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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in 샤롯데씨어터, 2020.03.05 8시
류정한 드라큘라, 임혜영 미나, 강태을 반헬싱, 이충주 조나단, 이예은 루시, 김도현 렌필드, 이하 원캐. 삼연 류큘 첫공이자 류큘 인생 자첫!
드디어 류큘을 만났다. 5년 전 파리 오페라극장의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처음으로 류배우님을 만난 이후 줄곧 갈망해왔던 예전 필모들 중, 류빅터에 이어 류큘까지 만나게 되어 너무나 영광이고 행복했다. 풍성하고 고급스러운 저음이 돋보이는 Solitary Man 부터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고, 수백번을 들은 Fresh Blood 의 도입부에서 비로소 실감이 났다. 세상에, 이거 현실이구나. 오랫동안 상상하고 고대해왔던 바로 그 작품을, 바로 그 캐릭터를, 바로 그 류큘을, 정말로 눈앞에서 만나고 있구나. 블퀘의 가장 높은 곳에서 류빅터와 처음으로 만났을 때와는 또다른 기분이었다. 프랑켄은 다른 배우로 재연을 이미 봤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기대하고 상상해온 류빅터를 직접 마주하는 카타르시스에 휩싸여 짜릿했다. 반면 드큘은 극 자체도 자첫이었기 때문에 막연하게 선망해온 류큘을 실제로 만났다는 감격에 사로잡혀 아찔했다.
각별한 페어인 류임으로 자첫을 할 수 있어서 더욱 반가웠다. 처음 류배우님을 만난 극이 바로 팬텀이었고, 당시의 크리스틴이 임혜영 배우였다. 서로 엇갈리며 이뤄지지 못했던 에릭과 크리스틴의 사랑이 이 무대에서도 다른 색감이지만 비슷한 결로써 펼쳐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남달랐다. 게다가 She 에서 "날 저주해!!!" 라고 부르짖으며 무너지는 류배우님이라니. 비극맆에서 엉엉 울던 류에릭이 떠오르면서, 신과 운명에게 간절히 빌고 절망하고 저항하다가 끝내 스스로에게 그 저주의 화살을 돌리는 류배우님 특유의 "인간적인" 모습을 다시 만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인간이었던 '왕자님'과 인간으로서의 무언가를 잃어버린 '드라큘라 백작'의 차이가 명확했는데, 회차를 거듭하며 추가될 디테일들이 그 차이를 얼마나 더 극적이고 매력적으로 만들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장면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드라큘라 백작으로서의 변화도 상당히 재미있었는데, 이 부분은 자둘 후에 정리해야지.
모든 장면마다 자극이 너무 강해서 혼미할 정도였다. 메이크업이나 의상 등의 시각적인 요소부터 모든 넘버와 대사톤, 목소리, 호흡 등 모든 청각적인 요소까지 다채롭고 황홀했다. 400년이라는 세월 동안 고요히 침잠하면서 지치고 낡아버렸던 자가 위압적이고 매혹적인 지배자로서의 모습을 되찾는 과정은 드라큘라 백작의 치명적인 매력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흔하고 특별한 것 없는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는 류큘의 목소리와 강렬한 감정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진실된 사랑 이야기" 가 되고, 유치하고 직설적인 대사와 연출은 류큘의 눈빛과 처참하게 흔들리는 믿음을 통해 "잃어버린 무언가" 를 뚜렷한 실체로 만든다. 모든 개연성이 류큘을 통해 시작되고 완성된다. 동일한 이야기를 다른 노선으로 풀어낼 류큘의 모든 회차가 벌써부터 레전공을 약속한다.
류배우님이 첫공은 매번 긴장하신다는 걸 알지만, 이날처럼 긴장하신 건 처음 봐서 신기했다. 소소하게 실수들이 있었지만 극을 해칠 만큼 중대한 건 없었고, 자첫인 사람들은 모르고 넘어갔을 만한 것도 많았다. 프블에서 후드 벗겨진 거, 미나 대사가 하나 남았는데 본인 대사로 넘어갈 뻔한 거, 랖앤랖 가사 틀린 거, 부케 못 받은 거, 엔딩 장면에서 관 들어갈 때 옷자락 밟아서 휘청한 거, 그리고 나중에 들었는데 러빙유맆?에서 노래 안한 거. 본인이 가사 틀렸으면서 당황한 예은루시를 목청으로 누르고 눈빛으로 무언의 압박을 주던 랖앤랖 가사 반복 실수가 가장 재미있었다. 이런 자잘한 실수는 앞으로의 공연에서는 당연히 없을 테니까, 첫공만의 특별한 참사라고 생각한다. 자리가 오블 앞쪽 통로여서 무대 외적인 것이 많이 보였는데, 프블에서 가면을 벗고 회춘을 준비하는 번잡스러운 손동작이라거나 트레인시퀀스 장면을 위해 무대 옆쪽에서 관이 이동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동선은 대충 파악했으니 자둘에서는 더 흥미롭게 관극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전무대 연출이 너무 훌륭해서 넋을 잃고 봤다. 공감각 뛰어난 사람이 만든 무대라는 게 여실히 느껴져서 장면이 바뀌고 공간이 변화할 때마다 짜릿했다. 무대 위쪽으로 아치형 벽면 등 다양한 무대장치가 보이는 것도 재미있어서, 앞으로 관극할 때 장면 변환 부분을 집중해서 볼 생각이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트레인시퀀스의 플라잉관은 생각보다 더 무서워보였다. 안전 또 안전하게 장면을 만들어주길 무대팀에 간곡히 부탁 드리는 바이다. 이외에도 조명이나 소품 등 사람 손을 거쳐 타이밍을 맞춰야하는 연출이 많았는데, 정확한 타이밍을 위해 조명팀 등도 끝까지 집중해주실 바란다. 음향은 전반적으로 답답해서, 강하게 부르는 넘버가 아니면 볼륨이 너무 작았다. 그리고 오케. 원곡이나 초재연 넘버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가볍고 빠르게 달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중후하고 묵직한 극의 분위기가 오케 때문에 중간중간 붕 뜨는 느낌이어서 아쉬웠다. 반복되는 리프라이즈에 얹히는 가사들과 그 순간의 류큘 눈빛이 곱씹을수록 마음을 아리게 한다.
러빙유. "그대를 처음 본 순간 모든 게 변해 버렸어 / 그 이름만 속삭여도 내 심장은 떨려" 라는 류큘의 목소리를 들으며 류에릭을 처음 만났던 그날을 떠올렸다. "그대를 처음 본 순간 숨조차 쉴 수 없었어 / 그 이름만 속삭여도 내 심장은 떨려" 라는 류큘의 절절한 고백에 벼락 같은 덕통사고의 강렬한 감정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음이, 마음껏 사랑하고 양껏 행복해할 수 있음이, 너무나 감사하고 벅차고 기쁘다. 그토록 간절히 바래왔던 류큘을 만날 수 있어 영광이다. 6월초, 입덕 5주년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원한다면 들어오시죠" 라는 목소리에 이끌려 온 마음을 다 바칠 예정이다. 류큘로 돌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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