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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in 명동예술극장, 2019.03.08 7시반





양희경 로자, 오정택 모모, 정원조 카츠 의사.



인간은 저마다의 무게를 끌어안은 채, 제 앞에 주어진 생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삶을 살아내는 와중에도 서로를 위로하고 의지하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유의미하고 가치 있다. 그 관계는 나이도, 종교도, 인종도, 국적도, 그리고 개인의 역사도 초월한다. 수많은 정체성이 한 개인에게 담겨있고, 다양하고 다채로운 개인들이 만나 관계를 형성하며, 이 사회망이 더욱 촘촘하게 연결되어 사회를 구성한다. 그러므로 개개인을 들여다보고 공감하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한 사회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유태인과 무슬림. 60대의 노인과 10대의 아이. 지독한 인종 박해를 받은 사람과 인종 때문에 차별 받고 있는 사람. 이 극은, 너무나 달라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몹시 닮아 있는 두 영혼을 통해 삶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성찰하게 한다.



(출처: 국립극단 트위터)



※스포있음※



로자는 유태인이다. 동시에 프랑스에 사는 폴란드 여자다. 남편의 신고 때문에 강제로 아우슈비츠에 끌려간, 나치 폭력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다. 젊은 시절 "궁둥이로 벌어먹고 살았" 던 로자는, 여전히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여자들의 아이를 대가 없이 돌본다. 가파른 계단을 7층까지 올라야만 하는 그의 집에서, 아이들은 차별 없이 각자의 종교와 인종으로 온전히 존중받는다. 인종은 그저 출신과 외모가 다른 것이라고, 종교는 다들 비슷한 것을 두려워한 인간들이 각자의 상황에 맞게 만든 것이라고 말이다. 로자는 아이들의 상황에 맞게 주말마다 어울릴 수 있는 집단에 참석할 수 있게 해주는 섬세한 배려심, 물어오는 모든 질문에 현명한 대답을 해주는 인내심, 역사를 제대로 따르자면 크리스마스 트리도 야자수로 만들어야 하지만 인간이 저 편한 대로 전나무로 만들고 있지 않냐고 지적할 수 있는 유머감을 지녔다. 그렇기에 그는 종교와 사상의 강요 없이 저마다의 생을 마주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도울 수 있었다.



(출처: 국립극단 트위터)



"두려워하는데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단다"



로자는 초인종 소리를 두려워한다. 자신을 강제로 끌고 갈 경찰일까봐, 아이들을 강제로 자신들에게서 떼어놓을 사회복지사일까봐. 모모가 어린아이 다운 천진한 악의로 놀려대도, 로자는 자신의 두려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두려움에 대상이 없음을 알지만, 동시에 그 두려움의 본질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섬세한 모모의 상상력을 두려워하거나 유전병을 운운하며 겁에 질리기도 하는 로자의 예민함은, 그가 겪어낸 개인의 역사에서 비롯되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카츠 선생은 무던한 태도로 로자에게 진정제를 처방해주고, 모모는 온 마음으로 그를 끌어 안는다. 친아버지가 폭풍처럼 휩쓸고 간 진실을 마주한 모모가 왜 자신의 나이를 4살이나 속였느냐고 묻자 로자는 답한다. 모모를 떠나보내는 것이, 그리하여 홀로 남겨지는 것이 두려웠다고. 자신을 품어준 로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모와, 마지막이자 유일하게 남은 이 놀라운 아이를 온 영혼을 다해 사랑하는 로자. 



(출처: 국립극단 트위터)



발작을 일으킨 로자와 죽음 같은 침묵만이 내려앉은 고요한 집에서 홀로 덩그러니 서있던 모모. 억지로 삶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는 단호한 로자의 의지를 진심으로 이해하여 그를 위해 노력하는 모모. 어설픈 거짓말을 하는 모모를 가만히 바라보는 카츠. 로자가 떠나고나면 잘 지내는지 알고 싶으니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만 남기고 모모의 뜻대로 그를 두고 떠나는 카츠. 기도를 하기 위해 혼자만의 공간으로 남겨두었던 로자의 지하실로 그를 옮긴 모모. 무슬림이지만 유태인인 로자를 위해 유태인 식으로 함께 기도를 해주는 모모. 손을 떨군 채 잠들듯 숨을 거둔 로자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들어 떨리는 손가락 끝을 그가 앉은 소파 끄트머리에 가져다대는 모모. 조심스럽게 밀쳐진 소파가 아주 느릿하게 무대 상수로 미끄러지듯 퇴장하며 마지막 잔상을 남기는 로자의 잔잔한 얼굴.



극 내내 화자로서 조숙하고 섬세한 모습을 보였던 모모는, 마지막 장면까지 그 역할을 다한다. 로자의 곁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한 사람들은, 냄새 때문에 모여들었다고 말한다. 살아 있는 인간은 냄새가 나지 않으니까. 인간을 이해할 수 있기에 온몸으로 사랑하는 법을 아는 모모는, 빅토르 위고처럼 <레미제라블> 같은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되었으리라. 로자를 부축하며 올랐던 지하실 계단을, 잠시 멈춰 서서 숨 한 번 크게 들이 쉬고 다시 성큼성큼 오르는 모모의 뒷모습이 애틋하지만 마냥 슬프지 않았다. 생을 직시하는 자의, 삶의 고통을 감내하는 자의, 고독하지만 단단한 뒷모습. 



(출처: 국립극단 트위터)



"꽃 같은 날들"



생의 마지막 순간, 로자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자신의 삶을 이렇게 명명한다. 상흔으로 가득한 인생이었으나, 꽃처럼 찬란하고 행복한 찰나를 담아낸 그 모든 나날들이 아름다웠노라 선언한다. 로자는 평범하기도, 고되기도 한 자기 앞의 생에서 행복을 찾아내고 그에 오롯이 기뻐할 수 있는 강인한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온몸으로 모든 것들을 맞부딪히며 꿋꿋하게 살아낸 그의 존재 그 자체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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