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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오브 더 나잇 2019 - 마이클리 & 라민 카림루
in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19.01.06 2시
새해 첫 관극으로 마이클리 배우와 라민 카림루 배우의 듀엣 콘서트를 보고 왔다. 공연의 Theme을 [The Greatest] 로 잡고, Show / Composer / Duets / Showman 등의 소주제를 정하여 미국 뮤지컬 위주의 다양한 넘버들을 펼쳐보이는 컨셉의 콘서트였다. 적재적소의 담백한 해설, 심플하되 산만하지 않은 무대 연출 및 동선, 넘버들 간의 통일성 있는 편곡 스타일로 깔끔한 구성의 매끄러운 공연을 완성시켰다. 마이클리 배우가 "Michael K. Lee &" 라는 제목을 붙인 시리즈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는 듯한데, 새로운 형식과 독특한 기획을 시도한다면 흥미로운 공연들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공연에 마이클리 배우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 정도 기획력이라면 다음 시리즈에도 큰 기대를 걸고 싶다. 공연장이나 음향, 조명 연출, 편곡 일부 등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지만,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으니 말을 아낀다. 다만 음향팀과 홍보팀은 반성하길 바란다.
두 배우의 풍성한 목소리로 듣는 넘버들의 향연이 귀와 마음을 풍성하게 채웠다. 만족스러운 세트리스트 중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콘서트의 제목이기도 한 The Music of The Night 의 부재였다. 드라마틱한 마무리를 위해 The Phantom of The Opera 를 앵콜로 돌리면서, 같은 작품 넘버인 뮤옵나는 셋리에서 빠진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작년 오유콘에서 들은 라민팬텀의 뮤옵나를 잔뜩 기대하고 갔기에, 많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음악으로 꽉 들어찬 100분이 내내 황홀했다. 뮤지컬배우의 콘서트이기에 가능한, 여러 작품의 여러 넘버를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감사했다.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나열한 셋리의 중간중간에 감상을 간단히 적어본다.
01. The Other Side + The Greatest Show / The Greatest Showman / 마이클리&라민
02. Who Am I / Les Miserables / 라민
03. The Congrontation / Les Miserables / 마이클리&라민
04. Bring Him Home / Les Miserables / 라민
라민 카림루, 라는 배우의 장점은 달리 수식어가 필요 없는 독보적인 목소리만이 아니다. 의상, 분장, 공간연출 등이 존재하지 않는 무대에서도, 오로지 그 목소리 만으로 해당 극의 해당 장면을 단숨에 표현하여 객석의 몰입도를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탁월한 능력을 갖췄다. 넘버를, 장면을, 극을 이해하고, 그에 따른 감정을 고스란히 노래에 담아낼 수 있는 배우이기에, 고작 두 번 밖에 만나보지 못했음에도 반해버렸다. Who Am I 와 Bring Him Home 에 뚝뚝 묻어나는 라민장발장의 감정이 무척 짙고 맹렬하여 레미제라블이라는 극 자체가 그리워졌다.
05. One Song Glory / Rent / 마이클리
06. What You Own / Rent / 마이클리&라민
마이클리 배우의 목소리가 지닌 감정도 매우 사랑하죠. 풍성하게 울림이 있는 넘버를 부르는 마이클리 배우의 목소리를 너무나 좋아하는데, 작년에는 노담과 록호쇼만 해서 아쉬웠다. 노담 마그랭 넘버도 물론 좋지만, 감정이 처절하게 묻어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서. 솔로로 부른 One Song Glory 넘버가 그래서 더 좋았다. 마이클리 배우와 라민 배우의 음색의 결과 색감이 닮아 있어서 같은 가사를 함께 부르는 듀엣들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그나저나 렌트를 한국 라센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07. Heavens on Their Minds / JCS / 라민
오버츄어 첫음 만으로도 심장을 뛰게 만드는 극, Jesus Christ Superstar. 지난 오유콘 리뷰에서 "라민 배우 (...) 지크슈에서도 보고 싶어졌다. 지저스도 유다도 찰떡같이 잘 할 것 같은데, 마이클리 배우랑 JCS도 같이 하면 정말 좋겠다... 상상만 해도 막 짜릿한데." (참고) 라는 희망사항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또다시 현실이 되었다고 합니다! 갈구하는 소원을 이 블로그에 적으면 언젠가는 이뤄지는 건가요!! 간절하게 바랐더니 마언니도 왔고, 류빅터도 왔고, 한 번 밖에 못 봤지만 재그랭도 왔고, 이번에는 라민유다와 마저스가 한무대에서 JCS 넘버를 불렀어!!!!! 라민유다의 헤븐온 넘버 하나만으로도, 공연을 관통하는 그의 노선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라민유다 간절히 바랍니다. 라민 배우가 출국하면서 인스타에 "너무 늦기 전에 유다 역할을 하고 싶다" 라고 올렸던데, 대체 라민유다 캐스팅 안하고 다들 뭐하는 거죠?? 마저스에 라민유다라니, 이건 일백퍼센트 성공하는 주식이라구요!! 빨리 JCS 좀 올려줘요!!
08. The Last Supper / JCS / 마이클리&라민
그 성공할 주식을 맛만 보고 온, 마저스와 라민유다의 라섶. 열두사제의 합창과 마저스의 도입은 한국어로 부르고, 라민유다와 대립하기 시작하는 부분부터 영어로 부르는 연출도 좋았다. 하나의 곡에 서로 다른 언어가 공존하더라도 충분히 교감하고 공유될 수 있다는, 다름에 대한 이해와 포용. 다만 여기서 가사 틀린 건 조금 아쉬웠다. 일단 "부질 없는 소망 / 확신 없는 기대" 라고 기억하는데, "부질 없는 소망 / 확신 없는 희망" 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하난 날 배신하고 하난 날 부인한다" 부분을 "하난 날 외면하고 하난 날 ... 한다" 라고 부르는 바람에 가사 실수가 확연히 드러났다. 물론, 감정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바로 라민유다와 날카롭게 대립하며 그의 배신을 종용하는 마저스 덕에 몰입은 깨지지 않았다. 계단 위에 서있던 마저스가 계단 아래로 내려와 라민유다와 마주보고, 그대로 서로를 응시한 채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대치하는 연출을 그대로 재현해줘서 너무 행복했다.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계단을 올라간 두 사람의 감정과 의견이 끝까지 강하게 맞부딪힌다. 도저히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괴로워하고 분노하던 라민유다는 그대로 오른쪽으로 퇴장하고, 마저스는 홀로 남겨진다.
09. Gethsemane / JCS / 마이클리
2015년 JCS 본공 이후, 무려 3년반만에 다시 듣게 된 마저스의 겟세마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See how I die-" 를 조금 더 길게 뽑은 뒤, 가슴 안쪽부터 긁어올리는 듯한 철성을 토해내며 무너지듯 무릎을 꿇는 마저스. 후반부 "날 죽게하소-서-" 하고 박자를 변주하고 음정을 위로 끌어올리는 부분과, "지금-" 하며 목소리도 오케도 없이 내려앉은 찰나의 정적이 이 편곡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가죽 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마저스를 보며 다음 JCS 연출은 저런 현대적인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부분의 "찢고 쳐서" 를 듣는 순간 3년 전 샤롯데의 텅 빈 무대 위 홀로 새하얗던 마저스가 환각처럼 빛났다 사라졌다. 무대 연출이나 조명이나 소품이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무대를 몇 번 마주해보긴 했지만, 깊은 곳에서 튕겨져 나온 기억이 번뜩이는 환시로 구체화 되는 경험은 처음이어서 놀랍고 신기했다. 그리고 끝내 그리워졌다. 올해에도 JCS가 돌아오지 않는다니, 이건 악몽이다. 아무리 늦어도 2019년에는 돌아오리라는 믿음으로 견뎠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가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JCS 대체 왜 없죠?
10. Till I Hear You Sing / Love Never Dies / 라민
11. You Will Never Walk Alone / Carousel / 마이클리
12. Being Alive / Company / 라민
13. All I Need Is the Girl / Gypsy / 마이클리
14. Somewhere / Westside Story / 마이클리&라민
거장 앤드류 로이드 웨버를 시작으로 여러 작곡가들의 작품들에서 넘버 하나씩을 불러줬다. 라민 배우의 틸아이 넘버야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테고, Being Alive 와 Somewhere 듀엣도 좋았다. 마이클리 배우가 부른 솔로 넘버들 또한 배우의 음색에 아주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곡들이었다. 이 공연들을 직접 만나본 적이 있었다면 더 즐거웠을 것이다. 무대와 객석을 아울러 사로잡으며 오롯이 존재하는 두 배우를 보며, 위로와 동시에 자극도 받았다. 한동안 잊고 있던, 관극을 통해 실존적인 질문을 건네 받는 경험을 다시 마주하게 되어 반가웠다.
15. She Used to Be Mind / Waitress / 마이클리
마이클리 배우가 직접 피아노를 치며 시작한 넘버. 이날 처음 들어본 넘버들 중 가장 좋았던 곡을 고르라면, 마이클리 배우가 부른 이 넘버를 택하겠다. 마치 극 중 화자가 막 튀어나온 듯한, 단어 하나하나에 절절하고 먹먹하고 고독하고 자조적이고 절망적인 마음을 오롯이 담아낸, 애틋하여 아름다운 넘버였다. 극 자체에 대해 궁금증이 샘솟아서 더 알아볼 예정이다.
16. It All Fades Away / The Bridge of Madison County / 라민
투명하고 청량한 은버트의 음색이 담아내는 감정의 결과 사뭇 다른 라민 배우의 이 넘버도 좋았다. 쓸쓸함과 회한의 고통이 듣는 이의 마음에 저절로 옮겨오게 만드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넘버의 질감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다. 강하고 위압적인 음색도 일품인 배우지만, 유약함과 맹렬함과 절절함을 서정적인 곡 하나에 유려하게 담아내는 감정도 휼륭하다.
17. The Next Ten Minutes / Last 5 Years / 마이클리
18. All the Wasted Time / Parade / 마이클리
19. From Now On / The Greatest Showman / 마이클리&라민
20. Let It Go / Frozen / 마이클리&라민
예상치 못한 선곡에 깜짝 놀랐지만, 마엘사와 라민엘사 모두 매력적이었다. 너무나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그 렛잇고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 편곡과 음색이 오히려 신선했다. 편곡이나 앙상블 화음 넣는 부분이 묘하게 Westlife 스타일의 팝송을 연상시켰는데, 그 때문인지 겨울왕국 특유의 새하얀 세상은 연상이 잘 안됐다. 재미있는 시도여서 인상적이었다.
21. Nessun Dorma / Turandot / 마이클리
초반 편곡이 생각보다 좋아서 푹 빠져 들었다. 빈체로, 빈체로, 빈체-로- 하며 치닫는 고음을 멋지게 소화하는 클라이막스 부분이, 1절은 깔끔하고 임팩트 있었다. 반면 2막은 악기가 더해지면서 너무 많은 음정들이 과하게 맞물리며 오히려 집중을 깨뜨렸다. 세종 대극장이 지닌 음향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전반적인 보컬과 마이크와 악기 간의 조율이 심하게 별로여서 아쉬웠다. 오죽하면 라민 배우가 첫 무대부터 인이어를 빼버렸을까. 반짝이고 맑고 풍성하게 편곡을 했으면 그에 맞게 음향을 조절해서 모든 소리가 아름답게 맞물리도록 해야 하는데, 그 점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22. We Will Rock You + Bohemian Rhapsody + Radio Gaga + Crazy Little Thing of Love + I Want It All + The Show Must Go On / Queen / 마이클리&라민
엔딩 무대로 퀸 메들리라니. 뮤배 특유의 커다란 울림통과 매력적인 음색의 락발성, 유들유들하게 박자를 밀당하는 여유와 강렬한 락스피릿을 더하니 그 자체로 락앤롤이었다. 이전 넘버들과는 다른 창법과 메탈락 발성으로 퀸 노래를 부르는 라민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영광이었고, 마지막곡 The Show Must Go On 으로 전환되는 편곡까지 완벽했다.
23. The Phantom of The Opera / 마이클리&라민
앵콜. 전주만 들어도 가슴이 일렁이는 넘버. 심지어 라민팬텀에 마크리라니! 매끈하면서도 까랑까랑한 마크리의 목소리와, 본공보다 덜 묵직하지만 더 달콤하게 유혹적인 라민팬텀의 목소리가 너무나 멋진 듀엣을 선사했다. 라민팬텀이 "And though you turn from me" 하며 등지고 있는 마크리에게 다가가서, " To glance behind" 하며 마이크를 들고 있지 않은 왼손의 검지와 중지 끝으로 마크리의 턱을 살짝 당겨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도록 만드는 장면은 정말 완벽했다. 객석을 들었다놨다 하는 이 능숙한 배우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SING!!" 하는 라민팬텀 목소리는 들을 때마다 짜릿하고, "My Angel of Music!" 이라고 속삭이듯 강요하는 부름은 오싹할 정도로 농염하다.
이 콘서트 시리즈의 다음 무대가 기대된다. 온전한 극 안에서 만나볼 두 배우의 무대 또한 무척이나 고대된다. 세상 어디든 상관 없으니, 마저스와 라민유다의 JCS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행복했던 2019년 첫 관극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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