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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킹

in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2019.02.14 8시



 


 

디즈니 작품에는 항상 특유의 밝고 굳건한 씩씩함이 있다. 어릴 적 디즈니 만화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로서, 그 이야기들을 보고 배운 꿋꿋한 의지는 늘 가슴에 품고 산다. 동시에 애틋함과 그리움 역시 강렬한데, 일례로 이 극의 1막 후반부에서 "하쿠나 마타타" 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순간 참을 새도 없이 눈물이 주륵 흘렀다. 티몬과 품바 애니메이션을 챙겨보기 위해 매주 일요일 아침 8시에 일어나던 유년기의 기억과 열정은, 여전히 유효했다. 꿈과 환상에 푹 잠겨 살았던 그 시기는 지금의 내가 존재하도록 도왔고, 아직도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이 극은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동화 속에 빠져들 수 있도록 화려하고 환상적인 연출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다양한 모양과 재질의 무대배경이 상하좌우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여 장소를 마련하면, 각기 다른 형태와 방법으로 구축된 다채로운 동물들이 그 공간을 가득 채우며 매력을 뽐낸다. 동일한 무대배경과 구조물을, 보여지는 부분이나 방식에 변화를 주고 조명을 다르게 구성하여 전혀 새로운 무대로 표현하는 연출도 아름다웠다. 선명한 색감이 타오르는 태양과 한적하고 평화로운 하늘과 어두운 밤을 효과적으로 대비시키며 시간감과 공간감을 명확히 했다. 특히 알알이 별빛이 빛나는 밤하늘을 배경 삼아 점멸하는 반딧불이를 끝에 매단 채 우아하게 춤을 추는 연출이 눈부시게 예뻤다. 또한 객석까지 확장된 무대가 관객의 몰입을 한층 높인다. 일상적인 공연장이라는 공간이 걷고 뛰는 동물들과 하늘하늘 춤을 추는 형형색색의 새들이라는 비일상적인 환상으로 채워지며 특별한 체험을 선사한다. 거대한 코끼리가 어깨에 닿을듯 스쳐지나가는 순간, 극 중 배경은 현실이 된다.

 

 

다양한 동물들을 표현하는 소품과 의상 연출도 몹시 신선하고 흥미롭다. 가장 대표적인 형태는 머리 위에 가면을 얹거나 쓰는 방식에 의상과 배우들의 몸짓으로 해당 동물을 표현한다. 무파사와 스카의 경우, 배우의 목 뒤에서부터 연결된 가면이 그들의 머리 움직임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며 위압과 위협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코뿔새이자 책사인 자주는 펄럭이는 날개와 늘었다줄었다 하는 목과 깜빡거리는 눈까지 아주 섬세하게 움직이고, 하이에나들은 양손을 앞발로 사용하며 한층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얼굴만이 아니라 몸통까지 인형탈로 표현되는 동물들의 경우, 배우의 몸과 탈이 여러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어 안정감과 자유로움이 모두 가능했다. 기다란 죽마 위에 올라타 느릿하게 움직이는 기린이나 여러 사람이 들어가 함께 움직이는 코뿔소와 코끼리 등도 인상적이었고, 동물에 따라 질감이 달라지는 의상과 특유의 무늬와 색을 살린 분장도 매력적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목각으로 만들어진 퓨마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고양이과 동물 답게 앞발로 얼굴을 쓰다듬는 등의 행위를 아주 부드럽게 표현하는 배우의 동작이 캣츠의 고양이들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배우의 관자놀이와 목각인형의 머리를 낚시줄 같은 끈으로 연결하여 배우가 얼굴을 움직일 때마다 동물의 머리도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티몬도 배우의 얼굴과 인형의 머리가 연결되어 있었고, 배우가 몸 앞쪽에 고정한 인형의 얼굴과 팔과 다리를 능숙하게 조종하며 움직임을 한층 매끄럽게 표현했다.

 

 

 

 

애니메이션의 고전인 만큼, 내용적 측면에서 언급할만한 부분은 크게 없다. 다만 세습 권력이 규정하는 계급사회와 남성에서 남성으로 계승되는 보수성이 여전히 불만족스러웠고, 암사자와 수사자로 구분되는 성별 역할 구분 또한 불편했다. 사자의 습성을 반영한 지점임은 알지만, 폐허가 된 프라이드 랜드를 굳건히 지켜낸 암사자들의 노력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결국 남성이자 정통성을 지닌 심바가 왕위를 되찾는 이야기는 참으로 진부하고 지루했다. 고전은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가지지만, 동시에 변화하는 시대의 고민을 품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이 눈부신 극이 앞으로도 꾸준히 사랑 받기를 바라면서도, 조금 더 개선된 인식을 반영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요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사랑을 받으며 롱런하고 있는 좋은 극을 만날 때마다,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인 연출에 대해 재차 고민하게 된다. 이야기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연출은 더욱 풍성한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고, 누적된 경험과 노하우는 더욱 철저한 고민과 계산을 가능케 하여 그 상상을 실재하는 현실에 구현한다. 이 극은 기대하고 상상했던 그 이상의 환상적인 무대를 생생하게 펼쳐보임으로써 그 가치를 충분히 증명해냈다. 이 극을 보기 위해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할만큼 감탄이 가득했던 시간이었고, 덕분에 꿈 같은 찰나를 만끽할 수 있었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만나볼 만한 놀라운 극을 이렇게 마주할 수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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