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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 트릴로지
in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2019.02.02 3시, 5시, 7시반
3시 모르가나, 5시 아가멤논, 7시반 맥베스. 이석준, 박은석, 김바다, 정연.
"세 편의 공연은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되" 어 있기에, 세 이야기 중 어느 하나만 보아도 충분한 별개의 공연이 된다. 하지만 이 극의 핵심이 되는 주제는 <맥베스> 에 존재하고, 그 핵심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르가나> 와 <아가멤논> 을 알아야 한다. <모르가나>와 <아가멤논>의 대사와 인용구들이 <맥베스>에 포개지듯 맞물리며, 세 개의 이야기가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표를 구하기가 무척 힘들었지만, 예대에 산책에 끝내 현매까지 시도하여 끝내 벙커 종일반에 성공했다. 오후 내내 작고 폐쇄적인 벙커와 홍아센 로비에만 갇혀 있었지만, 공연이 아주 재미있어서 하나도 힘들지가 않았다.
WWⅠ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각기 다른 삶들이 저마다의 생명력을 부르짖는 "천만 개의 삶, 천만 개의 생의 진실" 들. 군번줄, 휘파람, 촛불, 베개, 마법, 그리고 아더왕 이야기. 각각의 극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소재들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며 극을 하나로 엮어낸다. 시대적 문제의식, 분리된 진영 사이의 고통, 남겨지고 소외된 자들의 절박함, 전쟁이 만들어낸 악마의 유약한 본질 등을 지독히도 잔인하고 인간적으로 담아낸 <아가멤논>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맥베스>는 극 속의 극으로 전개되는 구성이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전환점이 좋았고, <모르가나>는 직관적이지 않은 혼란스러운 장면들이 짙게 내뿜는 망연함과 절망감이 인상적이었다.
※스포있음※
<모르가나>. 스스로를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이라 자칭하던 어린 아이들은, 가혹한 전쟁 속에서 군번줄만 남긴 채 하나씩 스러진다. 정작 그들을 사지로 내몬 교장은 안전한 침대 위에서 편안히 임종을 맞이했다는 소식에, 그저 허망함만 내린다. 이 끝은 오로지 죽음 뿐이라는 현실에 침잠한 남은 이들에게 보이는 각자의 모르가나. 가웨인에게는 자신의 이야기와 노래를 들어주는 청자로, 랜슬롯에게는 친구의 연인이자 연모의 대상인 기네비어 왕비로, 그리고 아더에게는 아무도 지켜내지 못하고 홀로 남아 친구들의 '본명' 을 부르며 직시하는 현실을 다시 덮어버릴 환상으로.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모르가나의 환시와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와 유사한 모르가나의 휘파람 소리라는 환청이, 환상과 현실을 더욱 모호하게 만들었다.
<아가멤논>. "여성에게 참정권을!" 전력질주하는 말 앞에 몸을 내던진 에밀리 데이비슨의 서프러제트 운동을 목격한 크리스틴은, 왕의 말을 죽게 만든 미친 여자라는 비난으로 폄훼되어야 하는 죽음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여성 참정권 운동에 참여한다. 쫓겨난 곳에서 독일 남자를 만나 결국 사랑하고 결혼까지 하게 된 이 영국 여자의 삶은, 전쟁의 발발로 망가지고 뒤틀린다. 임신한 자신을 두고 자신의 고국과 전쟁을 하러 간 남편, 하필이면 그 전선으로 향하게 된 자신의 오빠들, 이방인을 배척하는 주변 사람들. 편지 한 통 없는 남편과 끝내 전사한 오빠들, 그리고 영국인의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 갓난아이. "배고파!!!" 라는 절규에 실린 끝모를 분노의 허기짐과 무력한 삶의 허망함.
결국 저격수로서 흉폭한 이름을 휘날리는 자신의 남편 알베르트를 살해한다는 아가멤논 작전을 수용하는 크리스틴. 독이 든 잔을 건네기 전 그가 묻는다. 우리 아기 이름 뭐지? 잠시 멍한 얼굴로 질문을 되짚던 알베르트는, 그러고보니 우리 아기 어디있냐고 되묻는다. 결국 크리스틴은 그에게 잔을 건넨다. 편지 했잖아!! 우리 아기 죽었다고!! 가웨인!!! 우리 아기 이름!! 마지막 편지에 이 작전에 대해 적었다고, 마지막 기회였다고, 편지를 읽었으면 여기 오지 않았을 거라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크리스틴은 그를 똑바로 응시한다. 온몸으로 퍼지는 독약으로 괴로워하면서, 알베르트는 용기가 없었노라 고해한다. 자신이 사냥개인 줄 알았는데 사슴이었다고 말하는 그의 의중을 이해한 크리스틴은, 직접 총을 들어 그를 겨눈다. 첫만남 때 죽어가는 사슴에게 베푼 자비와 관용을, 이제는 자신이 사랑했던 그에게 행한다. 쓰러진 알베르트의 얼굴을 가만히 만지며 내려다보던 그는, 꼿꼿이 등을 편 채 문을 나선다. 시대의 광기가 야기한 비극을 오롯이 끌어안은 뒷모습.
여러 대사들과 상황을 통해 전쟁의 비참함과 무용함을 정확히 지적하는 이 극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구성이었다. 첫 장면에서 냉혹한 얼굴로 휘파람을 불며 집중하던 저격수 알베르트는 상대 저격수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옆의 병사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희생시킨다. 마지막 장면에서 첫 살인을 행한 참전 초기의 알베르트는 두려움에 질린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순간 총성과 함께 옆에 멀쩡히 서있던 병사가 맥없이 뒤로 넘어간다. 삶과 죽음이 찰나에 구분되는 이 덧없는 생을 지독히도 생생히 마주하는 경험의 시작. 기겁하며 사방으로 총을 겨누면서 아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는 그의 목소리가 잔상처럼 흩어지며 암전이 내린다.
<맥베스>. 첫 장면부터 기립과 경례를 통해 커다란 극 안에 포함된 객석은, 다시 작은 극의 관객이 되고, 마지막에는 다시 커다란 극 안의 구성원이 되어 침묵하며 함께 만들어낸 결말을 똑바로 응시한다. 촛불이 켜져있을 때만 진행되는 극 속의 극은, 현실과 맞물리며 전환되어 한층 비극미와 생동감을 더한다. 직접 전선에 나오지 않는 귀족 장군이 뭘 알겠느냐며 분노하던 마크는, 죽어가는 병사들을 벌레 취급하는 상사를 죽이고 그 직책에 오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진짜 음악과 진짜 홍차를 마시며 안락하고 안전한 삶에 녹아들고 과거를 외면한다.
탁자 위 전략지도의 병사들을 전선으로 밀어 넣고, 그들이 맥없이 쓰러지자 다시 서랍에서 몇몇을 더 꺼내어 밀어 넣는다. 살아있는 피와 살로 존재하는 병사들은, 윗사람의 지도 위에서 그저 플라스틱의 말로써 존재한다. 바그너의 음악이 깔리는 방에서 붉은 조명을 받으며 의자 위에 올라선 채 지도 위로 말들을 떨어뜨리는 장면의 광기. 지도 위에 더이상 사람은 없다. 극 중 연극을 시작하기 전 객석을 휘 둘러보고선 못 보던 얼굴이 많다고 말하는 마크 장군의 대사는, 그가 얼마나 많은 병사를 희생시켰고 그들이 대체 되었는가를 반증한다. 결국 아군까지 무자비하게 희생시키는 그의 폭정을 견딜 수 없던 이들은 그에게 총을 겨눈다. 미동 없이 앉아있는 객석의 군인들 역시 침묵으로 동의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처럼, 권력을 탐한 자의 말로는 비참하다.
관극하는 순간의 전율과 극을 보고 난 뒤 곱씹고 재발견하는 희열이, 연극을 사랑하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 같다. <맥베스> 에서 고전적인 연극톤과 발성을 내는 장면, 눈빛과 동작만으로 위압감과 비장함을 표현해내는 장면 등을 통해 연극의 매력을 한층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연극에 하나씩 도전하다보면 더 깊이 있는 후기를 쓸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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