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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아더

in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2019.03.20 8시

 

 

 

 

한지상 아더, 간미연 귀네비어, 장지후 랜슬롯, 박혜나 모르간, 김찬호 멜레아강. 이하 원캐.

 

 

입덕 이후 4년 동안 꽤나 많은 공연들을 만나며 매번 후기를 남기고 있지만, 이렇게 말문이 턱턱 막히는 관극은 처음이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는 지경이라서, 말 그대로 언어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마저 든다. 당황이나 난감 혹은 분노 같은 분명한 색감의 감정이 아닌, 이 극의 조명 색감처럼 형용이 불가능한 기분에 휩싸여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갈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이 혼란스러운 생각들을 굳이 정돈하려 들자니 시작부터 막막하고 아득하다. 극을 여러 번 곱씹어봐도 더이상의 관극은 없을 듯하니, 스포 없이 간략하게 자첫자막 후기를 남겨야겠다. 

 

 

 

 

중세 이후로 수없이 변주되어 온 아더왕 전설의 극히 일부만을 가져와 중독성 강한 넘버를 끼얹은 프랑스 뮤지컬을 한국에 논레플리카로 들여왔다. 이 문장 하나로 충분히 예상 가능한 혼미함은, 심지어 알앤디라는 제작사의 손을 거치며 한층 더 이해불가한 형태로 재탄생 되었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서사와 개연성, 참고 넘어가기 힘들 정도로 유치하고 단순한 대사와 가사, 넓은 무대를 쫀쫀하게 채우지 못하는 반복적이고 밋밋한 무대 연출, 맥락도 의미도 어울리지 않게 과잉 삽입된 안무까지, 이토록 총체적으로 곤란한 종합예술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부족한 서사를 열연을 통해 억지로 채워나가는 배우들의 모습에서 뮤지컬 <나폴레옹>이 떠올랐고,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만큼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전개를 보며 뮤지컬 <페스트>가 연상됐다. 이 극이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무슨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은지, 어떠한 생각과 고민을 유도하고 싶은지, 전혀 모르겠다.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한국까지 건너온 아더왕 이야기는, 각색을 넘어 난해한 재창작의 결과물로 변질되었다.

 

 

무대 좌우를 가로지르는 커다랗고 긴 포물선을 기준으로, 위쪽의 배경은 다양하고 입체감 있는 영상으로 구성하고 아래쪽은 넓고 거대하여 웅장한 인상을 주는 계단을 배치했다. 단 위의 포물선 끝이나 계단 중간중간 생기는 구멍들이 등퇴장을 비롯한 동선들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검은 바닥으로 막힌 오케피트를 특정 장면에서 모르간의 공간으로 내어줌으로써 인물들의 대립을 부각시키고 무대가 객석과 한층 가까워지도록 했다. 드림캐쳐 같은 구조물과 일렁이는 질감의 천, 독특한 형태의 구조물과 그걸 엮어내는 표현방식 등에서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위압감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원탁과 갯수조차 맞지 않는 9개의 동그란 조명, 무엇보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조명으로도 숨길 수 없는 빈약하고 허전한 무대의 여백이 극의 임팩트를 몹시 떨어뜨렸다. 무대의 사이즈에 맞지 않는 구조물이 위에서 내려오는 순간 연극 <아마데우스>의 공허한 무대가 생각났다. 뒤쪽 무대 전환 및 장면 변경을 위하여 매우 잦은 빈도로 닫히는 무대 앞쪽 반투명한 막은 뮤지컬 <웃는 남자>를 저절로 떠올리게 만들었다. 포물선의 무대 구조물, 얼기설기 엮은 형태로 특색을 더하는 무대 연출, 사용되는 천의 질감, 무엇보다 막 앞의 좁은 공간에서 특별한 세트 없이 메인 넘버를 부르는 배우만으로 장면을 채우게 하는 연출 등이 너무나 유사했다. 아무래도 웃남과 이 극 모두에 참여하신 오필영 무대디자이너의 특색 같았다. 입이 떡 벌어지는 굉장하고 아름다운 무대 연출도 있는 반면, 굳이 대극장에서 표현될 필요가 없어 보이는 공백도 있어서 아쉽다. 무대 뒤쪽의 사정이야 일개 관객으로써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막 앞에서 보여지는 장면이 지나치게 많으니 충무의 커다란 무대가 궁색하게만 느껴졌다. 이런 규모라면 홍아센 정도가 적합했으리란 생각이 관극 내내 들었다.

 

 

 

 

무대 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장면 연출도 이런저런 작품들에서 이것저것을 가져온 짜깁기 같았다. 당연히 오마주이리라 믿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데시레 넘버 연출에서 그대로 모티브를 따와 약간만 변주한 넘버 연출이 있었다. 뜬금 없는 부분에서 등장하는 아크로바틱과 와이어에 매달려 날아오른 채 선보이는 동작들 또한 노담을 연상시켰다. 동제작사의 극인 뮤지컬 <록키호러쇼>를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만드는 특정 장면도 있었고, 무대를 넘어 객석의 벽까지 넓게 퍼지며 반짝이는 조명 연출은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의 지하감옥과 유사한 효과를 냈다. 단색으로 통일한 의상을 입은 군중들이 떼창을 부르며 한데 모이고 팔을 뻗는 장면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와 <레미제라블>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글로는 형용하기 힘든 다양하고 혼란스러운 색감의 조명들은 알앤디 극과 더불어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의 혼미하던 조명연출을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하나의 극에서 이처럼 많은 극이 겹쳐 보이는 원인은 태만함이라 봐도 과하지 않으리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관객일 뿐이지만, 제작과 연출의 나태함을 지적하고 비판할 권리는 있다. 배우의 열연과 노래뿐만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생동감 넘치게 살아 숨쉬는 종합예술을 온몸으로 마주하기 위해 돈과 시간과 체력과 마음을 다해 관극하기 때문이다. 신생도 아니고 하물며 창작뮤지컬 여럿도 성공적으로 올려본 경험이 있는 제작사가, 아무리 대극장 첫 도전이라고 해도 이같이 여러 의미로 당혹스러운 극을 내보인다는 것이 기가 차다.

 

 

'스타일리쉬' 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난해하고 조잡한 디테일과 색감의 의상은 몰입을 훅훅 떨어뜨렸다. 객석까지 넘쳐흐르는 스모그의 냄새가 너무 역해서 힘들었다. 타이밍이 살짝씩 어긋나는 조명과 영상 연출이나, 미묘하게 밀리며 엠알과 엇박이 되는 넘버 몇몇 마디가 아쉬웠다. 앙상블 배우들이 온몸을 불사르고 있음은 명확히 느껴졌으나, 아직은 딱딱 들어맞지 않는 군무 동작들이 눈에 자꾸 띄었다. 역시 합이 아직 부족한 칼싸움도 아쉽긴 매한가지였다. 무대예술은 라이브 공연인만큼 어느 정도의 로딩을 감안할 수는 있으나, 굳이 로딩을 기대해야 할만큼의 안무와 동작을 넣은 이유를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 아이돌 무대 같다는 평으로 소비되는 장면들은, 극과 어울리지 않는 순간에 삽입되어 뜬금 없고 이상했다. 킹아더라는 극의 개성으로 치부하려 해도, 내용과 흐름에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곤란하다. 

 

 

 

 

상기 언급했듯이 배우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열심히 한다.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열연으로 채워넣는 한아더의 감정에 거의 설득당할 뻔했다. 바닥을 기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과 몸 전체를 울림통으로 쓰듯 깊고 풍성한 발성으로 마음껏 성량을 뽐내는 목소리에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그리워졌다. 순수하고 소심하고 어리벙벙하던 소년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을 마주하여 겁도 내고 의지하려 들고 망설이기도 하며 혼란스러워 한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을 올곧게 바라보고 운명에 맞서겠노라 결심하며 각성한 그는 백성들의 왕이자 기사들의 중심으로 우뚝 선다. 소년미 넘치던 얼굴과 목소리와 손동작은 완연히 달라진 눈빛과 톤과 자세와 걸음걸이로 대체된다. 운명에 대항하려던 인간은, 운명을 오롯이 제 것으로 끌어안으며 순응하는 것이 진정한 순리임을 이해하고 수용하여 행동한다. 평범한 인간을 부르짖던 한살리가 그리워지는 2막 마지막 연설씬이 무척 강건했다. 혜나모르간은 그저 엄청났다. 1막 솔로곡과 2막의 여러 넘버들을 부르는 장면이 어찌나 강렬하고 매력적인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프랑켄의 혜나에바가 보여줬던 광기와는 질감이 다른, 더 어둡고 짙은 색으로 맹렬하게 불타오르는 분노의 파괴력이 어마어마했다. 이날이 부부페어 첫공이었는데, 찬레아강과 함께 하는 장면의 넘버도 몹시 좋았다. 범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벅찬 수준의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보여준 그 표정 연기는 정말이지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았다. 한아더와 혜나모르간 덕분에 이 고되고 힘든 관극이 유의미했다. 

 

 

2막 마지막 넘버가 아주 좋았고, '다시 일어나리라' 넘버를 부르는 커튼콜 역시 즐거웠다. 지나칠 정도로 취향인 이 넘버를 아주 많이 반복재생했던 덕분에 커튼콜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입모양으로 가사를 따라 부를 수 있었다. 1막 혜나모르간 솔로 넘버와 2막 중후반부만을 위한 재관람 의사는 있다. 넘버가 워낙 좋아서 소위 말하는 자둘매직이 가능할 듯하지만, 어떻게든 추억보정을 하려 해도 도저히 자둘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굉장히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용납하기 힘든 극이 있는 법이다. 오슷이 나온다면 무조건 구매하겠지만, 고통과 고난의 시간을 구태여 감내하며 무대를 다시 마주하고 싶지는 않다. 기다리고 기대했던 작품을 스치듯 떠나보내게 되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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