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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in 유니플렉스 1관, 2019.11.07 8시
김주원 제이드, 박영수 유진, 마이클리 오스카. 이하 원캐. 페어막.
총체극. 비전공자에게는 다소 생경한 장르명을 앞세운 이 극은, 다양한 분야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한 예술가들의 참여 소식으로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요소가 어우러질 근간이 다름 아닌 오스카 와일드의 대표작이라는 점도 기대치를 높였다. 원작이 담아낸 유미주의를 사랑하고 탐미와 찬미를 동경하는 사람으로서, 이 작품이 부디 훌륭하길 바랐다. 진심으로. 그러나 평면적인 이야기는 태만했고, 독보적인 지점이 없는 연출은 안일했으며, 무엇보다 극을 관통하는 철학의 부재가 실망스러웠다. 집착과 찬양과 절망과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이 극적으로 표현되어야 하건만, 크게 새롭지 않은 조명과 너무 익숙한 무대 연출과 매끄럽지 못한 장면 구성은 이를 뒷받침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쉴 틈 없이 극의 흐름을 진행시킨 음악만이 그 자체로 완벽한 일부로써 존재했을 뿐, 극 전체를 완성시키지 못했다. 정잴의 음악은 음 하나, 박자 하나, 멜로디 하나 흠잡을 곳이 전혀 없었으나, 공연은 모든 부분들이 각자의 역할을 다하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키는 종합예술이다. 여타의 연극이나 뮤지컬과 다를 바 없는 연출과 방식을 답습했으면서, 굳이 총체극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이 극이 끝내는 오만하다 느껴졌다.
제이드의 고통을 옅게나마 가늠할 수 있고, 유진의 절망을 지독하게 경험해 보았으며, 오스카의 예술관에 일부 동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극의 안이함이 불쾌했고 단순함이 불편했다. 우울과 광기를 넘나드는 양극성 장애를 표현하는 방식은 폭력적이었고,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한 설정과 이를 대사로 드러내는 방법은 촌스러웠으며, 아름답지 않은 건 가치가 없다는 가치관을 묘사하는 연출과 결말은 다소 위험했다. 유명인사들의 이름과 고급 브랜드를 외국어로 줄줄줄 나열하는 과장스런 어휘, 노골적이고 직설적이어서 유치하기까지 한 대사, 바로 다음 장면이 어떠할지 빤히 보이는 동선과 전개, 평면적인 캐릭터를 평면적으로 다루는 구성,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예술적 수단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결국 언어라는 기존의 수단으로 회귀해버린 연출. 고급져 보이는 것들을 그저 덧입히고 덧붙이고 덧이어 만들어낸 꼴라쥬는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이지나 연출가의 작품에는 취향의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매번 존재했다. 그래서 이 극이 더욱 아쉽다. 유진과 제이드를 젠더 프리로 캐스팅한 이유가 노림수의 일종으로만 느껴졌고, 배우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면서도 개개인의 역량 발산을 제약하는 틀은 답답했다. "고통과 광기 없이 예술은 탄생하지 않아" 라는 오스카의 가치관은 절대적인 참이 결코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흐름에 다소 뒤떨어진 이 극단적인 관념을 설파하는 연출이 거만하고 위압적이었다. 예술가 개인의 삶과 영원히 기억될 위대한 예술은 때때로 상충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비극뿐만이 아니라 행복과 기쁨 안에서도 위대한 아름다움은 충분히 탄생할 수 있다. 극 중에서 유진이 담아낸 제이드의 초상화가 명확한 실체 없이 표현된 것처럼, 극의 제목이자 본질이어야 하는 원작의 탐미주의 역시 정확한 이해 없이 추상적으로 소모되었다. 화려한 겉치장이 철학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데도, 이 극은 고집스럽게 제 주장만 앞세우며 한껏 고고한 척을 하고 있더라. 깊은 고민이 필요한 수많은 질문들이 객석까지 닿지 못하고 무대 위에서 산산이 흩어져버렸다.
예술가는 자신의 생각을 작품으로 말하는 사람이고, 관객은 자신의 관점으로 작품을 듣는 사람이다. 신선함을 위시하면서도 익숙함에 안주한다면, 굳이 그 언어를 챙겨 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틀을 깨는 혁신은 과연 누구에게 절실해야 하는가. 앞으로도 수많은 극을 마주할 관객으로서 자주 자문한다. 그들의 언어를 그만 듣지 않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를. 무대 아래의 상념만큼, 무대 위와 뒤편에서도 스스로를 직시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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