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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윅

in 드림아트센터 1관, 2019.05.05 2시

 

 

 

테이 루드윅, 조환지 청년, 권민제 마리, 차성제 발터.

 

 

루드비히 반 베토벤을 다루는 창작뮤지컬의 제목이 영어식 발음인 '루드윅' 이라는 점이 의아했다. 관극을 하고 나니, 창작진의 의도가 이해됐다. 시놉시스에 명시된 것처럼, 이 극은 천재 음악가 베토벤의 인간적인 면모에 보다 집중한다. 편지라는 매개체로 구축한 액자식 구성, 유사한 상황에서 반복되는 리프라이즈, 배우들의 1인 다역 등의 연출로 베토벤의 일생을 점층적으로 부드럽게 풀어낸다. 그 과정에서 루드윅이라는 명명도 설명된다. 과거들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없는 강박이자 죄책감이고, 더 나아가 집착이자 의무감이며, 종국에는 변화와 수용에 이르는, 인간 베토벤의 이름이다.

 

 

"오늘을 바꾼 나의 미래는 분명 달라져 있을 거야"

 


모든 인간이 그렇듯, 베토벤은 삶을 살아내며 변화한다. 그가 마주한 고통과 환희와 절망과 희열은 개별적으로 발생하고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감정과 경험이 누적되어 총체적으로 그가 된다. 극 중의 인물들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만난 베토벤에게 영향을 받고, 역으로 그에게 영향을 미친다. 특히 마리라는 캐릭터가 중요하다. 건축가를 꿈꾸는 이 여성은, 사회가 규정한 한계를 거부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베토벤의 음악이었노라 말한다. 빵집 다락방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마리는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스포있음※

 

 

기록용으로 기억에 남는 연출 몇 개만. 벌벌 떠는 어린 베토벤과 그의 아버지처럼 폭언을 쏟아내던 테드윅. 삽시간에 역할이 반전되어 어린 시절의 그때처럼 겁에 질려 건반을 내리치는 테드윅과 그에게 고함을 지르며 위협적으로 구는 아역. 하나의 장면에서 시점과 위치를 바꾸는 것으로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구성. 젊은 베토벤의 귀가 멀어가고 있음을 표현하는 먹먹한 음향, 양쪽에서 날카롭게 평행선으로 귀를 향해 내리꽂히는 조명. 피아노를 치던 테드윅이 몸을 살짝 일으켜 아래에서 비추는 조명으로 얼굴 전체에 그림자를 만들며 "강렬함은 너무 커서 들리지 않고 / 섬세함은 너무 작아 들리지 않네" 하고 선고하듯 위압적으로 노래하는 장면. 중첩되는 대사와 가사, 위치와 동작. 피아니스트가 극 안에 녹아들며 자연스럽게 피아노에 앉아 반주를 이어나갈 수 있게 하는 동선. "아이는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라는 것" 임을 인정한 베토벤에게, "미래의 음악은 이미 어디선가 자라나고 있었" 다는 것까지 깨닫게 해주는 인물의 삽입.

 

 

 

 

잘 다듬어진 연출들이 기대 이상으로 깔끔했지만, 결말 부분이 다소 길고 과해서 오히려 여백이나 여운을 깨뜨렸다. 진부하거나 지루하지는 않았는데, 정돈되어야 할 부분이 있어서인지 몰입도가 아주 높지 않았다. 중간중간 유머가 적당히 가미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우울하거나 힘들지는 않다. 배우들의 터져나오는 감정과 강렬한 표현이 중요하고, 장면들 간의 교집합과 반복이 많아서 여러 번 관극하면 더 재미있을 극이다. 자둘을 하면 작품이 전체적으로 미묘하게 난삽한 이유를 확신할 수 있을 듯하지만, 이번 시즌에 재관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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