는 2막 If I Had Wings 가 아주 짜릿했다. Train Sequence 에서 반헬싱을 향해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미묘한 적대감과 단호한 냉랭함이 그의 노선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무엇보다 엔딩씬의 맹렬하고 절박한 절망이 너무나도 좋았다. Please Don't Make Me Love You 리프라이즈에서 몸을 내던지듯 관을 끌어안으며 "신이시여 그가 가엾지 않나요 / 오직 사랑만을 원한 그를 용서해요" 라고 고통스러워하고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리는 그 감정이 절절했다. 결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 미나는, 드라큘라의 심장을 찌른 바로 그 칼을 자신의 심장에 찔러넣고 그를 따라갈 것 같았다. 전반적으로 노선도 감정도 극호인데,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2막 첫장면 루시의 죽음 후 드라큘라를 향해 비명처럼 절규하는 목소리가 너무 강하기만 해서 미나의 괴로움에 공명할 수가 없었다. 친구를 그토록 가혹하고 잔인하게 잃어버린 아픔은 알겠는데, 톤이 쨍하고 감정이 과다해서 몰입이 잘 안됐다.

 

 

류큘. 첫공에서는 지치고 낡아버린 늙은 드라큘라가 미나를 만난 뒤로 점차 생에 대한 욕망을 되살렸다면, 둘공에서는 허망한 나날들 중 허기와 갈증을 느껴버린 완고하고 오만한 늙은 드라큘라가 미나를 다시 만나고 점점 강력하게 제 것을 갈구했다. 극 초반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면이 강했던 첫공의 류큘은, 러빙유에서 미나에게 버림받은 뒤 자신을 침실로 이끈 루시에게 손을 내밀며 입꼬리를 말아올린 그 순간부터 점진적으로 각성했다. 반면 둘공의 류큘은 이미 고집스럽고 위압적이었기 때문에, 본래의 오만함을 자연스럽고 확연하게 흩뿌리고 다녔다. 위트비베이 정원에서 영원한 삶을 거부하는 미나를 이해할 수 없었던 류큘은, 첫공에서는 홧김에 둘공에서는 그 선택의 댓가라는 듯 루시를 물어버린다. 러빙유에서 결혼식으로 넘어가는 장면에서, 미나를 향해 시선을 떼지 않은채 아아아악, 절규하는 디테일은 둘공에 처음 있었다. 앙상블이 대신 받은 부케를 거칠게 빼앗아 세게 내팽개치고, 반헬싱을 죽이지 못하게 막는 미나의 행동에 노여움을 토해내며 말뚝을 내던지는 분노가 첫공보다 둘공이 훨씬 맹렬하고 뜨거웠다. It's Over 도 첫공보다 둘공이 더 강하고 매끄럽고 섹시하고 형형했다.

 

 

새로운 세상을 펼쳐내고 영원한 삶을 부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드라큘라는, 자신의 성으로 돌아와 The Longer I Live 를 부른다. 이제서야 찾아온 의심. "왜 이제야 자신이 없는지 / 진실이 뭔지 흐려져 / 그대 빛에 내 어둠 사라질까" 흔들리는 믿음, 몰려오는 회한과 외로움. 무대 안쪽 비탈을 오르며 류큘은 풍성한 음색 가득 고통을 얹는다. "영원한 삶 혼자라면 의미 있나 / 마음의 답 분명한데" 류큘의 짙은 고독과 어둠은, 줄리아의 심장을 찌른 반헬싱의 절망을 바로 곁에서 목격함으로써 극명한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줄리아의 시체를 안고 절규하는 반헬싱을 보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이런 일을 원한 게 아니었어" 라고 말하는 건 첫공에 없었고 둘공에서만 들었다. "영원히 그대와 / 죽음이 없는 삶 / 죽음이 없는 사랑 / 이별이 없는 사랑 / 영원한 하룻밤" 을 꿈꾸었으나, 그것이 자신이 사랑하는 미나를 어떻게 망가뜨릴지 비로소 깨닫는 그 순간의 흔들리는 눈빛. "차가운 암흑 속에 저주 받은 내 인생 / 남의 피를 탐하고 그늘 속의 영혼 / 이런 삶 이런 인생 죽음보다 괴로워" 라고 고해하는 절망. 끝내 그는 가장 잔혹한 결말을 미나의 손에 맡긴다. "부탁해요 제발 / 밤을 허락해요" 라며 부드럽게 그의 손을 이끌어 관 안으로 들어서는 류큘.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시작된 영원한 삶은, 사랑하는 이의 손으로 영원한 안식을 맞이한다.

 

 

 

 

이 마지막 장면의 류큘 표정이 몹시 중요한데, 관이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돌아가 있어서 중앙에 앉았는데도 관 안이 보이지가 않아서 아쉬웠다. 마지막 씬과 시덕션, 기차씬 등이 오른쪽에서 진행되지만, 러빙유나 트씨, 더롱거 등의 장면은 왼쪽이 훨씬 좋다. 무대가 높고 배우 동선이 객석을 옆지는 경우가 많아서 앞자리는 어디든 등짝미가 심한데, 류큘의 섬세한 표정 때문에 앞자리를 포기할 수가 없다. 왼오 번갈아가며 앉을 수밖에 없을 듯.

 

 

생각나는 디테일 몇 개만. 기차역에서 되도 않는 농담을 한 뒤 "언제 웃어봤는지 기억도 잘 안나요," 하는 대사를 둘공에서 빼먹었다. 러빙유에서 "전 결혼할 사람이 있어요!" 라는 미나의 말에, 첫공에서는 "당신은!" 하고 부른 뒤 심장을 짓이기는 고통을 느끼며 "이미 결혼했잖아.." 하고 절박하게 말했다. 둘공에서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가 "당신은 이미 결혼했잖아" 라고 속삭이듯 울먹거렸다. 미나를 향해 무릎을 꿇은 채 흐느끼는 류큘의 어깨로 세상이 다 무너진 듯한 처연한 슬픔이 흘러내린다. 조나단의 목소리가 시작되는 시점에 류큘은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괴로워한다. 침실에서 루시를 물 때 이빨이 보이도록 입술을 말며 입을 크게 벌리는 류큘 얼굴이 너무 좋다. 시덕션에서 사람들이 들이닥쳐서 드라큘라의 목을 물었던 미나가 몸을 일으키면, 여운과 분노 등 복잡한 감정으로 물든 류큘의 새하얀 얼굴이 새하얗게 빛나는데 정말 아름답다. 시덕션은 장면 자체가 너무 매혹적이고 섹시하고 달콤하고 팽팽해서 말로 형용이 잘 되지 않는다. "눈을 떠요, 내 사랑" 이라는 미나의 목소리에 관 안의 류큘이 깨어나는데, 첫공에서는 퀸시의 손만 탁 잡았고 둘공에서는 그 상태에서 상반신을 살짝 일으키며 휙 내던졌다. 마지막에 관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첫공 때 휘청거렸던 때문인지 둘공에서는 옷자락을 한손으로 잡고 관 안으로 들어섰다.

 

 

커튼콜에서 관에서 등장한 류큘이 쿵, 하고 아래로 뛰어내리니 양옆에 선 배우들이 폴짝 뛰어오르는 모션을 취했다. 초연 때 항상 이랬다고 들었었는데, 첫공은 하지 않았고 둘공에서는 배우들끼리 합을 맞춘 것 같았다. 류큘만 몰랐던지 살짝 당황한 얼굴을 하며 인사했는데, 다들 가운데로 모이는 시점에 혼자 또 꾸벅 인사를 한 번 더 하셔서 임미나가 빵 터지고 류큘은 민망하게 웃었다. 타이밍을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흔드는 커튼콜 류배우님이 너무 귀여우셔서 행복했다. 모두 퇴장하고 류큘만 관 안으로 들어가는데, 손키스를 첫공둘공 다 해주셔서 좋았다. 초연 커튼콜 영상을 보고 관짝이 류큘과 밀당을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삼연 첫공과 둘공 모두 암전이 될 때까지 아예 닫히질 않더라ㅋㅋ 너무나도 훌륭한 본공에 사랑스러운 커튼콜까지 완벽했다. 류선녀 첫공을 보지 못하여 그저 아쉽고 류큘이 벌써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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