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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가
in 대학로 TOM 1관, 2019.02.06 3시
박한근 개로, 박란주 아랑, 김지철 도미, 이정열 도림, 임규형 사한, 정지혜 도창.
휴일의 끝자락에 예기치 못한 현매를 하게 되어 고민 끝에 아랑가 자첫을 하게 됐다. 초연 때부터 큰 관심은 없었던 작품이고, 재연 후기가 초연에 비해 썩 좋지 않아서 기대치를 완전히 내려 놓고 객석에 앉았다. 기대가 전혀 없었던 덕분인지, 의외로 신선하고 흥미로운 지점이 많아서 꽤 재미있는 관극이었다. 특히 창(唱)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도창(導唱)의 존재가 이야기를 한층 풍성하고 극적으로 만들었다. 목소리 만으로 공간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오랜만에 마주해서 가벼운 전율을 두어번 느낄 정도였다. 도창 분의 기본 성량이 워낙 쩌렁쩌렁 하다보니, 오히려 마이크가 거슬리는 느낌을 받았다. 프리뷰 기간의 관극이었는데, 전반적으로 음량 좀 다시 맞춰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가뜩이나 가사가 명확히 들리지 않는 삼중창에서 반주 음량까지 크고 명징하니까 넘버에 몰입이 안됐다. 악기들의 소리만으로도 청량하고 아름답지만, 이건 뮤지컬이다.
내용은 역사와 설화가 스포인 만큼 크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백제의 개로왕과 도미 설화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110분이라는 시간으로 담아내기에는 다소 루즈한 구성과 전개여서 아쉬웠다. 우아하고 느긋한 아름다운 넘버들을 잘라내거나 줄이고 싶지 않았던 창작진의 욕심이 초래한 지루함 같았다. 특히 극의 중후반부에 이러한 생각을 강하게 느꼈다. 연출 상 의도한 여백이 과다하게 잦고 유사하고 반복적이어서, 그 공백을 마주할 때마다 피로감이 빠르게 쌓였다. 무대, 조명, 의상, 소품을 포함한 모든 연출이 Simple is the best 그 자체인데, 전개까지 늘어지니 극의 긴장감이 떨어졌다. 음악과 무대로 미적 감수성은 충족되었지만, 내용 상 재미나 공감은 다소 부족했다.
매끄럽게 찰랑이는 얇은 커튼을 활용한 무대 연출이 좋았다. 커튼의 안쪽만이 아니라, 그 너머까지 무대로 끌어들여 공간을 확장하는 몇몇 장면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그 외 소품 등의 연출은 몹시 담백한데, 마지막 장면만큼은 아주 아름답게 표현했다. 조명과 구도와 자세와 눈의 모양과 바닥의 소품 위치까지 가히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이 마지막 장면이,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지독하게 단정하기에 도리어 찬란하게 빛나는 마무리였다. 의상도 적당히 빳빳하고 부드럽고 깔끔했는데, 근개로가 무릎 꿇었다가 일어나는 부분에서 매번 휘청거리는 게 신경쓰였다. 옷자락의 길이감은 적당했는데 개로왕 의상이 유난히 무겁고 뻣뻣한 것 같았다. 조명 및 배경 연출은 무난했으나, 조명 색감은 개인적으로 불호였다. 중간중간 달이 조명으로 표현되는데, 테두리가 이상하게 찌그러진 형태여서 동그랗고 커다란 보름달의 느낌이 전혀 살지 않았다.
잔잔하고 담백하고 호흡이 긴 극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한 번쯤 볼만한 극이다. 북과 대금 등이 다른 악기들과 잘 어우러지며 아랑가만의 색이 담긴 음악을 선사한다. 더불어 도창의 카랑카랑한 음색이 이야기를 한층 다채롭게 풀어내어, 비워낸 공간을 생동감 있는 상상으로 채워낼 수 있게 돕는다. 본인의 목소리의 고저와 강약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하고 극의 호흡까지 자유자재로 다루는 정지혜 도창에게 여러 번 감탄했다. 특히 극의 중반에 혼례 장면 해설 부분이 압권이다. 창의 매력을 정확하게 짚어내어 극에 녹여낸 점이 아랑가의 가장 큰 장점이고, 덕분에 귀가 즐거웠다. 다작을 통해 시야가 재차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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