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메리제인

in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2019.12.14 6시

 

 

 

 

이봉련 메리제인, 예수정 루디&텐케이, 정재은 셰리&닥터토로스, 이은 브라이안&차야, 이경미 아멜리아&캣.

 

 

오롯이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연극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개막 전부터 기대가 컸다. 엄마와 함께 관극을 하고 싶어서 날짜를 앞당겼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영상 송출 문제가 생겨서 아쉬웠다. 1막에서 2막으로 넘어가는 장면 전환 부분과 마지막 장면에 분명 영상연출이 있었으리라는 공백이 고스란히 인지됐다. 중요한 전환점들을 아우르는 여운이 극대화되지 못하여 마무리가 다소 밋밋하게 다가왔다. 극적 효과를 선사하는 연출의 힘에 대해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경험이긴 했으나, 완성된 극을 보지 못한 안타까움이 남는다. 일부 연출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이 담담한 극에 담긴 여성들의 삶은 모자람 없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다양한 옷을 입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선택한, 모든 여성들의 인생 하나하나가 각자의 우주를 펼쳐낸다. 저마다의 삶을 살아내는 여성들의 모습이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일상이기에, 굳이 이 극을 '여성극' 이라 분리하여 명명해야 하는 현실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담백하게 풀어내는 삶들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갈수록 더 많아지리라는 희망을 안고, 불편한 의자를 감내하며 120분 내내 몰입했다.

 

 

※스포있음※

 

 

메리제인의 집에서 병원으로 공간이 전환되는 부분에서 아이의 장난감을 하나씩 만지는 메리제인의 모습이 영상으로 나왔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관극 이후에 들었다. 소품을 무대에서 치우고 꺼내오는 소리만 잔잔한 정적을 가르는 그 순간이 지난하다 느껴졌기에, 병원 커튼이 촤르륵 닫히는 소리와 함께 꿈에서 깨듯 소소한 행복이 깨지는 해당 연출의 부재가 몹시 아쉬웠다. 2막 마지막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메리제인은 밀려오는 고통이 참을 수 없이 극심해지는 순간 오른쪽 손바닥으로 눈을 잠시 꾹 누르다가, 손을 떼고 손바닥을 곧이어 손을 뒤집어 손바닥을 지긋이 응시하는 습관이 있다. 때때로 편두통의 시작점이 되는 환시가 보인다며 새카만 배경 속 반짝임을 묘사하던 그는, 그 빛들이 마치 눈송이의 프렉탈 같다고 표현한다. 객석 위 허공을 향해 멀리 시선을 두는 메리제인의 두 눈 너머로, 밝게 빛나는 프렉탈들이 무겁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뒤덮듯 선연하게 쏟아진다. 이 장면 역시 영상 연출이 있었더라면 몰입과 여운이 훨씬 짙었으리라.

 

 

아픈 아이를 둔 부모는 말한다. 아프다고 말해줄 수만 있어도 감사하겠다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고 괴로움을 일상처럼 끌어안은 채 주어진 현실을 직시하다가도, 문득문득 거대한 벽 앞에서 극도의 한계를 느끼며 절망한다. 불만이 있는 아이의 표정을 흉내낸다거나, 미간 주름에 보톡스를 맞으라는 언니의 말에 "이거 만들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하며 웃는다거나, 독실을 받을 수 있었던 행운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를 건넨다거나,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증상을 지닌 아이에게 발레복을 입힌 이야기를 하며, 상처가 남을 수밖에 없는 아픈 순간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며 위로한다. 그러나 날카롭게 일상을 관통하며 찔러오는 현실은 모래성 같은 미소를 와르르 무너뜨린다. 그때마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고통의 감정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듯 조명의 조도가 순간적으로 낮아졌다가, 서서히 다시 높아지며 일상으로 돌아온다.

 

 

지긋지긋한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최대한 회피하다가도, 끝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순간이 되면 사위가 조용해진다는 차야의 말에 메리제인의 표정이 흔들린다. 그래, 이게 진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그의 말에 메리제인의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져내린다. 부정하고 밀어내려던 이 현실이 '진짜' 라면, 나의 희망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신을 향한 믿음이, 혹은 그 절대신을 향한 원망이, 이 절망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느냐 묻는 메리제인의 두서 없는 질문은 끝내 방향을 잃는다. 아이의 상태가 나빠질수록, 병원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기자신을 위한 여유가 바닥날수록, 메리제인은 흔들리는 촛불처럼 순간적으로 넋을 잃는다.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고, 명료하던 문장들이 사라진다. 친구들과 주고받던 대화 속에 재치 있게 남겼던 여백들이, 가늠할 길 없는 새하얀 백지처럼 텅 빈 공허로 남는다.

 

 

 

 

마지막 수술을 기다리는 메리제인의 곁을 지키러 온 텐케이는 승려가 된지 7개월이 되었다고 말한다. 메리제인은 아이를 25주 하고도 며칠 후에 낳았다고 말한다. 약 7개월에 가까운 시간. 수비학에서는 7을 내면의 성장으로 완성된 숫자이면서 그것이 외연으로 성장하기에는 아직 미숙한 숫자라고 말한다.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할 수 있으나, 완전히 성장하지 못한 존재들을 표현하기 위한 상징처럼 느껴져서 인상적이었다.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시계를 벽에 걸어놓고 관극 내내 런닝타임을 가늠할 수 있게 한 연출도 신선했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속에서 언어적, 비언어적인 요소들이 적극적으로 사용된 연출은, 극 안의 모든 이들이 마치 내 주변인인양 가깝게 느껴질 수 있도록 도왔다.

 

 

일상의 위대함은 멀리 있지 않음을 잘 안다. 저마다에게 주어진 삶을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평범하고 가장 어려운 일이기에, 각자의 인생을 살아내는 우리가 바로 '일상의 영웅' 이다. 루디의, 셰리의, 브라이안의, 아멜리아의, 닥터 토로스의, 차야의, 캣의, 텐케이의, 그리고 메리제인의 이야기는 평범하기에 위대하다. 여성이 스스로 입에 올리는 인생들이 훨씬 다양하고 다채로워지길 기대하며, 이 극 메리제인 역시 많은 사랑을 받길 바란다.

 

공지사항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